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랭 드 보통 《일의 기쁨과 슬픔》
정영목 옮김, 이레 2009
현대 세계의 큰 도시 하나를 가로지르는 여행을 상상해보자. 가령 몹시 흐린 10월 말의 어느 월요일에 런던을 가로지른다고 해보자. 런던의 유통 센터, 저수지, 공원, 영안실 위를 날아간다. 런던의 범죄자들과 대한민국에서 온 관광객들도 보일지 모른다. 파크 로열의 샌드위치 만드는 공장, 하운슬로우의 항공사 기내식 공급 시설, 배터시의 DHL 배달 창고, 시티 공항의 걸프스트림 제트기, 스머글러즈 웨이에 자리 잡은 홀리데이 인 익스프레스 호텔의 청소 수레를 보라. 사우스 워크 파크 초등학교 식당의 시끌벅적함과 임페리얼 전쟁 박물관 대포의 소리 없는 포성에 귀를 기울여보자. 운전 학원 강사, 계량기 검침원, 머뭇거리며 불륜을 저지르는 사내도 있다. 세인트 메리 병원의 산과 병동 안으로 가보자. 석 달 반 일찍 태어나는 바람에 스위스 옵발덴 주에서 제작된 플라스틱 상자 안에서 온갖 튜브를 꽂은 채 자고 있는 이슈리타를 보라. 버킹엄 궁 서면에 있는 의전실로 가보자. 장애인 운동선수 200명과 함께 점심을 먹고, 이어 커피를 마시면서 굳은 결의를 찬양하는 연설을 하는 여왕에게 감탄하게 될 것이다.
이처럼 시작한다. 장황하다 싶었다. 내 느낌이었다. 책을 놓았다. 내 마음은 그렇게 한가하지 않았다.
2010년 1월 중순 그 일요일에 난생처음으로 병원에서 숙식을 하게 되었다. 다음날 담당의사가 내 심장을 들여다볼 예정이었다.
마음이 복잡했다. 다음 달에는 내 생애의 교직생활이 막을 내리게 되어 있었다. 어떻게 할 다른 방법이 없는 일이었다. 이제 아이들도 만날 수 없고 선생님들과 함께할 수도 없고, 더는 봉급도 받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그런 상황에 입원했으면 아내에게 좀 미안해해야 마땅했겠지만 나는 내 마음이 복잡한 것만 계산하는 단순한 인간이어서 며칠간 입원이 될지, 혹은 목숨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이므로, 집에 돌아가서 입원에 필요한 물건들을 챙겨 올 때 책도 아무거나 한 권 가져오라는 내 부탁을 잊고 만 아내에게 짜증을 냈고, 병원 구내서점에 내려가 '알랭 드 보통'이 쓴 이 책을 샀고, 그게 또 하필이면 이렇게 장황하게(!) 시작하는 책이어서 내 짜증은 더욱 고조되었지만 내가 산 책이니 이번에는 원망할 대상조차 없게 되었다.
'짜증 난' 이 책을 14년이 지나서 읽었다.
그 와중에 산 기념품이어서 버리진 않았던 것 같고, 그게 다행이었다. 알랭 드 보통의 책을 몇 권 읽긴 했지만 눈에 띄면 더 읽을 작정이다. 읽을수록 재미있다. 문득 어느 작가의 책을 다 찾아 읽는 사람들의 마음을 읽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화물선 관찰하기
물류
비스킷 공장
직업 상담
로켓 과학
그림
송전 공학
회계
창업자 정신
항공 산업
열 가지에 대해 멀리서, 가까이에서, 혹은 그 속에 들어가서 살펴본다. 다각도로? 입체적으로? 종횡무진으로? 어쨌든 '천편일률적으로'가 아니다.
'일의 기쁨과 슬픔'
나는 알랭 드 보통의 이 '기쁨과 슬픔'(일을 하는 '즐거움 혹은 괴로움'이 아니라 '기쁨과 슬픔'!)을 충분히 느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는 재미있게 이야기하고 자주 유머스러웠다. 알랭 드 보통이 바라보는 그 일 속에서 일을 하는 사람들은 자주 기쁨을 느끼고 있을 것 같았고 그러면서도 서글픔을 떼어낼 수 없을 것 같았다. 이 기쁨과 슬픔에 대해서는 굳이 나의 경험을 이야기할 필요도 없을 것 같았다.
이렇게 끝난다.
할 일이 있을 때는 죽음을 생각하기가 어렵다. 금기라기보다는 그냥 있을 수 없는 일로 여긴다. 일은 그 본성상 그 자신을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진지하게 받아들일 것을 요구하면서 다른 데로는 눈을 돌리지 못하게 한다. 일은 우리의 원근감을 파괴해버리는데, 우리는 오히려 바로 그 점 때문에 일에 감사한다. 우리가 이런저런 사건들과 난잡하게 뒤섞이도록 해주는 것에, 파리로 엔진오일을 팔러 가는 동안 우리 자신의 죽음과 우리의 사업의 몰락을 아름다울 정도로 가볍게 생각하게 해주는 것에, 그것을 단순한 지적 명제로 여기게 해주는 것에 감사한다. 우리는 어쩔 수 없이 근시안적으로 행동한다. 그 안에 존재의 순수한 에너지가 들어 있다. 밤이 올 때쯤이면 죽을 것이라는 커다란 사실을 외면한 채, 서둘러 칠한 붓이 남긴 페인트 한 방울을 피해 창턱을 계속 열심히 가로지르려는 나방에게서 볼 수 있는 강렬하고 맹목적인 의지가 있다.
우리의 하찮음과 약함에 관한 이야기는 너무 뻔하고, 너무 잘 알려져 있고, 너무 지루해서 되풀이할 필요가 없다. (...)
우리의 일은 적어도 우리가 거기에 정신을 팔게는 해줄 것이다. 완벽에 대한 희망을 투자할 수 있는 완벽한 거품은 제공해주었을 것이다. 우리의 가없는 불안을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고 성취가 가능한 몇 가지 목표로 집중시켜줄 것이다. 우리에게 뭔가를 정복했다는 느낌을 줄 것이다. 품위 있는 피로를 안겨줄 것이다. 식탁에 먹을 것을 올려놓아줄 것이다. 더 큰 괴로움에서 벗어나 있게 해 줄 것이다.
오래된 기억이지만 누구나 일을 하며 살아간다는 말을 자주 들었던 것 같다. 나도 이 책에서 이야기한 의미의 일을 한 적이 있었다. 50년쯤? 그러나 지금 그 기간은 아득해진 '한때'로 느껴진다. 그러므로 내가 한 그 일들은 내게도 기쁨이었고 슬픔이 되었다.
마지막 부분은 비장감(悲壯感)을 느끼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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