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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선생님'이라는 이름

by 답설재 2012. 5. 12.

'선생님'이라는 이름

- 스승의 날에 생각해본 '선생님'-

 

 

 

 

 

식당에서 종업원을 부르는 걸 보면 천차만별이고 때로는 '가관(可觀)'입니다. 사실은 이런 비판을 하면서도 어떻게 부르는 게 좋을지 판단이 되지 않아서 좋은 제안을 하기가 어렵고 거의 불가능하기도 합니다. 오죽하면 스스로의 무지(無知)는 생각도 않고, 우리말의 호칭이 그리 발달되지 못한 건 아닌지 공연한 의심을 하기도 합니다.

 

"어이, 종업원!" 그렇게 부르면 당장 '저 사람이 화가 났나?' 아니면 '저놈이 무슨 재벌이거나 대단한 권력을 가졌나? 왜 저렇게 잘난 척하지?' 하고 백안시하지 않겠습니까? 그렇다고 상냥하게 "종업원?" 하고 부른다 해도 이상한 눈초리로 바라볼 건 뻔합니다. "종업원님!" "보소!" "헤이!" "이봐요!" "여기요!"……

"이봐요!"

나이든 사람 중에는 더러 그렇게 부르는 경우도 봤지만, 그 호칭을 일반화하자고 하면 거부하는 사람이 많을 것 같습니다. '보긴 어딜 봐!' '이봐요라니!'......

또 늙으나 젊으나 간에 더러 "여기요!" 하는 경우가 있긴 하지만 이 경우도 일반화하기는 적당하지 않을 것입니다.

 

"아주머니!" "아저씨!" "아가씨!" "총각!" 사실은 이런 호칭이 괜찮은 것 같은데도 대체로 퇴색하고 만 것 같습니다. 그러더니 요즘은 참 엉뚱하고, 한심하고, 어처구니없는 호칭이 그야말로 각광을 받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이모!" "언니!"

이모라니요? 언니라니요? 이모가 뭔지 모릅니까? 언니가 뭔지 모릅니까? 우리의 그 소중하고 아름다운 호칭을 다 집어치우기로 작정했습니까?

"이모"의 경우, 처음에는 '아, 저 사람의 이모가 이 식당에서 일하는구나.' 했습니다. 한 번 속았는데도 또 속습니다. "언니"의 경우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식당뿐 아닙니다. 가령 목욕탕에서 주변에 있는 어느 낯선 젊은이를 부를 일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봐! 젊은이." 그렇게 하면, 그가 몰상식한 짓을 하고 있다 하더라도 당장 시비가 붙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요즘은 나이를 이야기하기도 어렵거니와 나이 가지고 호칭을 정하기에는 이미 세상이 너무 변하여 저만치 가고 있는 느낌입니다. 그렇다고 옛날에 시비 붙을 때 하던 대로 "형씨!" "주인장!" 어떻고 할 수는 없습니다. "형씨"라니요. 우선 나보다 나이가 많아야 형씨가 되든 어쩌든 할 것 아닙니까? 또 "형씨!" 따위로 부르면 당장 '아, 시비 한번 붙자는 건가?' 하고 쳐다볼 사람이 대부분일 것입니다. "이보세요?" "여봐요?" "여보세요?"…… 그 젊은이를 전화할 때처럼 부르는 것도 그리 신통하진 않습니다. 그래서 나는 흔히 이렇게 합니다. "저――― " 그러면 그 상대방이 대체로 이쪽을 쳐다보기 마련입니다. 그렇지만 그건 '궁여지책'일 뿐이지 "저――― "가 무슨 호칭이 되지는 않습니다.

 

 

 

 

TV를 보면 PD가 '아무나'를 보고 이렇게 부릅니다. "저―― 선생님!" 대부분 대수롭지 않은 프로그램이고, 흔히 만취가 되어 길거리에 쓰러져 있는 사람이나 산비탈이나 뭐 그런 곳에서 혼자 사는, 사연이 길거나 남다른, 그중에서도 기이한 차림의 사람을 부르는 경우였습니다. 그리고 신분이 분명하거나 직업이 뚜렷이 밝혀진 경우에는 그렇게 부르는 경우를 보지 못했습니다. 그렇다고 결코 그런 사람의 속까지 초라하다는 뜻은 아닙니다.

 

몇 년 전, 그렇게 부르는 경우를 처음 봤을 때는, 그 PD가 실수를 저지른 줄 알았고, 자칫하면 방송국에 알아보고 따져야 하겠다는 생각까지 했었습니다. 교육자로 태어나 그야말로 교단에 일생을 바쳤다고 '자부(?)'하는 처지에서는 "선생님"이라는 호칭이 눈물겹고 고마워서 때로는 쑥스럽고 미안한 마음을 무어라고 설명하기조차 어려운 바가 없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거, 내가 뭔가 잘못 인식하고 있나?' 혹이나 싶어서 사전을 들여다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1) 학생을 가르치는 사람을 두루 이르는 말.

(2) 어떤 일에 경험이 많거나 잘 아는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 낚시에는 내가 선생님이다.

- 이 방면에는 김 씨가 선생님이지요.

(3) 성(姓) 또는 직함 따위에 붙여 남을 존대하여 이르는 말.

