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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외손자 선중이 Ⅹ- 방과후학교 한자반에서 생긴 일 -

by 답설재 2011. 9. 8.

가을 기운이 드리운 초저녁의 아파트 마당에서 녀석에게 전화나 한번 하고 집에 들어가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하고 싶을 만큼 유난히, 많이, 울적한 날이기도 했습니다. 어미가 전화를 받아서 아침나절에 얘기한 대로 끝내 방과후학교 한자반에는 등록을 하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말하자면 한자반에서 쫓겨났다고 해야 할까, 사실대로 말하면 등록이 거절되었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녀석을 좀 바꿔달라고 했습니다.

일기를 쓰는 중이라던 녀석은, 전화를 받지 않으려는 듯하다가 '이건 피할 수 없는 상황이다' 싶었는지 무슨 큰일이나 당한 것처럼 "으앙─" 울음을 터뜨리며 전화를 받습니다.

"괜찮다. 3개월간 쉬면서 왜 이런 일이 생겼는지 깊이 생각하며 지내라."

위로도 하고 채근도 했습니다.

 

그렇게 하다가 곧 전화를 끊으려는데 녀석이 저를 불렀습니다. 녀석이 저를 부를 때는 눈물이 핑 돌 정도로 정답게 부릅니다. 저를 이렇게 불러주는 사람은 이 세상에 단 한 명, 그 녀석뿐입니다.

"할아버지↗"

오늘 병원에서 의사 선생님이 뭐라고 했는지 물었습니다. 대답하기 전에 우선 누가 너에게 그걸 물어보라고 하더냐고 반문했더니 아니라고 했습니다. 저는 병원에서 있었던 일을 자초지종 자세히 설명했습니다. 오늘 그걸 물은 사람은, 아내를 빼면 녀석뿐이어서 자세히 설명해도 전혀 지루하지 않았습니다.

 

 

 

 

정기검진일이어서 아침에 서둘러 병원으로 갔었습니다. 아직 아홉 시가 되지 않아서 간호사 옆 대기석에 앉아 의사를 기다리는데 둘째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시집장가를 간 자식들은 무슨 애로가 있으면 전화를 하지 않습니까? 그렇지만 이젠 힘도 없고 그걸 기대하지도 않는 경우가 대부분일 뿐만 아니라, 직접 해결해 줄 만한 일은 거의 없으므로 대체로 그냥 들어주기만 하면 되는 일들입니다. 시계를 보니 아직 십여 분의 여유가 있었습니다.

 

"무슨 일이야? 선중이는 학교 갔지?"

"예. …… 무슨 일은요. 늘 그 녀석 얘기죠. …… 좋은 일도 있고 나쁜 일도 있어요."

시작하는 품세가 역시 별일은 아니겠다 싶었습니다.

먼저 '좋은 일'이란 건, 지난 번에 어느 학원에 가서 시험삼아 영재반 시험을 봤더니 녀석의 수학 성적이 학원을 다닌 아이들보다 월등하더라고 했는데, 이번에 정말인가 싶어서 다른 학원에 또 가봤더니 그 학원에서도 역시 깜짝 놀라더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이런 아이는 나중에 특목고에 보낼 준비를 해주어야 한다"고 하더랍니다.

 

 

 

 

4학년이 된 지난 초봄에, 그 동네 공부깨나 하는 아이들은 모두들 영재반 학원 시험을 본다고 해서 그렇더라도 그런 학원에는 보내지 말라고 했는데, 어떤 연유에서인지 반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 '시험삼아'라지만 기어이 그 테스트를 해봤다는 건 학원들의 홍보와 전략이 보통이 아니라는 걸 보여주는 일입니다.

그래, 도대체 시험성적이 어느 정도인지 물었더니 영재반 학원에 다니는 아이들 중에는 200점 만점에 100점이 좀 넘으면 괜찮은 수준인데 녀석은 140점이 넘는다고 했습니다.

일단 학원의 전략에 속지 말라고 하고, 그럼 '나쁜 일'은 뭐냐고 물었습니다.

 

방과후학교 한자반 선생님이 이젠 도저히 등록을 받을 수 없다는 통보를 해왔다고 했습니다. 이 일이 시작된 건 지난봄부터였는지, 아니면 지난해부터였는지 잘 기억나지 않습니다. 어쨌든 그간 녀석의 어미가 한자 선생님을 찾아가 양해를 구하고 다시는 그러지 않도록 지도를 하겠다는 용서를 구한 것이 정말로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녀석은 한자 성적은 좋은 편입니다. '준4급'이고 서체도 제법입니다. 한자 선생님도 그건 인정한답니다. 다만 말썽을 피우는 일만은, 이제는 선생님도 어떻게 할 수가 없다고 하더라는 것입니다.

