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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책 보기의 즐거움

알베르 까뮈 『시지프스의 신화』Ⅲ

by 답설재 2009. 9. 15.

알베르 까뮈 『시지프스의 신화』

민희식 옮김, 육문사 1993

 

 

 

 

 

 

통계청이 발표한 2008년도 자살 사망자 수는 무려 1만2858명이나 되었습니다. 지난 9월 9일 신문에 의하면 우리나라가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인 나라입니다. 또 20대와 30대 사망자 중에서 자살이 원인인 경우가 1위였습니다.

 

'한국자살예방협회' 회장이라는 분은 「신종플루보다 무서운 자살」이라는 기고문에서 자살로 사망하는 사람이 한해에 1만3000명이라는 얘기는 그 20배 이상인 30만 가량이 매년 자살을 시도한다는 얘기라면서 그 글을 이렇게 끝맺었습니다. "이제 정부뿐만 아니라 국민들도 자살이 남의 문제가 아니라고 인식해야 한다. 자살은 내 가족, 내 이웃에 닥칠 수 있는 우리 모두의 문제이고 그 예방은 생명 존중의 시작이다."(조선일보, 2009. 9. 14).

 

하기 쉬운 말로 오죽하면 자살을 하겠습니까? 그러나 삶이란 것은 오묘하고 복잡해서 웬만한 사람은 몇 번쯤 자살을 생각해보았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하찮기 짝이 없는 저 같은 사람도 나름대로는 참 어려워서 그런 생각을 몇 번 해본 것이 사실이라는 걸 고백해야 합니다. 또 그런 생각의 흔적이 남아서, 살아오면서 '죽음' 혹은 '자살'에 대한 이런저런 책들을 읽어봤습니다. 그런데 그게 거의 '교과서적인' '고답적인' '윤리적인' '타이르는 듯한' 내용들이어서 "누가 그걸 모르나?" 소리가 저절로 나오기 십상이었습니다.

 

그런데 (물론 아직도 일천하기 때문이겠지만) 이 책만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이 에세이야말로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의식을 인정하면서 "그렇지 않다!"고 이야기해주는 책이었습니다. 바보가 아니라면 모두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4장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제1장 부조리한 추론(推論)

  1. 부조리(不條理)와 자살(自殺)
  2. 부조리의 벽
  3. 철학적 자살
  4. 부조리한 자유

제2장 부조리한 인간

  1. 돈 쥬앙주의(Le Don Juanisme)
  2. 연극
  3. 정복

제3장 부조리한 창조

  1. 철학과 소설
  2. 키릴로프
  3. 덧없는 창조

제4장 시지프스의 신화

  1. 시지프스의 신화

 

까뮈는 바로 제4장(시지프스의 신화)을 이야기하기 위해 위와 같은 논리를 전개하고 있었습니다. 제4장 '시지프스의 신화'는 이렇게 시작됩니다.

 

신들이 시지프스에게 내린 형벌은 바위 하나를 산꼭대기까지 끊임없이 굴려 올리도록 한 것이었는데, 그것은 산꼭대기에서는 돌이 제 무게로 다시 떨어져 내리곤 하기 때문이었다. 신들이 헛되고 희망 없는 노동보다 더 끔찍한 형벌은 없다고 생각한 것엔 뭔가 일리가 있었다.(159)

 

시지프스1가 지금도 받고 있을(있는) 이 형벌에 대해 까뮈는 이렇게 해석합니다.

 

나의 관심을 끄는 것은, 바로 이렇게 돌아올 때의, 휴식할 때의 시지프스이다. 바위에 그렇게 가까이 붙어서 고생하는 그의 얼굴은 이미 바위 그 자체이다. 나는, 그 사람이 스스로 그 끝을 결코 알지 못할 고뇌를 향해 무거우면서도 고른 걸음걸이로 내려오는 것을 본다. 그의 고통만큼이나 틀림없이 되돌아오는 숨 돌릴 틈과 같은 그 시간, 그것은 바로 의식의 시간이다. 그가 산의 정상을 떠나 신들이 쉬는 곳을 향해 서서히 내려가는 그 매순간마다 그는 자신의 운명을 넘어선다. 그는 그의 바위보다 더 강한 것이다.

이 신화가 비극적이라면, 그것은 그 주인공이 의식적이기 때문이다. 한 걸음 옮길 때마다 성공한다는 희망이 그를 떠받쳐 준다면, 그의 고통이 대체 어디에 있겠는가? 오늘날의 노동자들은 그의 삶 속에서 날마다 똑같은 일을 하는데, 이 운명도 역시 못지 않게 부조리하다. 그러나 그 운명은 그것이 의식적인 게 되는 드문 순간들에만 비극적이다. 무력하고 반항적인, 신들의 프롤레타리아인 시지프스는 자신의 비참한 조건의 전 범위를 알고 있다. 그가 산을 내려오는 동안 생각하는 것이 바로 그 조건인 것이다. 그의 고통을 이루고 있는 그 명징함이 동시에 그의 승리에 왕관을 씌워 준다. 경멸에 의해 극복될 수 없는 운명이란 없다.(161~162)

 

결론은, 이렇습니다.

 

나는 그 산기슭에서 시지프스를 떠난다! 인간은 언제나 자기 자신의 짐을 다시 발견하게 된다. 그러나 시지프스는 신들을 부정하고 바위를 밀어 올리는 보다 고귀한 성실성을 가르쳐준다. 그 역시 모든 것은 좋다고 결론짓는다. 이제부터 주인 없는 이 세계가 그에겐 결코 메마르게도 헛되게도 보이지 않는다. 그 바위의 원자 하나하나, 밤으로 가득한 그 산의 광석 조각 하나하나가 그 자체로써 하나의 세계를 형성한다. 산꼭대기를 향한 그 투쟁 자체가 한 인간의 가슴을 채우기에 충분하다. 우리는 시지프스가 행복하다고 상상할 수밖에 없다(16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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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시지프스:시시포스[Sisyphus,시지푸스](고대 그리스어: Σίσυφος['sɪsɪfəs], 라틴어: Sisyphus). 그리스 신화의 인물로서 영원한 죄수의 화신으로 현대에 이르기까지 잘 알려져 있다.(위키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