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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명탐정은 좋겠다

by 답설재 2023. 8. 28.

 

 

 

우리 동네 중심지로 내려갈 때 바라보는 광고문입니다.

저쪽 길 차단벽에 붙은 "명탐정 사무소", 그 벽에 붙어 서서 몇 번이나 확인했습니다. 17년 수사 경력, 표창 등 32회 수상, 7회 연속 으뜸 형사 출신의 '명탐정'...

 

그때마다 고등학교 친구가 떠올랐습니다. 뭘 하는지, 지금도 서울 사는지, 건강한지...

이홍식.

우리는 상주고등학교 12회 졸업생입니다.

26, 7년 전 초겨울 저녁, 서울 어느 경찰서에 근무한다는 그를 딱 한 번 동기회에서 만났는데 내가 미쳤지, 이후 차일피일하다가 그만 연락을 못했습니다.

 

그의 부모님은 읍내에서 싸전을 했습니다. 가끔 뵈면 홍식이 친구라고 좋아해 주셨습니다.

그는 담배를 많이 피워서 나에게도 가르쳐주었고(심장병으로 들통이 날 때까지 47년을 피웠네요), 무슨 이유를 대든 조퇴하는 걸 좋아했는데 그렇게 하교해서는 둘이서 서부극 주제음악을 듣거나 했습니다.

수업 시간에 몰래 빠져나와 선생님들만 드나드는 숙직실에서 바둑을 두다가 걸려 교무실에 들어가 꿇어앉아 있는데 수업을 마치신 우리 담임 선생님(국어 이용기 선생님)께서 다가오시더니 별말씀도 없이 "가거라!" 하고 '훈방조치'를 해주셨습니다.

 

그는 늘 말이 없었습니다. 생각만 깊었습니다.

내가 '명탐정'이라면 당장 혹은 쉽게 그를 찾을 수 있겠지요.

한 번만 더 얼굴을 보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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