 

그래, 녀석의 반응은 어떤지 물어봤습니다.

"녀석이야 당연히 한자 선생님 찾아가서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고 또 빌겠다고 하지요."

그러면서 녀석이나 저나 찾아가서 용서를 빈 것이 어디 한두 번이냐고 했습니다. 그러면 차라리 좀 쉬게 하면서 이 '상황'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게 하는 것도 좋지 않겠느냐는 이야기를 하고 하는데, 때마침 의사 선생님께서 그 특유의 '전문적'인 자세로 좌우를 살피며 오시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그렇게 하여, 녀석은 한자 성적은 멀쩡한데도, 기어이 그 한자반에서 쫓겨난 것입니다. 아니, 등록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을 만들어 놓고 만 것입니다. 그렇게 상황이 전개되고 현실화된 날의 그 저녁, 일기를 쓰고 앉아 있는 녀석의 심정이 어떠했겠습니까. 기가 막히는 일이지요. 저 자신으로 봐서는 별안간 한자반에도 가지 못하는 처지가 얼마나 외롭게 느껴지겠습니까.

 

외조부인 저로서도 그렇습니다. 세상에…… 살다 보니까 이런 일도 있습니다. 이제 저는 교장이 아니고 심지어 교원도 아니니까 '교육적으로' 따지고 싶은 마음은 없습니다. 굳이 따질 수 있다면, 그럼 뭘 따지고 싶으냐고 묻는다면, 사실은 초등학교 아이를 두고 그 행동을 다루기가 너무나 어렵다면서 등록을 받아주지 않는 일이 합리적인가 아닌가, 초등학교에서부터 그렇게 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아, 참……, 그런 걸 말해 뭣 하겠습니까. 사실은, 현실적으로 그 선생님인들 오죽했겠습니까. 몇 달, 아니 해를 거듭해서 말썽을 피우는데 그 말썽으로 선생님이나 친구들을 여간 괴롭힌 게 아닌데 이제 와서 '좀 따질 수도 있다'는 제가 너무나 엉뚱한 외조부지요.

 

다만 저는 저를 닮은 피가 1/4쯤 그 몸 속을 흐르는 녀석이, 지금 얼마나 외로울까, 그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울지 마. 나도 사실은 언제나 외로워. 그렇지 않은 척 지낼 뿐이야" 그렇게 고백하는 것도 우스운 일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떻게든 녀석이 사람들과 좀 더 <평화롭게> 지낼 수 있는 사람으로 성장해 가기를 기원하고 싶을 뿐입니다.

그러면서도 에디슨의 어린 시절 일화가 자꾸 생각나기도 합니다. 정말인지 모르지만, 에디슨은 초등학교 때 퇴학을 당하기도 했다면서요?

 

 

 

 

여기까지가 어제 있었던 일입니다.

오늘 녀석의 어미와 다시 전화를 했습니다. 그 영재학원에서 연락이 왔는데, 그곳 어느 대학교 영재교육원에서 영재를 모집하고 있으니까 응이원서, 자기 소개서, 교사 추천서, 학부모 기록지를 갖추어 응모해 보라고 하더랍니다. 사실은, 제 딸은 어느 학교 일어 교사를 하다가 녀석 때문에 아주 접어 버리고 집에 들어앉아 있습니다. 그러면서 녀석을 다루는 일만으로도 허덕이는 것입니다. 저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아이 편하게 즐겁게 지내는 쪽으로 결정하자. 초등학생이 아니냐? 다만 그 대학의 영재 교육 프로그램을 알아보고, 노는 것처럼 짜여진 활동이거든 응모해보고 그렇지 않으면 집어치워라. 다 쓸데없는 일인지 모른다. 난 선중이 즐겁게 지내면 최고다. 그만이다. 가만 둬도 공부 때문에 나중에 얼마든지 고역을 치루게 된다. 대개 선행학습을 시키면서 영재교육이라고 떠들어 대는데, 그렇다면 교육과학기술부에서 몇 년씩 더 일찍 가르치는 교육과정을 만들지 왜 지금과 같은 교육과정을 만들겠나. 전문가들은 우리나라의 그 교육과정조차 너무 양이 많고 어렵다고 한단다."

 

 

 

 

  

녀석이 지난해 그러니까 3학년 때 쓴 한자 공책 : 핸드폰에서 이 사진을 다시 꺼내어 보는 건 무얼 어떻게 하자는 것이 아니고(그렇게 할 수도 없는 일이지만), 단지, 무엇 때문인지, 자꾸 억울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2011.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