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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외손자14

외손자와 놀던 곳 일주일에 서너 번은 저 계곡으로 들어갔다 나오곤 합니다. 그때마다 이 개울을 확인합니다. 녀석이 어디쯤에서 바지를 걷고 물속을 들여다보았지? 할머니는 어디서 녀석을 바라보았지? 그때 우리는 어떤 대화를 나누었을까? 그 대화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 초등학교 6학년 여름방학 때였습니다. 한 해 월반을 해서 지금은 대학 2학년입니다. 코로나만 아니면 훨씬 더 좋겠는데, 매일처럼 홍대 앞에 나갈 수 있을 텐데 그렇지만 잘 지내기를, 내가 전혀 생각나지 않을 만큼 신나는 나날이기를 저곳에서 생각하고, 다시 올라갑니다. 2020. 9. 21.
담배가 좋았던 이유 ♣ '이쁜이'라는 닉네임을 가진 분의 블로그에서 저 사진을 보게 되자, 담배에 대한 그리움이 일었습니다. 일전에 외손자 녀석의 흡연에 관한 인터뷰에 답해준 것도 생각났습니다. 내가 담배를 피울 때 가장 싫어하고 잔소리를 많이 한 사람은 당연히 아내였습니다. 뭐 거짓말 하지 않고 40년간, 1년 365일, 하루에 한 번 이상 잔소리를 들었다고 봐도 좋을 것입니다. 내가 담배를 피워서 무한 피해를 끼쳐 지금까지도 가슴이 쓰리게 하는 사람도 아내입니다. 1970년대에는 그가 앉아 있는 방안에서 담배를 피워댔고, 심지어 아이를 가졌을 때도 그 짓을 했으니 무슨 설명이 필요하겠습니까. 그럼에도 그는 동네 구멍가게에서 한 보루씩 외상 담배를 가져다 주었고, 봉급날 그 담배값을 갚아주었습니다. 무려 47년을 피워 댔.. 2012. 8. 28.
사랑하는 선중에게 녀석에게 메일을 보내놓고 '내가 괜한 짓을 했나?' 싶었습니다. 아직 철이 없어 그런 걸 가지고 내가 너무 신경을 곤두세우나 싶었던 것입니다. 대부분 "개구장이라도 좋다! 튼튼하게만 자라다오!" 그렇게 외치는 세상에서………… 식당이라면 그 통로를 운동장인줄 알고 뛰어다녀도, 음.. 2012. 7. 26.
이 아이, '두려운 사춘기'를 쓴 '두려운 사춘기'를 쓴 그 녀석이 무엇에 관심, 흥미를 가지고 있는지 알아보는 일은 피곤하고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므로 그저 내게 주어진 시간, 주어진 일에서 녀석의 말을 듣는 것으로 만족하면 될 것입니다. 며칠 전에는 전화로 좀 오래 살아야 한다고 다짐 받듯 했습니다. 그냥 "왜?" 하면 어디 아픈가, 피곤한가 물어보기 때문에 "왜애?" 하고 녀석의 분위기에 맞추었습니다. "제가 결혼하는 건 보셔야지요?" (이 녀석 봐. 내가 그럼 곧 죽어나자빠질 줄 아나? 녀석 하고는……) 그러더니 그 다음날인가 또 전화를 해서, 무슨 직업에 관한 '인터뷰'를 하고 나서(내가 하는 일들을 서너 가지로 묻더니 이게 인터뷰라고 했습니다), 이번에는 오랫동안 헤어져 있어야 하게 된 것처럼 인사를 길게 거창하게 했습니다. .. 2012. 5. 24.
