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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교과서31

국가교육위원회에 거는 기대 1992년 교육부는 역사적인 선언을 했다. “교육과정 최종 결정권은 교과서에 있는 것이 아니다. 학교와 교사들이 최종 결정한다!”(제6차 교육과정) 교사들에겐 교육과정 같은 건 안중에도 없던 시절이었다. 금과옥조(金科玉條)가 담긴 교과서대로만 가르치면 하등 문제가 없었다. 수업을 공개한 뒤 교장·교감이나 장학사가 생경한 책자를 펴들고 “이 수업을 교육과정에 비추어보았더니 어쩌고 저쩌고…” 하면 ‘높은 분들은 저런 문서를 보는구나!’ 생각했을 뿐이었다. 교육부에서는 교사들이 궁금해 하지도 않는 일들을 행정력을 총동원해서 설명하고 설득했다. “이제 교육과정 결정권을 교육부와 교육청, 학교가 분담하게 되었다” “교육부는 기준을 개정하고, 교육청은 지역 지침을 만들어 시행하고 학교는 최종적으로 그 학교만의 교육.. 2022. 10. 28.
코로나 3년째, 아이들 바라보기 “오래된 미래(헬레나 노르베리-호지)”는 행복한 삶이 어떤 것인지를 알려주는 책이다. 하필이면 세상에서 제일 높은 히말라야산맥의 고원, 오지 마을 라다크 사람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GNP와 같은 단순한 척도로써 행복을 찾으려고 하면 인간은 영원히 경멸당할 뿐이라는 것을 깨닫게 한다. 우리가 돈만을 중시하는 관점에 매몰되면 이웃과 자연에 대하여 마침내 자신에게까지 ‘폭력’을 행사하지 않을 수 없게 한다는 것을 나지막하게 그러나 더할 수 없이 간곡하게 전하면서 교육에 대한 불변의 가르침도 제시하고 있다. 라다크 교과서는 인도 교과서를 베낀 것인데 그 인도 교과서도 실은 유럽 교과서를 베낀 것으로 라다크 학생들의 행복과는 관계가 먼, 엉뚱한 내용이라는 걸 지적하고 있다. ‘소남이란 아이의 교과서에는 런던이나 뉴.. 2022. 4. 1.
좋은 교과서 만들기 케이트 레이스 Kate Leys는 영국의 선도적인 스크립트 개발 편집자 중 한 사람이다. 그녀는 유명한 베테랑부터 이제 막 경력을 시작한 지망생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작가 및 제작자와 함께 〈네 번의 결혼식과 한 번의 장례식〉〈트레인스포팅〉〈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등 최근 들어 가장 성공적인 영국 영화 몇 편을 작업하기도 했다. "성공은 복제를 낳기 마련입니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 바로 그것이죠. 사람들은 복제를 당연한 것으로 압니다. 그들은 복제인간을 원해요! 관객들도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을 것을 느낍니다. 마치 모든 사람이 다 똑같은 결정을 내리고 있는 것처럼 생각되죠." (...) 영화산업계에서 의사결정에 관여하는 간부들 중 그런 관점을 얻을 수 있을 정도로 오래 자리를 지키는 사람은 드물다.. 2022. 3. 19.
어리석었던 날들의 교과서 단기 4289년이면 서기 1956년이네? 지금은 서기라고 하지도 않지. 와! 66년 전에 나온 책이네! "금번에 유네스코와, 운크라에서 인쇄기계의 기증을 받아, 국정교과서 인쇄전속공장이 새로 생겼는바, 이 책은 그 공장에서 박은 것이다. 문교부 장관" 그렇게 해서 오늘에 이르렀으면 정신을 차릴 때도 되지 않았나? 이렇게 점점 더 미궁으로 빠져도 되나, 몰라. 사회생활 5-2 난 3월말에 학교를 찾아갔지. 고모에게 얘기해서. 전쟁이 끝난 지도 한참 됐는데...... 가만히 있었으면 학교에 가지도 못했을지도 몰라. 교과서는 사회생활 1-1 한 권만 받았어. 다 나눠주고 달랑 한 권만 남았던 거지. 그런데도 난 그것도 몰랐어. 그냥 1학년이어서 한 권만 주는가 보다 했지. 바보! 다른 애들을 보면 몰라? 그렇.. 2022. 2. 8.
