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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책 보기의 즐거움

『사무라이』

by 답설재 2009. 9. 2.

 

 

 

 


니토베 이나조 《사무라이》

양경미․권만규 옮김, 생각의나무 2004





 

 

 

 

 

 

신문 1면 하단에 「○○당 집단 퇴장 … 정기국회 문 열자 파행」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습니다. 아무래도 부정적 혹은 비관적 제목이지만 '우리의 국회의원들'이니까 사실은 다 잘해보려고 그러는 걸로 기대해야 할 것입니다.

그 신문 4,5면에는 두 면 가득 54년 만에 정권이 교체됐다는 일본의 선거혁명에 관한 기획기사가 실렸습니다(「"역사 인식, 민주당은 자민당 비해 훨씬 상식적"」,「하토야마 "아시아 중시" … 미국 일변도 외교 벗어날 듯」). 이 기획기사는 「민주당의 일본」이라는 제목으로 이렇게 구성되고 있습니다. ① 자민당 독주서 민주당 시대로, ② 미국 중심에서 아시아로, ③ 관료․중앙서 정치․지방으로, ④ 야스쿠니 대체 시설 추진, ⑤ 성장에서 분배로(중앙일보, 2009.9.2).

 

"봐라! 일본의 변화는 우리와 비슷하다." "일본 민주당의 생각은 우리와 비슷하다."는 견해가 나올지도 모르겠습니다. 기우(杞憂)일까요? 오바마 등장 때 본 적이 있습니다. 그런 해석이 가능한지, 혹은 바람직한지, 나는 잘 모르고, 더구나 정치는 모르기 때문에 기사 제목 정도만 인용하지만, 확실한 것은 "일본은 대단한 나라"라는 것입니다. 나는 교육자로서 최소한 그건 잘 알아야 한다고 늘 다짐하고 있으며, 이번의 변화에 대해서도 '저들이 혹 우리보다 한 수 위가 아닌가?' 싶었습니다.

 

일본인들이 대단한 민족이라는 건 여러 가지로 이야기할 수 있겠지만, 자칫하면 궤변일 수 있으므로 책 한 권을 소개합니다. 2004년에 번역된 책을 소개하게 되었지만 나온 지는 백년도 더 된 책입니다. '저들이 대단하다고 해야 하는 이유가 뭘까?' 그런 생각으로 인용했습니다. 먼저 종교에 대한 탐구와 해석, 그 가르침의 흡수에 대한 부분입니다.


불교는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고 모든 것을 운명에 맡기는 평상심을 무사도에 부여했다. 피할 수 없는 운명에는 냉정한 마음으로 복종하고, 위험과 재난이 닥치면 금욕적인 의연함과 삶에 집착하지 않는 마음을 갖게 했다.(21)

 

…(중략)… 불교가 무사도에 줄 수 없는 부분은 신도(神道)가 충족시켜 주었다. 주군에 대한 충절과 조상에 대한 숭배, 그리고 부모에 대한 효행이 바로 그것이다. 이 세 가지 가르침은 종교적 신조에서는 배울 수 없는 것이었다. 이로 인해 무사의 오만한 성격이 억제되고 복종심이 더해졌다. 신도의 교리는 기독교에서 말하는 '원죄'의 관념과는 다르다. 그 반대로 성선설을 믿어서, 본래 인간의 영혼이 신처럼 청정하다고 주장하며 신탁을 듣는 장소에 신사(神社)를 세웠다.(22)

 

…(중략)… 신도에서의 자연숭배관념은 국토에 대한 친근함과 애착을 심어주며, 조상숭배관념은 국민들의 혈맥을 그 근원까지 소급시켜 왕실이 온 국민의 공통 조상이라고 가르친다.(23)

 

…(중략)… 엄격한 의미로, 도덕적 교양의 측면에서 무사도의 가장 풍부한 연원은 공자가 가르친 도리다.(24)


다음으로 문학과 학문, 지식 그리고 인(仁)에 대한 견해입니다.


전형적인 무사는 "문학에 박학한 사람은 책벌레일 뿐이다"라고 말했고, 또 에도 시대의 학자, 미우라 바이엔(三浦梅園)은 "학문은 냄새나는 푸성귀와 같아서 꼼꼼히 냄새를 씻어내지 않으면 먹을 수 없다."라고 했다.(25)

 

…(중략)… 무사도는 지식을 위한 지식을 경시했다. 지식은 최종 목적이 아니라 지혜를 얻는 수단으로 여겨졌다. 따라서 이 목적에 도달하기를 포기한 자는 타인의 요구에 따라 시나 격언을 지어주는 편리한 기계에 불과하다고 여겼다.(27)


다행히도 인은 아름다우며 그리 드문 것이 아니다. “최고로 강철 같은 의지를 가진 자는 최고로 부드럽고 온화하며, 최고의 사랑을 지닌 자는 최고로 용감하다”라는 말은 동서고금을 막론한 진리이다.(52)


흥미로운 부분이므로 '선물'에 대한 미국인과 일본인의 결코 동화될 수 없는 사고방식을 보십시오. 여담이지만 일본은 선물하는 방법을 잘(철저히, 가령 이 책에서 본다면 미국보다 수준 높게) 교육하는 나라지만, 우리에게는 요즘 차츰 '선물은 좋지 못한 짓'이라는 어처구니없고 따분한 의식이 자리 잡아가고 있습니다. 한심한 노릇이지요.