두려운 사춘기 이 녀석이 내 외손자입니다. 저 모습이나 웃음을 참고 있는 표정을 보면 녀석이 어떻게 자라왔을지 짐작될 것입니다. 많이 이야기할 필요 없이 얘네 엄마가 좋은 직장들을 차례로 다 집어치웠습니다. 저런 저 표정이 더 중요했을 것입니다. 녀석이 지난봄에 인천 부평신문 어린이 기자가 됐는데, 그 카페 '가족 인터뷰' 코너에 「두려운 사춘기」라는 글을 실었습니다. (2012.5.17) '제대로 썼나?' 같은 건 녀석이 묻지 않으면 고민할 필요가 전혀 없는 일이고, '이녀석이 벌써?' 또 한가지, '녀석의 어미는 과연 사춘기에 대해 뭐라고 했을까?' '또 거기에 나는 어떻게 반영되어 있을까?' 나에게 주어진 역할에 불충실했지만, 그것에 호기심이 생겨 들여다봤습니다. '나와 관계된 일도 아직 좀 남아 있을까?' 그런.. 2012. 5. 24.
사랑하는 선중에게 벌써 5월이구나 담임선생님이 좀 무섭다고 하더니 선생님께서 네가 좋은 아이인 걸 알아보시고, 너도 선생님을 좋아하며 지내니까 참으로 다행한 일이다. 처음에 좀 무섭게 보이는 선생님이 알고 보면 마음씨가 곱고 열정적인 경우가 많은데 이번에 만난 선생님이 바로 그런 분인 것 같구나. 그러고 보면 너는 언제나 좋은 선생님을 만나고 있으니 그 복이 많은 아이가 분명하다. 나는 네가 어째 좀 야윈 것 같은 모습을 볼 때마다 걱정이 된다. 무슨 일을 하고 있으면 다른 일은 안중에도 없는 모습을 보면 나를 닮은 것 같아서 그게 고맙기도 하지만, '옛날의 나처럼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 저렇게 야윈 것인가?’ 싶기도 하다. 스트레스를 받는 것은 결코 좋은 일이 아니다. 성격이 그러면 나중에 몸은 약질이 되고, 나이가 들.. 2012. 5. 3.
공이나 뻥뻥 찼으면... 외손자가 썼습니다. 저녁을 먹고 앉아 있는데 녀석이 숙제를 했다면서 이걸 보여주었습니다. 안부 인사 학교에 갈 때는 레고 병정들이 "안녕, 굳모닝!" 학교에서 돌아오면 식물들이 반짝이며 "힘든 일 없었니?" 물어본다. 학원가방을 들자 벽지속의 거북이가 "발표 잘해!" 격려하고 터벅터벅 돌아오자 물고기가 반긴다. "어서 와!" 나는 이제 내 친구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나 없어서 심심했니?" 그러지 말고(이런 건 대충대충 하더라도), 그렇다고 3학년 때까지처럼 더러 아이들과 씩씩대며 싸우지는 말고, 그저 공이나 뻥뻥 찼으면 좋겠습니다. 전에는 그런 것 같았는데, 책을 들면 마지막 페이지까지 정신이 없습니다. 이 아이는 크리스찬이니까 크리스마스라고 책 네 권을 선물로 보냈더니 저녁에 전화로 이미 두 권.. 2011. 12. 23.
외손자 선중이 Ⅹ- 방과후학교 한자반에서 생긴 일 - 가을 기운이 드리운 초저녁의 아파트 마당에서 녀석에게 전화나 한번 하고 집에 들어가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하고 싶을 만큼 유난히, 많이, 울적한 날이기도 했습니다. 어미가 전화를 받아서 아침나절에 얘기한 대로 끝내 방과후학교 한자반에는 등록을 하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말하자면 한자반에서 쫓겨났다고 해야 할까, 사실대로 말하면 등록이 거절되었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녀석을 좀 바꿔달라고 했습니다. 일기를 쓰는 중이라던 녀석은, 전화를 받지 않으려는 듯하다가 '이건 피할 수 없는 상황이다' 싶었는지 무슨 큰일이나 당한 것처럼 "으앙─" 울음을 터뜨리며 전화를 받습니다. "괜찮다. 3개월간 쉬면서 왜 이런 일이 생겼는지 깊이 생각하며 지내라." 위로도 하고 채근도 했습니다. 그렇게 하다가 곧 전화를 끊으려는데.. 2011. 9. 8.
