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분류 전체보기3096

학교교육과정 편성·운영·평가의 실제 걸핏하면 "그것에 관한 글을 써보겠다"는 생각을 하거나 그런 식으로 말하며 살아왔습니다. 대표적인 주제가 ‘학교교육과정’입니다. 쓰긴 뭘 쓰겠습니까. 언제 무슨 수로 쓰겠습니까. 다 썼다면 벌써 책이라도 몇 권 나왔을 것입니다. 제가 글을 제대로 쓰지 못하는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한 가지는 게으르다는 점입니다. 이건 천성이어서 어쩔 수가 없는 일입니다. 다른 한 가지 이유는 제대로 공부한 적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학자들은 조그만 아이디어도 잘 정리해서 논리적으로 설명할 줄 아는 사람들입니다. 그 점은 두고두고 안타깝지만, 자기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은 죗값입니다. 그러므로 두 가지 이유 모두 이제 와서는 어쩔 수 없다는 사실이 한탄스럽습니다. 그래서 지난여름 이곳저곳에서 강의한 내용이라도 탑재하게 되었습.. 2009. 9. 18.
학년별 가을운동회 신종 플루가 사람을 아주 우습게 만듭니다. 난처하고 안타깝고 어렵고 미안하고 불안하고 초조하고……, 하여간 이럴 수가 있겠습니까. 우리는 지난 월요일 1학년과 유치원을 시작으로 매일 한 학년씩 운동회를 하고 있습니다. 학년별로 하니까 프로그램이 아주 풍성하여 아이들은 새참 때 벌써 지치게 될 정도로 활동량이 많습니다. 문제는 구경꾼이 저 혼자라는 사실입니다. 하루하루 하늘도 저렇게 잘 받쳐주고 아이들도 다 건강한데, 가능하면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에 가지 않도록 하라니까 별 수가 없지 않습니까. 그래, 지난 금요일에 학교운영위원회 임시회의를 열어서 이러한 입장과 잠정적인 2학기 학사일정을 설명했고, 아이들을 통해 전 학부모들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까지 보냈습니다. 사정이 이러니까 구경꾼이 있을 리 없는 현.. 2009. 9. 16.
알베르 까뮈 『시지프스의 신화』Ⅲ 알베르 까뮈 『시지프스의 신화』 Ⅲ 민희식 옮김, 육문사 1993 통계청이 발표한 2008년도 자살 사망자 수는 무려 1만2858명이나 되었습니다. 지난 9월 9일 신문에 의하면 우리나라가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인 나라입니다. 또 20대와 30대 사망자 중에서 자살이 원인인 경우가 1위였습니다. '한국자살예방협회' 회장이라는 분은 「신종플루보다 무서운 자살」이라는 기고문에서 자살로 사망하는 사람이 한해에 1만3000명이라는 얘기는 그 20배 이상인 30만 가량이 매년 자살을 시도한다는 얘기라면서 그 글을 이렇게 끝맺었습니다. "이제 정부뿐만 아니라 국민들도 자살이 남의 문제가 아니라고 인식해야 한다. 자살은 내 가족, 내 이웃에 닥칠 수 있는 우리 모두의 문제이고 그 예방은 생명 존중의 시작이다... 2009. 9. 15.
외손자 선중이 Ⅱ 1학년 운동회를 하는 중에 5반의 G라는 아이와 몇 마디 얘기를 했습니다. 머리에 상처가 나서 거즈를 붙이고 있었습니다. 옆에 있던 아이가 일렀습니다. “몇 바늘 꿰맸대요.” 침대에 부딪쳐서 그렇게 됐다고도 했습니다. 그 애는 지난해에는 병설유치원에 다녔습니다. 유치원 수료 기념사진 한 장을 찍는데 하도 움직여서 아주 오래 걸렸어도 재미는 있었습니다. 그 애는 다른 아이들의 자세에 관심이 많았으므로 다른 모든 아이들이 자세를 잘 잡으면 그 아이도 제대로 할 것이라는 게 그때의 제 생각이었습니다. 그러니 재미있을 수밖에요. 병설유치원 원장이 그런 재미 아니면 무슨 재미로 살겠습니까. 그렇지 않아도 유치원 선생님들은 그런 일을 할 때 오래 걸리게 합니다. 그냥 찍어도 좋을 텐데 온갖 간섭을 합니다. 올해도 .. 2009. 9. 14.