- 박 선생님

- 의사 선생님.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사람을 "선생님"이라 부른다고 생각해서 학원강사를 보고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것조차 못마땅해 하고, 의사를 보고 "의사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것에 대해서도 '의사는 대학에서 강의를 하는 경우가 많으니까……' 하던 '고지식'이 사전의 저 정의와 예문을 보고, 지나가는 사람을 뭐라고 부를지 망설여지는 경우 "저― 선생님" 할 수도 있겠구나 생각하니 기가 막혔습니다.

 

그래서 이런 생각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선생님이라는 호칭에 대해 우리처럼 저렇게 정의하는 나라가 또 있겠나!'

'기이한 행색을 한 사람(대부분 남성)을 편리하게 부를 때 "선생님"이라고 하는 나라가 우리나라 말고 또 있겠나.'

 

 

 

 

그래서일까요? 요즘은 자신을 스스로 높여 부르는 경우가 참 많습니다.

"교장선생님이 이야기해 주겠어요."

교장이라는 사람이 아이들 앞에서 그렇게 이야기합니다. 그걸 보고 교실의 교사들도 그렇게 합니다.

"자― 모두 선생님을 바라봐요. 선생님이 이야기해 줄게요."

아이들에게 호칭을 가르쳐 주려고 그럽니까? 그러면 "얘들아, 바로 내가 너희들의 선생님이다." 한 번만 가르쳐 주면 다 알 것을 매번 그렇게 하면 아이들이 바보로 보인다는 얘기지요.

 

학교에서만 그런 것도 아닙니다.

"김 장학관입니다."(적어도 상대방을 존중할 줄 아는 사람이라면, 혹은 그가 건방진 사람이 아니라면, 이렇게 해야 맞는 거지요. "저는 장학관 김 아무개입니다.")

"방금 소개 받은 이○○ 학무국장입니다."

"제가 박◇◇ 교수입니다."

교육자라는 사람들이 이쯤 되면 남들 비난할 것도 없습니다. 방송을 보면 제 아내를 '부인'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고, 제 부모를 "아버님" "어머님"이라고 하기도 하고, 그야말로 기가 막힐 지경입니다.

 

 

 

 

그나저나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저 교사들을 뭐라고 불러주어야 합니까?

요즘 교장, 교감 선생님을 그냥 "교장님" "교감님"이라고 부르는 사람도 보이지만, 그렇다고 "교사님"이라고 할 수도 없지 않습니까?

"아, 왜 안 됩니까? 교수는 '교수님', 판사는 "판사님", 원장은 "원장님", 대령은 "대령님", 서장은 "서장님", 사장은 "사장님", 동장은 "동장님"…… '님' 자만 붙이면 다 되는데, 왜 안 됩니까? 익숙해지지 않아서 그렇지 우리가 자주 그렇게 부르면 익숙해질 텐데 그렇게 해보지도 않고서 어쩌구저쩌구……"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안 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입니다. "교장님"이라니요. 그럼 의사를 보고 "의사님"이라고 합니까? "교사님"이라니…… 뭐가 그리 인색합니까?

생각해 보십시오. "교장선생님" "교감선생님" "부장선생님" "주무관님" "행정실장님" "차석님" 그런 건 좋지만 "교사선생님"도 있을 수 없는 호칭이지 않습니까?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지요.

안 되는 걸 되게 하자며 무슨 캠페인, 운동이라도 벌여야 합니까?

 

 

 

 

호칭이라는 건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닌 것 같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나를 부르는 호칭도 가지가지입니다. "선생님" "교장선생님" 심지어 아직도 "장학관님" "과장님"에다가 "위원님" "위원장님" "어르신"(기호 지방에서 낯선 젊은이들이) "어른"(경상도에서 올라온 교원이).

게다가 분명히 나를 한번 부른 다음 무슨 얘기를 하려는 눈치는 분명한데, 뭐라고 부르면 좋을지 망설이다가 그걸 순간적으로 답답하다고 느낀 내가(그렇다기보다는 그 망설임을 견디기 어려워서) 먼저 무슨 말을 하는 바람에 그만 때를 놓치고 대화를 하고마는 경우도 여러 번 봤습니다. 뭐가 그리 인색한지 원……

 

나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선생님들은 지금 외롭습니다. 누가 잘못 했는지, 누가 이 모양을 만들어 놓았는지 교육은 잘 되지 않고, 아무리 열심히 해도 사회의 평가가 좋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고, 그렇다고 진정코 '마지막 보루'여야 할 교육자들마저 내팽개치듯 하고 돌아설 수도 없는 일이고, 정말 생각하면 할수록 기막히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도 뭐 그리 인색합니까?

그들에게 좋은 호칭을 찾아주는 것이 더 급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마음으로부터 조용히 "선생님"이라고 부르면 될 것입니다. 우리가 '아무나'를 보고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경우를 줄여 나가야 한다는 생각을 합니다.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경우를 인색하게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일에는 무슨 큰 전문성이 필요할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저 정성 문제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사전(辭典)은 나중에 고치면 됩니다. 잘 분석해보면 해석하기 나름이므로 고치지 않아도 될 것 같기도 합니다.

"선생님……"

그 호칭을 어떻게 아무렇게나 돌려댑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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