사랑하는 선중에게 사랑하는 선중에게 선중아. 이번 봄방학에 우리는 눈물로 만나고 헤어졌구나. 만나는 날, 한 번 더 살펴보고 한 번 더 생각해서 행동하는 의젓한 사람이 되겠다는 약속을 하자고 했을 때 네가 흘린 눈물은, 네 결심을 보여준 것이니까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헤어질 때는 가슴이 아팠.. 2011. 2. 24.
외손자 선중이 Ⅵ 지난 여름 어느 날이었습니다. 녀석이 날씨가 무더운데도 제 산책길을 따라나서게 되었습니다. 저녁식사 후에 모두들 시장에 가고 둘이서 남아 있었습니다. 어둑어둑한 골목길을 나아가며 불안해하는 것 같았으나 ○○초등학교까지만 갔다가 돌아온다니까 그 학교가 어디 있는지도 모르면서 좀 안심하는 눈치였습니다. ‘○○초등학교’ 하면 어느 동네에서나 그리 불안해할 만한 곳은 아니기 때문이었을까요? 땀을 흘리며 돌아오는 길에 녀석이 물었습니다. “할아버지, 매일 이렇게 걸어야 해?” “그럼, 의사 선생님이 그렇게 하지 않으면 죽는다고 했어. 그래 저녁 얻어먹고는 매일 저녁 이렇게 해.” 그러자 녀석이 다른 걸 가지고 대화를 잇습니다. “얻어먹기는 뭘 얻어먹어요!” “왜?” “할머니가 부인이잖아요.” “……” 뭐라고 하며.. 2010. 9. 9.
외손자 선중이 Ⅴ-가슴아픈 사랑 제 가족들은 제가 외손자에 대해 한없이 너그러운 걸 신기한 눈초리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저만큼 까다롭고 별난 성격도 찾아보기가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제가 녀석에게 유별나게, 한없이 너그러운 건 사실입니다. 그것은, 한번도 용서 받아보지 못했던 것 같은 저의 가혹한 어린 시절과,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 하더라도 스스로를 용서해주지 못한 제 지난날이 너무나 피곤하고 삭막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철이 들고부터는 누가 제 잘못이나 제 단점을 지적했을 때 한번도 뜸을 들이거나 잘 생각해보겠다며 제 반응을 유보해본 적이 없습니다. 결단코 없습니다. 두고두고 혼자서 속을 끓이더라도, 생각해보면 결코 그렇게만 볼 수는 없는 일이라 하더라도, 저는 결코 변명을 늘어놓지 않았으며, 당장 제 잘못만 들어 사과하지 않은 적이 .. 2010. 8. 30.
외손자 선중이 Ⅲ 월요일 오전에 다시 병원에 가보기로 했습니다. 5월 들어서 메스껍고 어지러운 느낌이 들 때가 있더니 그 증상이 차츰 심해지는 것 같아서 예약을 했습니다. 어지럽고 메스꺼운 느낌이 지나가면 몸이 파김치가 되어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입원을 하지 않아도 되고, 그냥 약만 조금 바꾸면 된다는 진단이 나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외손자가 저녁에 전화를 하더니 다짜고짜 "몸은 어때요?" 하고 물었습니다. 전화를 끊을 때도 그랬습니다. "건강하셔야 해요?" 언제부턴가 그 아이의 인사는 그렇게 됐습니다. "건강하셔야 해요?" 아니면 "건강하세요." 지난 4월 11일, 제 외삼촌 결혼식날에도 그 애는 저만 따라다녔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그 당시에도 제 몸은 그런 큰일을 치루기에는 벅찼습니다. 그러니 어떻게 합니까. 제.. 2010. 5.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