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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외손자 선중이 Ⅲ

by 답설재 2010. 5. 30.

월요일 오전에 다시 병원에 가보기로 했습니다. 5월 들어서 메스껍고 어지러운 느낌이 들 때가 있더니 그 증상이 차츰 심해지는 것 같아서 예약을 했습니다. 어지럽고 메스꺼운 느낌이 지나가면 몸이 파김치가 되어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입원을 하지 않아도 되고, 그냥 약만 조금 바꾸면 된다는 진단이 나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외손자가 저녁에 전화를 하더니 다짜고짜 "몸은 어때요?" 하고 물었습니다. 전화를 끊을 때도 그랬습니다. "건강하셔야 해요?" 언제부턴가 그 아이의 인사는 그렇게 됐습니다. "건강하셔야 해요?" 아니면 "건강하세요."

 

지난 4월 11일, 제 외삼촌 결혼식날에도 그 애는 저만 따라다녔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그 당시에도 제 몸은 그런 큰일을 치루기에는 벅찼습니다. 그러니 어떻게 합니까. 제 몸 가누는 것보다는 더 중요한 일인데요.

 

그렇게 점심도 먹지 못하고 왔다갔다 하는 저를 보고 그 애는 안타까웠던 모양입니다. 아이스크림을 들고와 내밀다가 제 어미에게 머리만 쥐어박혔습니다. "선중아! 너! 이런 건 할아버지에게 얼마나 해로운지 모르니?" 그 애가 쥐어박혔는지도 몰랐습니다. 나중에 제 외조모로부터 들었습니다.

잠시 후, 눈앞에 잔치국수 그릇이 불쑥 다가왔습니다. 정신을 차려보니 그 애였습니다. 외손자가 가지고 왔는데 어떻겠습니까. 얼른 받아서 후루룩 국물을 마셨습니다. 잔치국수를 참 좋아하기도 하지만(발안휴게소의 잔치국수 드셔보셨습니까?), 시장해서인지 그 국물이 참 시원했습니다. 이번에는 제가 얼른 받아 마셨으니 제 어미도 쥐어박을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날은 제가 굶어 죽었다 하더라도 그 애 아니면 눈 하나 깜짝할 사람이 없었을 것입니다.

 

그 애는 올해는 반장도 아니고 부반장도 아닙니다. 그게 가슴 아픕니다.

지난 초봄, 제 어미에게 반장 해도 되냐고 묻더랍니다. 그걸 뭐 하려고 물었겠습니까. 그냥 해버리지 않고서……. 안 된다고, 너무나 힘들어서 올해는 하지 말라고 했답니다. 이튿날 선거에서 그 애가 추천한 애가 반장이 되었답니다.

제 어미도 어미지만, 정말 이러면 안 됩니다. 저도 교사였고, 한때는 교장이었기 때문에 이렇게 묻는 것이 미안한 일이지만, 반장 어머니가 왜 힘들어야 합니까? 왜 그게 아직도 이 나라의 현실이어야 합니까?

저는 그 애에게 뭐라고 해야 합니까? 제가 죽어도 눈물을 흘릴 사람은 그 애뿐인데……

 

요전에 그 애와 둘이서 얘기했지만, 그 애가 결혼하는 걸 봤으면 좋겠습니다.

그게 욕심이라면, 그럼 대학을 졸업하는 걸 봤으면 좋겠습니다.

 

 

 

 

 

 

 

 

 

 

 

 

지난해 10월 4일, 추석 연휴에 천마산 기슭에서 찍은 핸드폰 사진입니다. 그날 저 애는 다람쥐를 잡아달라고 극렬하게 떼를 썼습니다. 2학년 가을이니까 그 일이 불가능하다는 걸 알면서도 그랬을 것입니다. 외조부는 저를 위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는 걸 보여달라는 유아기의 마지막 막무가내식 부탁이었을 것입니다. 다람쥐를 찾아보고, 다람쥐 먹이가 될 도토리를 줍고, 그리고는 잡아달라고 떼를 썼습니다.

 

 

 

 

 

 

 

2009년 10월 5일이니까 그 이튿날 제 집에 도착하자마자 앉은뱅이 책상 앞에 앉은 모습입니다. 제 어미 앞에 가면 당장 저렇게 됩니다.

 

 

 

 

 

 

 

 

 

제 어미가 꾸며준 독서 기록입니다. 그 학교가 독서지도 연구학교여서 저런 걸 꾸몄을 것 같습니다(2010.1.15).

 

 

 

 

2010. 2. 14. 설날

 

 

 

2010. 2. 14. 설날

 

 

 

2010. 3. 6. 토요일.

 

 

인천 부평 역사박물관 뒤 '시냇물 공원'에서 설탕으로 만든 잉어를 뽑고 찍은 기념사진. 햇볕에 눈이 부셔 표정이 저렇습니다(20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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