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트 레이스 Kate Leys는 영국의 선도적인 스크립트 개발 편집자 중 한 사람이다. 그녀는 유명한 베테랑부터 이제 막 경력을 시작한 지망생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작가 및 제작자와 함께 〈네 번의 결혼식과 한 번의 장례식〉〈트레인스포팅〉〈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등 최근 들어 가장 성공적인 영국 영화 몇 편을 작업하기도 했다.
"성공은 복제를 낳기 마련입니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 바로 그것이죠. 사람들은 복제를 당연한 것으로 압니다. 그들은 복제인간을 원해요! 관객들도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을 것을 느낍니다. 마치 모든 사람이 다 똑같은 결정을 내리고 있는 것처럼 생각되죠."
(...)
영화산업계에서 의사결정에 관여하는 간부들 중 그런 관점을 얻을 수 있을 정도로 오래 자리를 지키는 사람은 드물다. 영화제작사의 촬영 스튜디오 장의 평균 임기는 18개월에 불과하다. 따라서 똑똑하고, 상상력 넘치고, 창조적인 사람은 위험을 감수하기를 좋아하지만 이런 사람들이 기회를 잡는 경우는 드물다. 레이스의 말로는 너무 많은 돈이 걸려 있는 탓도 있다고 한다.
"영화 스튜디오 경영진들도 당신이나 나와 똑같은 것을 찾고 있습니다. 그들도 무언가 독창적이고, 색다르고, 기발한 것을 원하죠. 강력한 목소리, 훌륭한 스토리, 커다란 아이디어를요. 그래서 결국 그런 대본을 손에 넣었을 때부터 일이 틀어지고 맙니다. 창의력이란 결국 위험을 감수하는 것이거든요. 그런데 거기 걸린 막대한 돈은 위험을 감수하기 싫어해요. 따라서 영화 촬영에 들어가는 비용이 합의되는 순간 돈과 관련된 모든 사람은 공황 상태에 빠지죠. 많은 사람들이 이런 질문을 던지기 시작합니다. '이거 정말 먹힐까? 사람들이 정말 이것을 좋아하겠어? 이거 정말 좋은 대본 맞아? 조금 바꿔야 하는 거 아냐? 이 부분은 기이하니까 빼고, 이 부분은 너무 음란하니까 빼고, 결말도 암울하니까 바꿔야 하는 거 아냐?' 이렇게 몇 주만 지나면 대본 자체가 완전 밋밋해져 버리죠. 그럼 다시 공식 짜맞추기로 돌아가는 겁니다."
(...)
모두들 확실한 건수만을 쫓으려 하다 보니, 가장 안전한 선택은 아예 아무런 결정도 내리지 않는 것이라 설득당하는 간부들이 많다. 결정을 내리는 대신 기존의 알고리즘을 이용하는 것이다.
마거릿 헤퍼넌이 쓴 《경쟁의 배신 A BIGGER PRIZE》(RHK, 2014)에서 본 이야기다(349~351).
교과서 제작도 그렇다.
시간이 가면서 그러니까 회의를 거듭하면서 좋은 아이디어, 창의력은 줄어들고 사그라들고 마침내 고사하고 만다. 밋밋한, 평범한, 무난한, 그렇지만 심사기준에는 딱맞는 물건이 만들어지고 학생들은 그런 밋밋한, 평범한, 무난한, 그렇지만 심사기준에는 딱 맞는 교과서를 만나게 된다.
구상단계의 그 멋진 아이디어가 천신만고를 거치면서도 쪼그라들지 않고 반영된 교과서가 불합격의 고배를 마셨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그렇게 되면 다시는 용기를 낼 수가 없게 될 것이다.
그건 미친 짓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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