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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냉면 시키면 불맛 나는 불고기도 주는 집

by 답설재 2024. 2. 3.

 

 

 

아내와 함께 식품가게에 들렀다가 오는 길에 자그마한 그 냉면집이 눈에 띄어서 김 교수 얘기를 꺼냈다.

"저 가게 김 교수가 혼자 드나들던 집이야."
"나도 가봤어. 그저 그래."
"김 교수는 맛있다던데? 몇 번이나 얘기했어. 냉면 시키면 불맛 나는 불고기도 준다면서."
"친구들하고 가봤는데, 별로던데..."
"냉면이나 불고기나 평생 안 먹어도 섭섭해하지 않을 사람이니 어느 가게엘 가면 맛있다고 할까?"

"......"

정곡을 찔렀기 때문이겠지? 아내는 대답하지 않았다.
나는 그게 탈이다. 아이들과 시험문제 풀이를 할 때처럼 매사에 정곡을 찔러야 직성이 풀린다.
죽을 때는 이 성질머리를 고쳐서 갖고 갈 수 있을까?
별수 없이 그냥 갖고 가겠지? "그 버릇 개 주나?"라는 속담도 있으니까. 인간은 고쳐서 쓸 수 없다고도 하고, 본성은 절대로 고쳐지지 않는다고도 하니까. 오죽하면 그런 말이 있겠나. 나 같은 인간이 여기저기 더러 있었겠지? 그러니까 그런 말이 회자되는 거지.

"김 교수가 저 집에 언제 한번 같이 가보자고 했는데, 이젠 틀렸지. 그때만 해도 나는 사무실에 1주일에 한두 번만 나갔지만, 김 교수는 멋진 연구실이 있고 전화받아주는 직원까지 있어서 매일 나갈 때였고, 집에 들어가면 서글퍼서 걸핏하면 혼자서 저런 가게 들리곤 했지."
"이젠 연구실 못 나가?"
"응. 어쩌다가 한 번 나가는 것 같아. 특별한 행사나 있으면."
"늙으면 다 그렇지."
"만나면 참 편한 사람인데도 찾는 사람이 거의 없어. 정기적으로 만나는 건 나밖에 없는 것 같아."
"잘해 줘. 좋은 일이야."
"내가 어떻게..."
"필요할 때 애써서 불렀고 그렇게 큰일을 했는데 이제 와선 아무도 들여다보지 않고 그러면 안 되지."
 
그 말을 들으며 이번엔 내가 말을 잇지 않았다.
나는 이제 돈도 생기지 않고 찾는 사람도 없고 이래저래 불쌍한 신세지만, 그는 학식도 풍부하고 학술월 종신회원이고 공항에 가서 패스포트만 보여주면 VIP실을 이용할 수 있고 한마디로 명예도 드높고 재산도 많고 좋은 집에서 살고 있고 미국 어디서 받는 연금도 매월 천만 원이 넘는 것 같지만 그래도 그도 불쌍하다.


그는 햄버거도 좋아한다. 빈손으로 미국 건너가서 공부할 때 햄버거와 콜라로 끼니를 때웠는데도 물리지 않았다고 걸핏하면 얘기한다. 언젠가 전화를 하다가 햄버거가 먹고 싶다고 해서 전철역 앞에서 만나 그곳 맥도널드에서 햄버거와 콜라를 시켜 먹었었다. 그걸 시켜 먹는 데 단 10분 정도나 걸렸을까? 우리는 더는 할 일이 없어 그 복잡한 가게 한 구석에서 한참 동안 멍하니 앉아 있었다.
그때 나도 사무실에 나가고 그도 연구실에 나갈 때 온 동네 식당을 다 돌아다니며 먹어보는 건데 아무래도 내가 잘못한 것 같다. 한 달에 겨우 한 번이라니... 이건 말이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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