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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송어 5중주'와 '숭어 5중주'

by 답설재 2020. 11. 2.

 

 

1

 

무슨 행사장 같은 데서 자주 듣는 송어 5중주는 아무래도 아름답지 않았고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지도 않았다.

 

교육부에서 초중고 교과서(교육과정) 업무를 주관하고 있을 때 고생한 이유 중 한 가지가 교과서 오류 문제였다. 워낙 굵직굵직한 문제들이 연이어 터지기 때문에 한시도 마음 편할 날이 없어서 교육부를 나오고 난 뒤에도 교과서 문제는 늘 내 문제로 여겨지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교직에서 떠난 것이었는데 그즈음이었지? '숭어 5중주'가 아니고 '송어 5중주'라는 것이었는데, 사실은 그 정도는 결코 대단한 건 아니었다.

그렇지만 어느 날 '숭어 5중주'가 돌연 '송어 5중주'가 되었으니 현장에서야 혼란이 있었을 것이다.

 

 

2

 

어쩌다가 그렇게 되었을까?

어처구니없지만 일본에서 받아들일 때 번역이 잘못되었더라는 것이었다. 당장 바꾸어야 했다. 노랫말의 내용을 송어와 숭어의 생리와 대조하면 어린애라도 설명할 수 있는 것이었다.

교육부에 알아보았더니 이미 교과서를 만드는 사람들이 법전(法典)처럼 들여다보는 '편수자료'의 '숭어 5중주'를 당장 '송어 5중주'로 바꾸었다고 했다.

 

나는 정서적으로는 '송어 5중주'보다는 '숭어 5중주'가 낫겠다 싶었지만 그 물고기는 분명 숭어가 아니고 송어라는데야 할 말이 없는 일이었다. 슈베르트를 만날 수 있다면 송어는 그만두고 숭어로 새로 작곡해달라고 부탁할 수도 있겠지만 그게 어디.......

 

"숭어 5중주가 아니고 송어 5중주래."

"아니, 이 사람아! 숭어 5중주가 뭐야! 그게 송어 5중주로 바뀐 지가 옛날이야."

"선생님, 숭어 5중주라고 배웠으니 일단 그것도 정답으로 해야 할 것 아니에요?"......

'숭어 5중주'와 '송어 5중주'는 한동안 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었고, 그러다가 결국은 다 정리될 문제였다.

 

 

3

 

나는 퇴임해서도 그런 문제들이 싫었다. 온 나라가 시끄럽게 되는 역사 문제 같은 걸 생각해보면 내가 왜 그런 오류 문제를 싫어하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좋은 음악을 만든 슈베르트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송어 5중주' 음악조차 듣기가 싫었다. 교과서 문제로 스트레스를 주는 건 뭐든지 싫었다. 사람도 싫고 동물, 식물, 무생물, 다 싫었다. 지긋지긋했다.

현직에 있을 때는 어디서 '교육과정' '교과서'라는 단어만 들려와도 마치 내 이름을 부르는 것 같은 느낌이었으니 수천 권 중 어제는 저 교과서, 오늘은 이 교과서, 내일은 또......... 어느 교과서에 뭔가 오류가 있다는 얘기는 내 수많은 치부가 한 가지씩 한 가지씩 세상에 드러난 것 같은 불쾌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이었다.

그러니 퇴임을 했다고 해서 '송어 5중주'를 듣고 싶었겠는가.

 

그런 혼란들은 빨리 해결되기도 하고 예상보다 길게 가기도 한다. 가령 이념 문제 같으면 언제쯤 해결될지 아예 짐작도 하지 못한 채 사람을 괴롭힌다.

