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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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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난리」/ 雪木 내 독후감(아모스 오즈《숲의 가족》)에 설목 선생이 써놓은 댓글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시인은 감흥이 남다를 것 같기도 하고, 코로나19 때문에 들어앉아 있어야 하는 사정을 생각하면 저 숲의 요동이 유난스럽게 보일 수도 있고, 거기에 "숲의 가족"이라는 책의 독후감이어서 '잠시' 그렇지만 '한바탕' 자신의 느낌을 전해주고 싶었겠지요. 이 글이 그 댓글입니다. 숲에 가면 난리도 아닙니다. 꽃이란 꽃들이 난리입니다. 어리둥절합니다. 매화, 산수유, 동백꽃 들이 온통 난리 치고 간 다음 지금은 목련, 개나리, 진달래, 벚꽃 들이 뒤를 잇고 있습니다. 앞으로 복사꽃, 살구꽃, 철쭉, 연산홍 들이 난리 칠 때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꽃들만 난리입니까. 잎눈들이 눈을 뜨고 세상을 내다보고 있습니다. 그 눈빛이 하도.. 2021. 4. 16.
"봄이 폭발했다" 오늘이 경칩(驚蟄)이죠? 개구리가 봄이 온 것도 모르고 늦잠을 자고 있다가 놀라 깨어난다는 날. 봄이 진짜 완연했습니다. 하기야 입춘 지난 지 한 달이잖아요? 그 사이에 우수(雨水)도 지났고요. 봄은 늘 이렇게 눈 깜빡할 사이에 왔던가요? 지난 1일에는 강원도를 중심으로 폭설이 내려서 눈에 갇힌 사람들은 오도 가도 못하고 일곱 시간을 추위에 떨었다는데 그렇게 오들오들 떨며 "봄인데 이 고생이네" 했겠습니까? "아무래도 아직은 겨울이야" 했기가 십상이지요. 그런데 사나흘 후 '완연한 봄'이라고 하면 이건 눈 깜빡할 사이가 아니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봄은 슬며시 오는 게 아니라 "짠!" 하고 불쑥 얼굴을 내민 거죠. 그러니까 개구리도 "앗! 봄이야?" 하는 것이겠지요. 말벌과 파리 떼들의 윙윙거리는 소리와.. 2021. 3. 5.
2020 봄 저기 새로 돋은 나뭇잎들 좀 봐! 벌써 저렇게 활짝 폈네. 이제 어쩔 수 없지. 저걸 무슨 수로 막아. 그냥 두는 수밖에…… 2020. 4. 29.
봄 산수유꽃이 피고 있다. 봄이 와 있다. 가만히 보니까 지난해의 열매가 아직 붙어 있다. 지금 저 신선한 것들의 노랑처럼 저렇게 꽃이 피었던 자리에 맺힌 열매가 아직도 붙어 있는 것이다. 어쩌려고 저럴까? 언제까지 저러려는 것일까? 한때 꽃이었고, 여름 지나고, 가을 지나고, 마침내.. 2019. 3. 16.
꽃잎 털어버리기 1 꽃잎이 떨어집니다. 저렇게 무너집니다. 어떻게 할 수가 없습니다. 2 떨어지는 꽃잎이 성가신 사람도 있습니다. 참 좋은 곳인데 그곳 청소를 맡은 분이 보는 사람이 나밖에 없다는 걸 확인하고 빗자루로 아예 아직 떨어지지도 않은 꽃잎까지 마구 털어버렸습니다. '참 좋은 곳'이어서 그 여성도 참 좋은 분 같았는데 그 순간 그녀가 미워졌습니다. 그녀를 떠올릴 때마다 괜히 '악녀' '마녀' '해고(解雇)'(아무래도 이건 아니지? 그럼 '경고'! 경고도 심하다면 '주의'!) 같은 단어들까지 떠올라서 속으로 미안하기까지 했습니다. 연전에는 단풍이 든 잎을 길다란 빗자루로 털어버리는 사람들을 본 적도 있습니다. 빗자루를 들었으니 그들은 그걸 "청소"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3 그녀는 지금 그렇게 한 걸 후회하고 있.. 2018. 5. 19.
