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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두려운 사춘기

by 답설재 2012. 5. 24.

 

 

 

 

 

이 녀석이 내 외손자입니다. 저 모습이나 웃음을 참고 있는 표정을 보면 녀석이 어떻게 자라왔을지 짐작될 것입니다. 많이  이야기할 필요 없이 얘네 엄마가 좋은 직장들을 차례로 다 집어치웠습니다. 저런 저 표정이 더 중요했을 것입니다.

 

녀석이 지난봄에 인천 부평신문 어린이 기자가 됐는데, 그 카페 '가족 인터뷰' 코너에 「두려운 사춘기」라는 글을 실었습니다.  (2012.5.17)

 

'제대로 썼나?' 같은 건 녀석이 묻지 않으면 고민할 필요가 전혀 없는 일이고, '이녀석이 벌써?' 또 한가지, '녀석의 어미는  과연 사춘기에 대해 뭐라고 했을까?' '또 거기에 나는 어떻게 반영되어 있을까?' 나에게 주어진 역할에 불충실했지만, 그것에  호기심이 생겨 들여다봤습니다.

 

'나와 관계된 일도 아직 좀 남아 있을까?' 그런 걱정도 좀은 있지만, 그럴 리는 없을 것입니다. 녀석의 외조모는 죽어서 떠나  가려고 누워 있다가도 자식 문제라면 "아! 잠시만! 저것만 해결하고 가야지." 하고 일어날 사람이지만 나야 뭐 그렇지도 못한  사람이니까요.

 

 

 

저는 요즘 사춘기가 옮을까봐 형, 누나들을 피해 다닙니다. 그 병에 걸리면 몇 년 동안 모든 일이 귀찮아지고, 부모님과 선생님께 반항하면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벌써 ‘사춘기’라는 병에 걸린 것 같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사춘기의 1기쯤입니다.

 

가정의 달 5월을 맞아 가족인터뷰 대상자로 어머니(김채린, 39세)를 선택했고 어머니는 인터뷰 질문을 사춘기로 제한하셨는데, 지금까지 말한 내 이야기가 질문을 사춘기로 제한하신 까닭인 것 같습니다.

 

 

Q. 왜 사춘기 때의 질문으로 제한하셨나요?

 

넌 아마 엄마가 그동안 답하지 않은 것을 집중적으로 물을 테니까. “우리 집 한 달 수입은 얼마인가요? 휴대폰은 언제쯤 사주실 건가요?” (저는 정말 궁금합니다)

그보다도 요즘 너와 나의 주된 대화주제가 사춘기여서인지, 나의 사춘기에 대해 돌아보는 시간을 많이 가지고 있다.

 

Q. 언제부터 부모님께 반항심이 드셨나요?

 

부모님께 반항심이 심각하게 지속됐던 기억은 없다. 부모님이나 선생님들께서 원치 않았던 행동을 하고 싶었던 욕구가 없었다. 오히려 어긋난 길을 가고 있지 아닐까 온통 두려운 마음뿐이었다. 그러니까 반항심이 생길 여유가 없었다.

 

어머니는 공부를 무척 잘하셨습니다. 좋은 대학과 대학원에서 장학금을 받으셨습니다. 외할머니께서는 어머니가 집안의 심부름도 가장 잘했다고 하십니다. 그런 어머니에게 반항심이 없었다는 말은 믿을만합니다.

 

 

Q. 아, 그럼 사춘기를 별 탈 없이 잘 보내셨겠네요.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진짜 사춘기가 뒤늦게 시작되더니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로 힘든 것이었다. 너를 낳고 키우면서 내 사춘기는 서른이 넘어서 시작되었다. 그제서야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고민을 하기 시작했으니까. 선중이는 이제 열두 살인데 작년에도 이런 생각을 하더라. ‘나는 누구인가, 어디로 가는 것인가’ 이런 고민이 들 때마다 눈을 감고 지그시 생각한다며?

 

Q. 네, 눈을 감고 지그시 생각하면 복잡한 생각이 조금 정리되고 해결될 때도 있어요. 그런데 사춘기일 때 가장 괴로웠던 점은 무엇인가요?

 

내 고민으로도 복잡한 시기였는데, 선중이는 그림같이 가만히 앉아 있는 아이가 아니었다. 예민한 너는 친구들과 놀다가 토라지기도 잘 했고 그 덕에 친구들에게 미안한 일도 꽤 있었다. 학교 들어가서는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대로만 할 수 없다며 어깃장 놓는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엄마는 항상 너를 설득하고 사건사고 뒷수습으로 한가할 틈이 없었다. 너도 기억하지 않니?