교원평가, 이제 무엇이 문제인가 (2009. 9. 11) 교원평가, 이제 무엇이 문제인가 2004년 2월, 교육부에서 교원평가를 추진하겠다고 발표한지 5년여의 논란 끝에 지난 8월 10일, 그동안 전국교직원노동조합과 함께 이 시책에 줄곧 반대해오던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의 전격적 수용으로 교원평가 문제는 이제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고 있다. 교육부에서는 2005년 11월, 교원평가 정부시안 및 부적격 교원에 대한 대책을 발표하면서 전국적으로 48개 시범학교를 지정했고, 2008년 12월에는 의원입법안이 발의되었으며, 금년 3월 교육과학기술부에서는 시범학교를 1570개교로 확대했다. 또 금년 4월에는 교원단체의 주장을 반영하여 인사연계 조항을 삭제한 추진방안이 발표됐고 이 방안에 따른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이 국회 교육과학기술위원회 법안심사소위를 통과하여 현재 계류 .. 2009. 9. 11.
영화 ‘국가대표’를 보고 - 왜 사람들은 평범하게 따듯할 수가 없을까? 스스로 좀 놀랍다. 때 지난 영화를 보거나 책을 읽으면 대사 한마디 한마디에 몸서리치고 그 빛이 스러질 때까지 되새기던 습성을 떠올리면, 이렇게 머리가 멍하기만 한 것이 신기했기 때문이다. 이런저런 줄거리나 멋있는 대사를 열거하고 찬탄을 되뇔 수도 있겠지만 도무지 아무것도 떠오르지가 않는다. 그냥 어떤 이미지들만 가득하여 가슴이 먹먹했다. 국가대표'들을 둘러싼 사람들의 평범한 부당함과 무관심한 평가가 언짢으면서도 비극을 희극으로 바꾸어버리는 장면들에서 생각 없이 크게 웃었다. 참 슬프고 속상한 이야기인데도 어쩌면 저런 대사와 표정과 행동을 쏟아내는지…… 비극이나 희극이나 종이 한 장 차이일 뿐이라는 ‘도통한’ 말이 영락없었다. 혹 우리의 일상도 희한한 렌즈로 클로즈업하면 저렇게 대수롭지 않고 희극적인 것.. 2009. 9. 10.
이병초 「봄밤」 봄 밤 이 병 초 공장에서 일 끝낸 형들, 누님들이 둘씩 셋씩 짝을 지어 학산 뽕나무밭을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창수 형이 느닷없이 앞에다 대고 “야 이년덜아, 내 고구마 좀 쪄도라!” 하고 고함을 질러댑니다 깔깔대던 누님들의 웃음소리가 딱 그칩니다 옥근이 형 민석이 형도 “내껏도 쪄도라, 내껏도 좀 쪄도라” 킬킬대고 그러거나 말거나 누님들은 다시 깔깔대기 시작합니다 “야 이 호박씨덜아, 내 고구마 좀 쪄도랑게!” 금방 쫓아갈 듯이 창수 형이 다시 목가래톳을 세우며 우두두두두 발걸음 빨라지는 소리를 냅니다 또동또동한 누님 하나가 홱 돌아서서 “니미 솥으다 쪄라, 니미 솥으다 쪄라” 이러고는 까르르 저만치 달아납니다 초저녁 별들은 그러거나 말거나 반짝반짝 반짝이고만 있었습니다 싱겁고 개구지던 고향 형님들 옛 .. 2009. 9. 8.
강기원 「장미의 나날」 장미의 나날 강 기 원 그 동네에선 우리 집 장미가 제일 붉었는데요 그래서 사람들은 집집마다 장미가 있었지만 유독 장미집이라 부르곤 했는데요 식구들이 모두 단잠에 빠져든 밤 아버진 휘늘어진 넝쿨 밑동에 아무도 모르는 거름을 붓곤 했는데요 나 홀로 깨어 아버지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았는데요 비밀스런 겹겹의 꽃잎은 뭉게뭉게 자꾸 피어나고 장미가 붉어지는 만큼 나와 동생은 자꾸 핼쑥해져갔는데요 그러고 보니 엄마의 낯빛도 갱지처럼…… 이상한 건 향기였지요 수백 수천 송이가 울컥거리며 피워내는 피비린내 마당을 넘어 집 안까지 기어든 넝쿨은 소파를 뚫고 곰팡이로 얼룩진 벽을 타고 생쥐가 들락거리던 아궁이 속에서도 붉게 검붉게 소문 같은 혓바닥을 내밀기 시작했는데요 그 무렵 우린 아버지의 주문 따위 필요 없이 스스로.. 2009. 9. 7.