칼 세이건 《코스모스 COSMOS》 칼 세이건 《코스모스 COSMOS》 홍승수 옮김, 사이언스북스 2006 이 책 이야기를 하려고 몇 년을 별렀다. 엄두가 나지 않았다. 코스모스(COSMOS), 그것은 "과거에도 있었고 현재에도 있으며 미래에도 있을 그 모든 것"이라는 서문(앤 드루얀) 첫머리의 인용구로부터, 그리고 "우주는 현기증이 느껴질 정도로 황홀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대상은 결코 아니다. 우리도 코스모스의 일부이다. 이것은 결코 시적 수사修辭가 아니다"라는 머리말에서부터 압도당하고 있었다. 그게 시적 수사가 아니라고? 칼 세이건은 그렇게 부정해 놓았지만 우주는 시적 수사가 아니라면 그 아름다움과 광활함 같은 걸 이야기할 길을 찾을 수 없어서 일부러 그렇게 표현했을 것 같았다. "코스모스의 광막한 어둠 속에는 1.. 2022. 1. 30.
자유발행제와 학교장 개설 과목 교과서의 관계 "자유발행제와 학교장 개설 교과목의 관계"를 알고 싶고 "향후 그 관계가 어떤 경향을 지니고 변화할지 궁금"하다는 질문을 받았습니다. 문자메시지였습니다. 이 질문에 내가 답해야 하는지, 답할 수 있는지 생각했습니다. 지금까지 묻는 것에 답하지 않은 적은 없었습니다. 아는 부분까지만 답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전화를 걸어서 하나하나 이야기하는 건 벅차다는 느낌입니다. 여기에 생각나는 것을 적어두기로 했습니다. 자료를 보며 적는 것에 한계를 느끼고 있고, 상대방에게 하나하나 설명하는 것도 여간 부담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누가 혹 또 묻는다면 이 자료를 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것은 질문에 대한 성의이기도 합니다. 먼저 교과서 발행 제도 전반을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국정은 어.. 2021. 7. 13.
'송어 5중주'와 '숭어 5중주' 1 무슨 행사장 같은 데서 자주 듣는 송어 5중주는 아무래도 아름답지 않았고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지도 않았다. 교육부에서 초중고 교과서(교육과정) 업무를 주관하고 있을 때 고생한 이유 중 한 가지가 교과서 오류 문제였다. 워낙 굵직굵직한 문제들이 연이어 터지기 때문에 한시도 마음 편할 날이 없어서 교육부를 나오고 난 뒤에도 교과서 문제는 늘 내 문제로 여겨지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교직에서 떠난 것이었는데 그즈음이었지? '숭어 5중주'가 아니고 '송어 5중주'라는 것이었는데, 사실은 그 정도는 결코 대단한 건 아니었다. 그렇지만 어느 날 '숭어 5중주'가 돌연 '송어 5중주'가 되었으니 현장에서야 혼란이 있었을 것이다. 2 어쩌다가 그렇게 되었을까? 어처구니없지만 일본에서 받아들일 때 번역이 잘못되었더라는.. 2020. 11. 2.
박물관으로 간 교과서 (2018.12.13) '비만과 인간관계'를 탐구하고 있는 서영이는 인터뷰 자료처리에 골몰하고 있다. 식단과 생활습관 분석으로 비만 원인을 찾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선 활발하고 명랑하게 지내야 한다는 걸 주장하고 싶다. 선생님은 처음에 이 주제가 초등학교 5학년이 해결하기에 힘들지 않겠느냐고 했고, 기간을 두 달로 한 계획도 무리라면서 석 달 동안 진행하자고 했는데 그새 두 달이 지났다. 서영이는 컴퓨터로 자료처리를 하기 전에 계산 원리부터 알아내려고 일주일째 궁리하고 있다. 어제는 덧셈과 곱셈, 뺄셈과 나눗셈의 관계를 발견했다고 환호성을 올렸다. 보고서 내용에 따라 멋있는 랩과 누구라도 빠져들 5분짜리 다큐멘터리 영화도 보여주겠다고 했다. 편집만 남았단다. 선우는 오전에는 정보도서실에서 지낸다. "코스모스"(칼 세이건)라는 책.. 2018. 12. 13.