 

Q. 저도 기억해요. 항상 죄송하게 생각해요. 그런 기억은 그냥 잊어버리세요! 가장 문제였던 때는 언제고, 이유는 무엇인가요?

 

네가 8살 때, 직장을 그만두어야겠다고 완전히 결정했을 시점이었다. 전업주부는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때라서, 이제 내가 이름 없는 전업주부가 된다는 절망감이 있었다. 열심히 공부하고 그동안 쌓아왔던 노력이 다 소용없는 것이라는 반발심도 심각했다. 질풍노도의 시기인 사춘기가 이렇게 시작되었다.

 

Q. 그 사춘기 때 가장 다독여주고 격려해준 사람은 누구였나요?

 

이웃의 너그럽고 현명한 아주머니들. 가끔 조심해야 할 무서운 아주머니들도 있는데, 주변에 항상 좋은 분들이 있었다. 그분들을 보면서 전업주부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것과 개인적인 목표만을 위해 살아왔던 30년만큼이나 자식과 부모님, 남편을 지지하고 보호해 주는 조력자의 삶도 가치가 있다고 깨달았다. 축구를 보더라도 골을 넣는 스트라이커에게만 열광하는 것이 아니라, 수비수들의 움직임도 의미 있게 다가왔다. 그러다보니 세상이 더 재미있어지더라.

 

Q. 만약에 사춘기 때로 다시 돌아가면 바꾸고 싶은 것이 있나요?

 

모두가 겪는 과정이고 때가 되면 지나가는 과정인데, 조금 덜 불안해하고 고민했으면 좋았을 것이다. 그 시기에 많이 불안했었다. 하기야, 그래서 사춘기 아닐까?

 

Q. 제 생각에 어머니의 사춘기는 아직 끝나지 않은 것 같은데요. 자신이 사춘기를 잘 이겨냈다고 생각하십니까?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아직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지만, 이제 너의 사춘기가 시작될 테니 곧 끝내야한다고 생각한다. 자식과 같이 겪는 것은 우습지 않니?

그래도 나는 잘 이겨냈다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김선중, 다정한 모습으로 우리 곁에 있는 너이다. 네가 처음부터 순조로운 아이였다면 엄마는 뒤늦은 사춘기도 겪지 못하고 삶의 의미도 모르는 나만 생각하는 할머니로 늙었을 지도 모르는 일이다. 너는 해가 갈수록 달라지고 넓어진다. 네 모습이 보기 좋다.

 

Q. 저도 요즘 사춘기인 것 같아요. 제가 반항심 갖고 그럴 때 어떤 기분이 들어요?

 

어떤 기분이더라? ‘때가 왔구나!’ 하고 느낀다. 엄마가 잘 도와줄 수 있으면 좋겠지만, 이유 없는 반항심은 솔직히 기분이 별로이기는 하다. 예전에 네가 한 살 어린 애가 말을 막 한다며 기분 나쁘다고 했지! 그것과 비슷한 기분이 들 것 같은데.

 

Q. 사춘기를 먼저 경험한 선배로써 한 말씀해 주세요.

 

선중이는 사춘기가 되어서 생기는 몸과 마음의 변화에 대해 조금 두려워하는 것이 느껴진다. 두려워하지 마라. 고민하고 심각했던 만큼 네가 더 자라고 단단해질 것이다. 사춘기 때 하는 많은 선택과 행동 중에 잘못된 것이 있을 수도 있다. 그것을 깨달았을 때 선중이가 원래 자리로 돌아올 수 있다면 잘못된 선택과 경험들이 너에게 힘이 될 테니까 걱정마라. 사춘기를 겪는 것은 네가 정말 ‘너’가 되는 과정이란다.

 

 

사춘기가 완전히 끝나면 어머니는 이제 이웃에게 도움이 되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2014년 어머니와 저는 인천아시안게임에서 자원봉사자로 활동하려고 합니다. 그 때 저는 사춘기를 어떻게 이겨내고 있을지 궁금합니다.

 

아직도 사춘기가 두렵습니다. 하지만 인터뷰를 끝내고 마음이 조금 더 편해진 것도 사실입니다. 저를 항상 보듬어 안아주시고, 사랑해주시는 어머니께 감사드립니다. 사춘기에 대해 한 발자국 더 다가간 것 같아요. 인터뷰에 응해주시고 성실하게 답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지금 하시는 것처럼 저를 대해주시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해주시면 무척 좋을 것 같아요. 사춘기를 경험할 때도 저를 바르게 이끌어주시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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