유치환 「古代龍市圖」 시인은 왜 시를 쓸까요. 대체로 “쓰지 않고는 공허하여 살 수가 없다.”지만, 그럼 우리는 왜 시를 찾는 것일까요. 좀 이기적인 생각일지 모르겠으나, ‘아, 정말 그래!’ 싶은 한 편의 시를 발견하는 순간 때문에 시를 찾아 읽는 것 아닐까요? 시인에게는 참 미안한 일이지만, 이렇게 앉아서 돈도 내지 않고 그 시인의 정신세계, 정서세계에 들어갈 수 있는 순간의 희열을 위해 시를 읽습니다. 더구나 그 순간의 놀라움으로 나를 돌아보게 하고, 그 놀라움으로 나의 갈 길을 다시 설정하여 새로운 정신세계, 새로운 정서세계로 진입할 수 있는 그 전환점이 그리워서 시를 읽습니다. ‘詩’ 하면 바로 떠오르는 시입니다. 古代龍市圖 아득한 옛날 三神山 山麓 萬里ㅅ벌에는 한 해에 한 번 나라의 龍市가 섰었나니. 이 날이면 안.. 2009. 9. 5.
‘IT 코리아’와 우리 교육의 미래(斷想) 정부에서는 지난 2일, 정보기술(IT)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2013년까지 정부와 민간을 합쳐 무려 189조원(정부 14조1000억원, 민간 175조1988억원)을 투입한다는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그 계획이 워낙 방대하여 ‘IT KOREA 재도약’을 위한 웅지라고 표현해도 좋을 것입니다. 이는 대통령 직속 미래기획위원회가 .. 2009. 9. 4.
니토베 이나조 『사무라이』 니토베 이나조 《사무라이》양경미·권만규 옮김, 생각의나무 2004      일본인들은 대단한 민족이지만 자칫하면 궤변일 수 있으므로 그 대신 이 책을 보여줄 수 있을 것 같다. 2004년에 번역된 책이지만 나온 지는 백 년도 더 되었다. 일본인들이 대단하다고 해야 하는 이유가 뭘까? 먼저 종교에 대한 탐구와 해석, 그 가르침의 흡수에 대한 부분이다. 불교는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고 모든 것을 운명에 맡기는 평상심을 무사도에 부여했다. 피할 수 없는 운명에는 냉정한 마음으로 복종하고, 위험과 재난이 닥치면 금욕적인 의연함과 삶에 집착하지 않는 마음을 갖게 했다.(21) 불교가 무사도에 줄 수 없는 부분은 신도(神道)가 충족시켜 주었다. 주군에 대한 충절과 조상에 대한 숭배, 그리고 부모에 대한 효행이 바로 .. 2009. 9. 2.
이병률 「장도열차」 장도열차 이병률 (1967~ ) 이번 어느 가을날, 저는 열차를 타고 당신이 사는 델 지나친다고 편지를 띄웠습니다 5시 59분에 도착했다가 6시 14분에 발차합니다 하지만 플랫폼에 나오지 않았더군요 당신을 찾느라 차창 밖으로 목을 뺀 십오 분 사이 겨울이 왔고 가을은 저물 대로 저물어 지상의 바닥까지 어둑어둑했습니다 이 가을, 열차를 타고 갈 데가 있나? 어느 역의 플랫폼으로 잠깐 나와 줄 사람이 있나? 그 역에서 좀 만나자고 편지를 띄울 사람이 있나? 지난여름, KTX도 다니지 않고 공항도 없는, 겨우 무궁화호가 쉬고 또 쉬며 네 시간을 가서 도착하는, 그리웠던 그곳에 다녀왔다. 철로 주변 풍경도 옛날 같지 않았고 연락할 아무도 없었다. 그리웠던 사람들은 아직도 그곳 어디에서 가혹한 그리움으로 각각 이.. 2009. 9.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