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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책 보기의 즐거움

에른스트 H. 곰브리치 《곰브리치 세계사》

by 답설재 2024. 11. 8.

에른스트 H. 곰브리치 《곰브리치 세계사》

박민수 옮김, 비룡소

 

 

 

 

 

 

 

'어떤 사건이 대다수 인간의 삶에 영향을 끼쳤으며, 오늘날 우리의 기억에 크게 남아 있는가?'라는 단순한 물음을 기준으로 선정한 40개 주제를 다루었다.

 

1. 옛날 옛적에(인간이 나타나기 전의 지구)

2.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발명가들(선사시대, 석기시대, 청동기 시대)

3. 나일 강변의 나라

4. 월 화 수 목 금 토 일(메소포타미아)

5. 신은 오직 하나뿐

6. 알파벳의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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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브리치?

들어본 이름이고, 청소년 대상 도서다.

1935년에 처음 출판되었고, 터키 어 번역본 머리말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단다.

 

이 책은 학교에서 사용되는 역사 교과서를 대신할 의도로 집필된 것이 아니다. 이 책은 학교에서 읽히는 교과서와는 전혀 다른 목적을 갖고 있다. 나는 독자들이 필기를 하고 또 이름이나 연대를 외워야 한다는 부담 없이 느슨한 마음으로 읽어 나가기만을 바란다. 그리고 제대로 읽었는지 확인하기 위해 꼬치꼬치 질문을 하지 않으리란 점도 약속하겠다.

 

'교과서'라는 이름은, 그러므로 스스로 한계를 설정하는 책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공부에 무슨 한계가 필요한 것일까? 시험이라는 건 왜 학생들을 성가시게 하는 것일까? 평가의 목적은 가르치는 사람에게 어떤 각성을 갖게 하는 데 목적이 있어야 하는 것 아닌지 모르겠다. 선발은 물론 다른 차원에서 다루어져야 한다.

9장 '스파르타와 아테네'는 이렇게 끝난다. 이 표현은 학교교육에 시사점을 제시한다.

 

당시 상연된 연극 작품들 중 일부는 오늘날까지 전해진다. 연극에는 엄숙하고 진지하며 장엄한 '비극'이 있는가 하면, 특정한 아테네 시민을 조롱하는 '희극'도 있었다. 그런 희극은 아주 재치 있고 익살스러웠다. 나는 당신에게 아테네의 역사가나 의사, 가수, 사상가 그리고 예술가들에 관해 한참은 더 이야기를 늘어놓고 싶은 심정이다. 하지만 나중에 당신이 이들의 글을 직접 읽어 보는 것이 더 나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때가 온다면 당신은 내 말이 과장이 아니었음을 알게 될 것이다.

 

로마 시대 이야기는 이 책에서도 화려하다.

 

트리아누스 이후의 황제들도 제국 정비와 국경 수호에 힘썼다. 특히 서기 161년부터 180년까지 통치한 마루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는 도나우 강변의 주둔지인 카르눈툼과 빈도보나(빈)에 자주 머물렀다. 하지만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는 전쟁을 좋아하는 사람이 결코 아니었다. 그는 온화하고 조용한 성품으로 책을 읽고 쓰는 것을 가장 좋아했다. 그는 황제이자 철학자였다. 마루쿠스 아우렐리우스가 주로 전쟁터에서 쓴 일기는 오늘날까지 남아 있는데, 여기서 그는 주로 자제심과 인내, 고통과 슬픔을 견디는 법, 침착한 영웅적 태도 등에 관해 성찰하고 있다. 그 내용은 부처가 마음에 들어 할 만한 것들이다. (...)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이 전쟁(게르만 부족들과의 싸움)을 치르던 중 빈도보나에서 사망했다. 그때가 서기 180년이었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을 생각했다. 내가 갖고 있는 책은 내내 곱게 만졌는데 마치 사람처럼 그새 고본이 되어 있다.

 

어른들은 특히 할 일이 없거나 형편이 좋지 않을 때, 혹은 그저 형편이 좋지 않다고 믿기만 해도 쉽게 그런 어리석은 행동을 보인다. 이럴 때면 어른들은 동지들끼리 무리를 짓고서 거리로 뛰쳐나가  확성기로 어처구니 짝이 없는 구호를 외쳐 대며 행진을 벌이기도 한다. (실제 고락을 함께하는 동지이건 허울만 그런 관계인 사람들이건 간에) 한데 모여서 말이다. 그러면서 자신들이 무척 대단한 일을 하고 있다는 착각에 빠지는 것이다.

 

40장 '너 자신이 체험한 세계사의 한 부분'의 이 말은 현대사를 극명하게 상징한다. 예를 든 히틀러와 나치즘, 일제 등이 그렇고, 지금 이 시각 세계 각지의 정치 현상도 그렇다.

괜히 쓸데없는 화가 나는 건, 콜럼버스가 아메리카를 발견하고 에스파냐, 포르투갈이 곧장 인디언(인디언은 무슨 인디언!)들이 이룩해 놓은 (당시의 서양 문화보다 훨씬) 찬란했던 그 문화를 단숨에 박살 내 버린 일이다. 이건 그저 대표적인 일에 지나지 않는다.

정의는 무슨 정의!

그건 다 해 먹어 버리고 그 기득권을 옹호하려는 목적의 질서 유지를 위해 설정한 덕목이 아닌지, 의구심을 가질 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