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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다 버리고 절에 들어갈까?-부처님 오신 날을 앞두고-

by 답설재 2012. 5. 26.

 

 

종교가 있다는 건, 위안이다. '마지막 카드' 같은 희망이다.

‘이제라도 하나님을 찾아갈까?’

‘다 버리고 절로 들어갈까?’

정말로 힘들면 그런 생각을 한다.

 

신부님·수녀님·스님 들은 신비롭다. 그분들의 생활이 신비롭다. 그 신비로움이 그분들을 향한 그리움을 만든다.

 

그렇지만 그런 신비로운 분들이라 하더라도 현실에 끼어들면 그 동경, 환상, 존경, 신비가 깨져버린다. 우리를 구제해 주기 위한 몸부림이라 하더라도 싫다. 그것이 버러지만도 못한 나를 살려주기 위한 기도라 해도 싫다. 하필이면 나를 아껴 우리 집 문간에 찾아와 "내 말 좀 들어보라!"고 한다 해도 나는 싫다. 무조건 싫다. 내가 죽을 때까지 찾아가지 않는다 하더라도 제발 거기, 그곳에서 영원히 기다려주기만 하면 좋겠다. 내가 영영 찾아가지 않을 것 같더라도 그 기다림을 은유적(隱喩的)으로만 표현해주었으면 좋겠다.

 

 

 

 

요즘 신문에 오르내린 중이나 목사 같은 사람들이 들으면 분명 한 마디 하려고 들겠지만, 그들이 그렇게 하는 것을 싫어하는 이유는, 내가 살아가는 이 세상을 지금보다 더 좋게 해주는 것보다 내가 정말로, 이제 더 이상 기대할 만한 아무것도 없을 때, 내가 찾아갈 수 있는 곳, 내가 찾아갈 수 있는 대상으로 남아 있기를 기대하는 것이 내게는 훨씬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일요일에 찾아가서 좋은 말씀 듣고, 나보다 지혜롭고 지위가 높고 돈도 많은 사람들, 그러므로 '쎈 사람들'을 만나서 즐거운 시간도 보내는 것보다는, 내가 찾아갈 마지막 대상으로 두고 동경할 수 있는 것을 훨씬 더 좋아하고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에 그들이 우리 생활에 끼어드는 것을 싫어한다.

 

나는 그래서 크리스마스를 좋아하고, 경건하게 보내고 싶고, 부처님 오신 날을 싫어한 적 없고 경건하게 보내고 싶어한다.

 

 

 

 

나는 지위가 어마어마하게 높은 사람이 어느 곳에서 무릎을 꿇고 무슨 기도를 올리는 사진이 실린 잡지를 가지고 있다. 나는 '중'들이 '사람'들처럼 노름도 하고 술도 마시고 또 무슨 일을 풀코스로 했느니 하지 않았느니 하는 기사가 실린 신문도 가지고 있다. 그 신문 기사를 보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이들이 "우리도 사람이다!" 하고 부르짖으며 뛰쳐 나오면 어떻게 하나…… 그러면 누가 나서서 그 일을 수습하나……'

 

이렇게 중얼거리기도 했다.

"과연 쎄긴 쎄구나!"

 

그러나 그런 일들을 보고 이제 교회나 절에 가봐야 하겠다고 마음먹을 사람은 없을 것 같다는 생각도 한다. 내가 만약 그렇게 한다면, 그런 일들을 보고 절이나 교회에 가야 하겠다는 결심을 한다면, 나는 웃기는 인생, 드디어 미친 놈이 될 것이다. 지금도 사실은 미친 놈인지 모르지만 드디어 내가 나 자신을 미친 놈으로 취급하게 될 것이다.

 

 

 

 

이 글을 읽어볼 중이나 목사는 없겠지만 설사 읽는다 해도 기분 나빠할 것은 없다. 나는 결코 리처드 도킨스 같은 사람이 아니고, 있는 대로 다 고백하면 사실은 이렇게 어려운 세상에 태어나 돈도 권력도, 그러므로 거의 아무것도 없이 허접하게 지내면서도 늘 그런 사람들이 있는 그곳을 그리워하면서 살아왔기 때문이다.

'교회는 어떤 곳일까?'

'절에서 살아가면 어떨까?'

그런 생각을 자주 하면서도 수많은 교회가 있고, 수많은 절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쯤밖에 되지 않는 수준의 세상을 살다가 돌아가야 하게 된 것만을 한없이 서글픈 일로 여기고 있기 때문이다.

 

 

 

 

까짓거 그런 사람들이 '개판'을 쳐도 상관없긴 하다. 한두 번도 아니지 않는가. 한두 번이 아닌데도 하나님, 부처님은 여전히 그곳에 계시지 않은가.

그와 같은 중이나 목사들도 '인간'이라면 받아야 할 돈은 받고 싶고, 미운 사람은 없어지는 걸 봐야 속이 시원하지 않겠는가.

 

아쉬운 건, 나 같은 사람에겐, 이 세상에 신부님이 계시는 것만으로도 고맙고, 스님이 그 외로운 곳에서 부처님 모시고 계시는 것만으로도 미안하고, 목사님이 이 벌레 같은 것까지 포함해서 기도해 주시는 것만으로도 훈훈한데…… 모두들 그렇게 가만히만 계시면 참 좋겠는데…… 그분들 중 몇몇은 왜 자꾸 나서는 건지, 이제 수행(修行)만 하는 것은 신물이 나니까 우리더러 본(本) 좀 보여 달라는 건지……

 

다시 한번 말하지만 몇몇이 '개판'을 쳐도 상관없긴 하다. 내가 보기에 아무리 그렇게 해도 하나님이 없어지시거나 부처님이 사라지시진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고, 다만 그 몇몇이 나처럼 '개판'으로 살아가는 것이 부처님이나 하나님 뵙기에 괜히 내가 송구스러울 뿐이다.

 

 

 

 

모레는 부처님 오신 날이다. 3일간 연휴다.

 

선친 기제 준비로 양재에서 시장을 보고 11시 30분에 출발해서 오후 2시 가까이 되어 돌아왔다. 30분 남짓 거리에 그렇게 되었다. 춘천 쪽으로 빠지는 승용차들이 도로를 꽉 막고 있었다. 경부고속도로는 80km에 걸쳐 정체란다. 어제(금요일) 오후에 벌써 고속도로가 꽉 막혔다는 방송을 들었는데 오늘 역시 명절을 앞둔 날처럼 정체가 극심하다. 심지어 내일 오전에도 정체가 이어질 것이라고 한다.

 

나는 어디로, 누굴 찾아가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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