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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시인과 쓸쓸한 공무원

by 답설재 2023. 3. 14.

 

 

 

시인 설목이 전화를 했습니다.

(나) "여보세요~"

(설목) "공문이 왔습니다~"

(나) "무슨 공문요?"

 

마침 버스가 오르막길을 오르는 아파트 앞을 걸어 올라가고 있을 때여서 소음도 한몫하긴 했습니다.

"봄이 왔습니다~"

그는 그렇게 말한 것이었는데 나는 공문이 왔다는 걸로 들었습니다.

공문과 거의 관계없는 삶을 산 지 오래되었는데도 아직 나는 이렇게 젖어 있습니다.

이건 쓸쓸한 일입니다.

 

문득 지지난해 여름의 일이 생각났습니다.

박수홍이 결혼을 했다는 뉴스를 본 아내가 내게 그 얘기를 할 때 마침 아파트 옆 오르막길을 버스가 용을 쓰며 올라가고 있었고 우리는 거실 창문을 열어놓은 상태였습니다.

"박수홍이 결혼했다네~"

아내는 그렇게 말한 것인데 이쪽 방에서 책을 읽던 나는 이렇게 되물었습니다. "복숭아가 좋다고?"

아내는 대답이 없었습니다.

말수가 더 많은 내가 되물었습니다. "천도복숭아?"

아내는 아마 "에이~" 그랬을 것입니다. '저 인간 머릿속은 먹는 것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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