어떤 교재·교과서가 필요한가? (2018.6.21) 녹말가루에 요오드 용액을 섞으면 보라색으로 변한다고 했다. 풋내기 교사는 녹말가루와 요오드 용액, 스포이트, 샬레만 준비하면 가능한 실험으로 즐거운 한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된 것이 생각만 해도 행복했다. 아이들은 자신들이 하는 실험인데도 마치 교사가 요술을 부려주는 것처럼 신기해하는 것도 좋지만 일 년 내내 실험실 근처에도 가지 않는 한 선배 교사가 "왜 혼자서 그따위 짓을 하느냐?"고 빈정댈 때마다 '이 아이들 중에서 과학자가 수두룩하게 나오도록 하고야 말겠다!'는 남모르는 각오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행복이란 본래 쉽사리 실현될 수는 없는 것인지, 간단한 그 실험을 모임별로 여러 차례 시도했지만 녹말은 거무튀튀해지기만 할 뿐 끝내 그 보라색을 보여주지 않아서 미리 참고서를 봐둔 한 성급한 아이.. 2018. 6. 20.
"자랑스러운 편수인상" 수상 소회 1986년, 초등 교사였을 때 편수를 돕기 시작해서 1989년 12월, 파견근무를 하며 5차 교육과정 초등학교 사회, 사회과탐구 편찬 업무에 참여했고 1993년 6월에는 편수국 교육연구사가 되었습니다. 2년간의 시·도별 사회과탐구 개발은 연구진·집필진·삽화진 전체를 지역별로 구성했는데 열두 번의 연수회를 열고도 그 원고를 일일이 써주다시피 했으므로 많이 힘들었습니다. 그간 초등학교와 특수학교 각 장애영역별 초등부 사회과 교과서도 동시에 개발하고 있었습니다. 편수는 외로운 것이었습니다. 설날도 추석도 없이 교과서 원고나 삽화, 혹은 이미 개발된 교과서를 읽고 고치고 고친 것을 또 고쳤고 직접 지도를 제작하기도 했습니다. 전철에서도 교과서를 읽고 고치다가 "이상한 사람"이라는 소리도 듣고 쓰러져서 병원에 실.. 2018. 4. 10.
"나는 학교에서 처음 해본 것이 너무 많다." 나는 학교에서 처음, 엄마에게 편지를 썼다. 나는 학교에서 처음, 자전거를 배웠다. 나는 학교에서 처음, 연극을 해보았다. 나는 학교에서 처음, 좋아하는 애에게 고백했다. 나는 학교에서 처음, 친구에게 사과할 용기가 생겼다. 나는 학교에서 처음, 세상에 대한 질문이 생겼다. 나는 학교에서 처음, 내가 꼭 하고 싶은 꿈이 생겼다. 신선하다고 할 이가 많을 것 같았습니다. 그렇지만 이렇게 해서 언제 대학 입시 준비를 할까, 걱정할 이도 있을 것입니다. 우리 교육이 그렇게 입시 준비에 빠져버려서 정작 해야 할 공부는 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교과서의 내용을 암기하고 암기한 것으로 오지선다형 문제를 푸는 공부(?)에 매달려서 하고 싶은 공부, 해야 할 공부는 안중에도 없는 공부를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만약 '교.. 2018. 3. 11.
기이한 길에서 보내는 편지 걸핏하면 지난날이 떠올라 사람을 괴롭힙니다. 그 지난날이란 것이 교과서라는 것에 얽혀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수많은 것들 중에 하필이면 교과서라니 원……. 그렇긴 하지만 이제 와서 뭘 어떻게 하겠습니까? 더구나 교과서를 만드는 회사에서 일하는 분들을 처음 만나 신기해하고 부러워했던 일들을 생각하면, 아무래도 어이없는 사람이라는 말을 듣기 십상이겠지만 그게 '정말로' 진심이었으니 이건, 그러니까 좀 거창하게 표현하면 이렇게 걸어가는 이 길은, 제게는 필연적이었던 것 같습니다. 저는 교과서에 관한 일을 하는 분들이라면 지금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간 저 문선공부터 존경했습니다. 정말입니다! 문선공! 그렇습니다. 임금으로부터 받았음직한 시호(諡號) '文善公' 혹은 '文宣公' 들이 아니라 여기저기 몇 개의 알전.. 2017. 10.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