아름다운 한국, 한국의 봄 아름다운 한국, 한국의 봄 서울의 산들은 산등성이 사이 사이에 검은 바위투성이나 뒤틀린 소나무의 황폐한 모습을 드러내기도 하지만 자줏빛 황혼이 지는 저녁이면 모든 산봉우리들이 마치 반투명의 핑크빛 자수정(紫水晶)처럼 빛난다. 산그늘에는 코발트색이 깃들고 하늘은 초록색이 .. 2018. 5. 1.
"저것들 좀 봐" "저것들 좀 봐" 눈여겨보지 않는 곳에서라도 기어이 피어난 저것들. 마침내 당당해진 저것들. 가장(假裝)이 필요 없는 저것들. 눈여겨보지 않는 눈을 비웃는 저것들. 그러면서도 그냥두는 저것들. 2018. 4. 28.
봄 2018 이러다가 이 봄도 또 가고 말겠네 2018. 4. 18.
「이 봄날」 2017.4.7. 이 봄날 산수유 매화 목련 벚꽃 민들레 노랗거나 하얗고 잔잔한, 이름을 알 수 없는 그것들도 함께 아파트 정원이면 어떠냐는 듯 일제히 피어나는 아침 추억 같은 이 봄날 되풀이되는 걸 보는 일은 얼마나 행복한가요 좀 보라고 행복한 하루가 아니냐고 묻고 싶어요 살아 있다면 .. 2017. 4. 21.
또 입춘(立春) 또 입춘(立春) 고양이 두 마리가 놀다 갔다. 털빛이 서로 다른 그 한 쌍은 신이 난 것 같았다. 앞서거니 뒷서거니 사이도 좋았다. 부러운 것들……. 그들도 곧 봄인 걸 알고 있겠지. 달력을 보고 나왔으면 내일이 입춘이란 것도 알고 있을 것이다. 그걸 즐거워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사는.. 2017. 2. 3.
「봄요일, 차빛귀룽나무」 봄曜日, 차빛귀룽나무 박수현 그 물가에는 차빛귀룽나무 한 그루 서 있었네 햇귀를 끌어당겨 푸른 머리핀처럼 꽂고 심심해지면 고요 밖에서 한눈팔 듯이 제 몸을 비춰보기도 한다네 그러고 나면 어찌 눈치채고 빈 데마다 쓸데없는 구름 그늘끼리 몇 평씩 떠 흐르네 낮결 내내 부젓가락처럼 아궁이를 뒤지던 부레옥잠도 어리연도 마냥 엎질러져 정강이째 찧으며 물살을 나르네 한나절 봄빛을 덖어낸 차빛귀룽나무 조붓하고 어린 나비잠을 스치며 희디흰 산그늘 한 마리 드문드문 허기져서 느린 봄날을 건너네 ―――――――――――――――――――――――――――――― 박수현 1953년 경북 청도 출생. 2003년 『시안』 등단. 시집 『운문호 붕어빵』 『복사뼈를 만지다』 등. 『현대문학』 2016년 5월호(172~173)에서 이 시를 보고.. 2016. 10. 19.
박상순 「내 봄날은 고독하겠음」 내 봄날은 고독하겠음 박 상 순 의정부에 갔었음. 잘못 알았음. 그곳은 병원인데 봄날인 줄 알았음. 그래도 혹시나 둘러만 볼까, 생각했는데, 아뿔싸 고독의 아버지가 있었음. 나를 불렀음. 환자용 침상 아래 거지 같은 의자에 앉고 말았음. 괜찮지요. 괜찮지. 온 김에 네 집이나 보고 가렴. 바쁜데요. 바빠요, 봐서 뭐해요. 그래도 나 죽으면 알려줄 수 없으니, 여기저기, 여기니, 찾아가보렴. 옥상에 올라가서 밤하늘만 쳐다봤음. 별도 달도 없었음. 곧바로 내려와서 도망쳐 왔음. 도망치다 길 잃었음. 두어 바퀴 더 돌았음. 가로등만 휑하니 내 마음 썰렁했음. 마침내 나 죽으면 알려줄 수 없는 집, 여기저기 맴돌다가 빠져나왔음. 의정부에 다시 갔음. 제대로 갔음. 길바닥에 서 있었음. 내 봄날이 달려왔음. 한때.. 2016. 4.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