'숭어 5중주'는 단순오류였으므로 단숨에 해결되고 말 것 같았는데도 예상보다 장기간 문제가 되고 있었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

'숭어 5중주'가 그렇게 명맥(!)을 유지한 건 순전히 그 제목의 번역이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 '원로 교수님들' 덕분이 아닌가 재미있는 상상을 해보았다. 그럴 수도 있을 것이었다. 교육부의 조치쯤은 대수롭지 않고 그동안 자신이 쌓아 올린 지식과 경험으로 우뚝 서 있는 학자의 경우 학생들이 "교수님! 그 숭어 5중주를 요즘은 송어 5중주라고 한다던데요?" 하면 '내 그럴 줄 알았어!'보다는 '뭐 이런 우스운 소리가 들리지?' 할 것이 거의 당연하지 않겠는가. 더구나 노랫말이 되는 시(詩)는 단순한 논리로만 이루어지는 건 아니잖은가.

나는 이런 글을 쓰기도 했다.

 

...(전략)... 이건 순전히 개인적이고 수준 낮은 정서지만, 나 같아도(교수가 아니어서 다행일까?) "송어도 되고 숭어도 된다."고 대답하고 싶었을 것이다. 일단 발음으로도 '송어'보다는 '숭어'가 훨씬 낫고('송어네 가족'이 들으면 몰매 맞을 말이겠지만, 그렇지 않은가? "송어, 숭어, 송어, 숭어……" 두 낱말을 번갈아 되뇌어보면 숭어에게는 뭔가 더 있어 보이지 않는가?), 실제로 우리 동네 '송어양식장횟집'에 가면 언제라도 아주 싼값에 실컷 먹을 수 있는 것이 송어지만, 숭어라면 내가 먹어본 기억조차 없는 어떤 고고한 자태의 물고기일 것 같아서 더 신비롭게 다가오는 것이 아닐까 싶었으며, 그렇다면 평생 "숭어, 숭어" 하고 가르친 것이 허망할 것 같기도 했다....(후략)...

 

 

4

 

나는 '송어 5중주'에 관한 한 가지 에피소드도 갖고 있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딸에게서 어느 학생이 "송어냐, 숭어냐? 아니면 송어 또는 숭어냐?"라는 질문을 하더라는 얘기를 듣고 '아직까지 이게 문제가 되고 있나?' 생각하며 교육부 음악 편수관을 지낸 후배에게 자문을 받아서 “거울 같이 맑은 강물에 송어가 뛰노네. 나그네 길 멈추고 언덕에 앉아서 그 송어를 바라보고……”로 이어지는 가사를 봐도 ‘송어 또는 숭어’가 아니고 ‘민물고기 송어’가 옳으며 편수자료에도 분명히 ‘송어’로 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려고 했는데 이튿날 아침 일찍 딸에게서 이번에는 딴 문제가 생겼다는 연락이 왔다. 어젯밤, 그 학생에게 우리 아빠가 음악 편수관을 지낸 사람에게 연락해서 자세한 사항을 알아보고 전해주겠다고 했는데 그 학생이 오늘 이른 새벽에 전화를 하더니 세상에! 밤새 잠을 못 이루었다며 얼어붙어 있더라는 것이었다.

“음악 하는 분들끼리는 아주 빤해서, 편수관을 지낸 그분이 우리 교수님께 이야기해버리면 저는 죽어야 할 거예요.”

 

작은 문제 같아도 이처럼 민감한 사람들이 있고, 내가 교육부라는 곳에서 교과서 일만 하며 그토록 오랫동안 근무했으니, 아마도 내 피는 그 스트레스 때문에 지칠 대로 지쳐서 마침내 심장질환이 되어 나타났을 것이었다. 또 이만하면 내가 송어 5중주를 듣기 싫은 이유를 누구나 인정해줄 수 있을 것이었다.

 

 

5

 

들릴 때마다 내 마음을 불안하게 하던 그 송어 5중주, 그 음악이 마침내 아름답게 들리는 걸 느낀 것은 며칠 전 자동차 안에서였다.

아, 이 음악이 이렇게 아름다웠구나!

그 연주를 다 듣고 나는 생각했다.

'이제 이만하면 내가 교과서 오류 문제로부터 자유로워진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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