이를테면 다른 사람에게 선물을 할 때, 미국인은 선물을 받는 사람에게 그 물건의 좋은 점을 강조하지만, 일본인은 되도록 겸손하게 보잘것없는 물건이라는 식으로 말한다. 미국인의 생각은 이렇다. "이건 대단히 좋은 물건입니다. 좋은 물건이 아니라면 당신에게 드리지 않을 겁니다. 안 좋은 물건을 드리는 건 당신을 모욕하는 일이 될 테니까요." 이에 반해 일본인의 논리는 이렇다. "당신은 훌륭한 분이므로 아무리 좋은 물건도 당신에 대한 선물로는 보잘것없습니다. 하지만 물건으로서의 가치보다는 저의 성의를 봐서 받아 주십시오. 아무리 훌륭한 물건이라도 당신에게 꼭 맞는 선물이라고 말한다면 당신을 모욕하는 일이 될 겁니다." 서로 비교해 볼 때, 이 두 가지 사고방식은 결국 같은 마음에서 출발한 것이므로 어느 쪽도 우스꽝스러울 게 없다. 다만 미국인은 선물한 물건의 가치에 대해, 그리고 일본인은 선물하는 사람의 마음에 대해 언급한 것이다.(67)


이제 '일본인들이 정말 대단한 사람들이구나’ 할 수밖에 없는 생각들입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 일본의 원동력에 관한 헨리 노먼의 언급, 그리고 일본인의 명예심, 기독교의 한계 등에 관한 언급들입니다.


어떤 이야기꾼이 창작한, 일본 역사상 가장 유명한 세 무사가 직접 자신들의 성격을 드러내는 이야기를 살펴보자.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는 "울지 않는 새는 죽여라"라고 했으며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는 "울지 않는 새는 울게 하라"고 했다. 그런데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는 "울지 않는 새는 울 때까지 기다려라"라고 했다.(86~87)

 

극동연구가인 헨리 노먼(Henry Norman)은 일본이 동양의 다른 국가들과 유일하게 다른 점으로 "인류가 지금까지 고안해 낸 명예에 관한 규칙들 중, 가장 엄격하고, 가장 숭고하고, 가장 정확한 것이 국민들 사이에 지배적인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는 사실"이라고 단언했다. 노먼은 현재의 일본을 건설하고 장래의 일본의 운명을 추진하는 원동력에 대해 말한 것이다.(172~173)

…(중략)…

"일본인보다 더 충성스럽고 애국적인 국민이 또 있을까?"라고 많은 사람들이 묻는다. 그 질문에 긍지를 갖고 "아니오" 라고 말할 수 있는 일본인들은 무사도를 향해 고마워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공평을 기하기 위해 일본인의 성격상 결함과 단점 역시 무사도에 큰 책임이 있음을 인정해야만 한다. 일본인에게 심원한 철학적 면모가 결여된 원인은 -- 다시 말해서 일본 청년들이 과학 분야의 연구에서는 세계적 명성을 떨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철학 분야에서는 아무 공헌도 세우지 못한 원인은 -- 무사도의 교육제도가 형이상학적 학문의 훈련을 소홀히 해왔기 때문이다. 또한 일본인이 감정적인 면에서 격한 성격을 갖고 있는 것은 일본인의 명예심에 그 원인이 있다. 외국인이 종종 우리 일본인에게 '과도한 자부심'을 갖고 있다고 비난하는 것 역시 일본인의 지나친 명예심에서 비롯된다.(174~175)

 

미국적, 또는 영국적 양식을 지닌 기독교, 조물주의 은총과 지순함보다는 다분히 앵글로 색슨족의 기교와 환상을 내포하고 있는 기독교는 무사도의 줄기에 접목하기에는 더없이 빈약한 싹이다. 그렇다면 이 새로운 종교를 전파하기 위해서 줄기와 뿌리, 가지를 송두리째 뽑아내고 폐허 위에 복음의 씨앗을 뿌려야만 하는가? 혹시 하와이에서는 통할지 모르겠다. 그곳에서는 전투적인 교회가 부를 약탈하고 원주민을 거의 전멸시켰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와 같은 방법은 일본에서는 결코 통하지 않을 것이다. 아니, 그것은 설령 예수 스스로 지상을 신의 왕국으로 만들려 할지라도 절대로 취해서는 안 될 방법이다.(178)


명예의 반석 위에 세워져 명예로 지켜진 국가를 -- 이를 명예국가, 혹은 칼라일 식의 영웅국가라고 불러야 마땅하지 않을까 -- 현대는 억지 이론으로 무장한 엉터리 법률가와 말만 번지르르한 정치가의 손에 넘기려 하고 있다.(184)

 

 

저자 니토베 이나조에 의하면 '인류가 지금까지 고안해 낸 명예에 관한 규칙들 중, 가장 엄격하고, 가장 숭고하고, 가장 정확한 것이 국민들 사이에 지배적인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나라', '명예의 반석 위에 세워져 명예로 지켜진 국가' 일본, 그 일본인들의 정신이 스며 있는 『사무라이』, 이 책은 번역도 비교적 잘 되었고(오탈자 몇 군데는 너무나 뻔해서 누구나 발견 가능) 장정(裝幀)도 훌륭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무엇보다 사무라이들의 섬뜩한 피를 보여주는 그림들이 시선을 끌고 나서 가슴을 압도합니다.

 

혹 내가 아는 일본인은 오히려 "독도는 한국 땅!"이라고 소리 높여 주장한다, 내가 아는 일본인은 사케보다 소주와 김치를 즐긴다, 내가 아는 일본인은 여기서 살고 싶어 한다, 한국말도 잘 한다, 우리 가수와 배우를 사랑하고 아껴준다, 우리 역사를 나보다 더 잘 안다, 그들의 식민지 지배를 진심으로 혐오하고 참회한다, …… 그런 말을 하고 싶은 분도 있긴 하겠지만 그런 분일수록 이 책을 보면 좋겠다고 말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