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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엿새간의 '황금연휴'

by 답설재 2023. 8. 30.

 

 

여당이 추석 연휴와 개천절 사이 징검다리 날짜인 10월 2일을 임시공휴일로 지정해줄 것을 정부에 공식 요청했다. 정부가 이를 받아들이면 추석 연휴부터 개천절까지 엿새간의 '황금연휴'가 가능해진다.

 

 

'머니투데이'(2023.8.28) 기사 (「與 "10월 2일 임시공휴일 공식 건의"…올 추석 '목금토일월화' 쉰다」)를 보며 옛 일이 떠올랐습니다.

 

오랫동안 광화문 정부종합청사(현 정부서울청사) 18층에서 근무하다가 2004년 9월, 초등학교 교장으로 나갔습니다. 교육부 근무할 때는 연휴에도 그대로 쉬어본 적이 별로 없어서 느낌으로는 몇십 년 만에 맞이하는 듯한 가을이고, 아이들은 물론 좋아하는 사람이 많은 우리의 명절 추석이 다가와 교장 재량으로 연휴에 이틀인가 더 쉬게 했는데 마침 교장실에 들어온 학부모 대표 어머니들 몇몇에게 "내가 그렇게 했다"고 잘난 척을 했더니 그중 한 명이 다짜고짜 "사실은 그렇게 하는 걸 좋아하는 엄마는 별로 없다"고 하지 않았겠습니까?

이럴 수가!

왜?

그 어머니는 당장 설명을 덧붙였습니다.

"교장이 그렇게 해버려서 아이들은 좋아할지 모르지만, 시골 내려가서 시부모와 며칠씩 더 지내야 하는 우리는 영 아니올시다거든요."

아하!

 

나는 정답을 제시할 수가 없어서 "연휴가 끝났다고 말씀드리고 올라오면 되지 않겠습니까?" 했지 싶은데

"그게 말이나 되냐?"

"할아버지 할머니라면 뭐든 얘기하는 아이들이 고자질을 하면 그 꼴이 뭐가 되겠냐?"

"교장이 책임질 일도 아니지 않냐?"

등등 적나라한 공격이 날아와서 아마도 얼굴이 벌게진 상태로 이듬해에는 심사숙고하겠다고 약속했거나 그랬을 것입니다.

그게 나에겐 충격적이었는지 해마다 추석연휴만 다가오면 그 일이 생각나곤 합니다.

 

그렇지만 나는 이제 연휴 같은 것에는 아무 관심도 없습니다. 그저 그렇게 하는구나 싶을 뿐이고 그럼 공항이 미어터진다는 뉴스가 나오겠구나, 그 정도입니다.

그 공항에 가본지도 약 이천오백 년은 된 것 같습니다.

물론 내가 만난 그 어머니들의 후배 어머니들도 달라졌겠지요. 눈치 보며 며칠 더 있거나 올라오거나 할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그런 생각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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