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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책 보기의 즐거움

『국화와 칼』

by 답설재 2009. 10. 19.

루스 베네딕트 『국화와 칼』

김윤식․오인석 옮김, 을유문화사, 1994(초판 16쇄)

 

 

 

 

 

 

내가 뭐라고 했습니까. 우리 정부와 하토야마 일본 총리간의 유화적인 분위기가 연일 신문을 장식하고 있지만, 히로시마 평화공원 기념비에 새겨진 "편안히 잠드소서! 잘못은 다시 되풀이되지 않을 것입니다."란 글을 "편안히 잠드소서! 우리는 다시는 전쟁을 일으키지 않을 것입니다."로 고쳐 새겨놓아야 우리도 안심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지 않았습니까?

우리는 우리 아이들에게 일본이 우리에게 어떻게 했고, 저들이 지금은 어떤 교육을 하고 있는지 잘 파악하면서 우리도 우리의 역사 교육을 더욱 충실히 해나가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일본 가르치기」 (2009. 10. 11).

 

그 일본이 이번에는 핵무기 피해 도시인 히로시마(廣島)와 나가사키(長崎) 두 도시에서 2020년 하계 올림픽을 개최하겠다고 나섰습니다. 두 도시의 원자폭탄 피폭지(被爆地)로서의 역사가 '평화의 제전'이란 올림픽 정신에 걸맞아 무엇보다 개최 명분이 선다는 주장입니다.

 

기가 막히지 않습니까? 우리로서는 죽도록 얻어맞아서 아픈 상처가 아물기는커녕 아직도 '이걸 어쩌나? 다음에 만나면 도대체 우리에게 왜 그랬느냐고 다시 한 번 단단히 물어봐야지' 벼르고 있는 판인데, "봐라, 우리는 그때 원자폭탄을 맞아서 그 꼴이 됐었다. 이렇게 하면 안 된다!"고 대어들겠다는 꼴이나 뭐가 다릅니까? 도대체 뭐가 다르다는 말입니까?

 

하토야마 유키오 총리는 지난 10월 11일, "핵 없는 세계를 주도한 도시"라며 두 도시의 올림픽 도전 의사를 환영했고(그는 얼마 전에 우리 대통령을 만나 와인은 치우고 막걸리로 하자고 했고, 그 부인 유키오ㄴ가 하는 여성은 김치를 먹으며 "밥도 달라"고 했다며 우리 신문들이 그것도 '한류(韓流)'니 뭐니 좋다고 야단이었지만), 대중에게 인기가 많은 하시모토 도오루(橋下澈) 오사카 지사도 "일본 전체가 일치단결해 응원해야 한다.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무엇이든 하고 싶다"며 지원 입장을 밝혔답니다(조선일보, 2009. 10. 13, A16, 「日 '原爆의 아픔' 내세워 올림픽 4修)」1

 

                                                                                        기사 원문 바로가기 주소 http://blog.chosun.com/jlshan/4250674

 

루스 베네딕트는 이렇게 썼습니다.

 

일본인을 이해하기 위한 어떤 시도도 먼저, "각자가 알맞은 위치를 갖는다(take one's proper station)."는 말이 무엇을 뜻하는가에 관한 일본인의 견해가 어떠한지를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44)

 

루스 베네딕트는 이어서 1940년에 일본이 독일 및 이탈리아와 체결한 3국 동맹의 전문(前文)에는, "대일본 제국 정부, 독일 정부 및 이탈리아 정부는, 세계만방이 각기의 알맞은 위치를 가짐을 항구적 평화의 선결 요건으로 삼는다는 것을 인정함에 의해……"라고 씌어 있다면서, 이 조약의 조인(調印)에 따라 내려진 다음과 같은 조서(詔書)와 진주만 공격 당일 일본 사절의 성명서를 인용했습니다.

 

"대의(大義)를 팔굉(八紘)에 선양하고 세계를 한집안으로 하는 것은 황조(皇祖)에 의한 대훈(大訓)이므로 짐(朕)은 밤낮 이것을 마음에 두고 있다. 그러나 오늘날 세계는 놀라운 위기에 직면하여 전쟁과 혼란은 끊임없이 가중되고, 인류는 무한한 고통에 괴로워하고 있다. 이에 짐은 분란이 멎고 평화가 하루 빨리 회복되기를 간절히 원한다……. 짐은 이에 3국간에 있어서의 조약 성립을 깊이 흡족히 여기는 바이다.

각국이 알맞은 위치를 찾는 것, 만민(萬民)이 안전과 평화 속에 살기 위한 과업은, 가장 위대한 대업(大業)이다. 이것은 역사상 미증유(未曾有)의 것이다. 이 목적 달성은 아직도 요원하다……."

 

진주만 공격 바로 당일에도, 또한 일본 사절은 국무장관 코델 헐(Cordell Hull)에게 이 점을 매우 명확히 드러낸 성명서를 수교(手交)했다.

 

"일본 정부의 정책은 불변이다. 모든 국가가 세계 속에서 각기 알맞은 자기 위치를 발견하기 위함에 있어…… 일본 정부는 현 사태의 영구화(永久化)를 참을 수가 없다. 그 까닭은 각국이 세계 속에서 각기 알맞은 위치를 즐기는 것을 기본으로 하는 일본 정부의 근본적인 정책에 위배되기 때문이다."(45)

 

학자들이 어떠한 관점으로 선정한다 해도 언제든 문화인류학 명저의 목록에 들어갈 것이라고 하는 이 책에서, 우리 한국인이 명심해야 할 대목을 인용하려면 끝이 없습니다. 다음과 같은 대목은 대표적인 사례의 하나입니다.

 

오늘날의 정치평론에 있어서조차도 대동아 전쟁 논의 중에 전통적인 형(兄)의 특권이 분명히 드러나 있다. 1942년 봄, 한 중좌(中佐)가 육군성의 대변자로서 공영권(共榮圈)2에 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일본은 그들의 형이며, 그들은 일본의 아우이다. 이 사실을 점령 지역의 주민에게 철저히 인지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 주민들에게 지나친 배려를 표시하면, 그들 마음에 일본의 친절에 대해서 멋대로 가정하는 경향을 일으키게 되어 일본의 통치에 해로운 영향을 끼치게 된다." 바꾸어 말하면, 형은 무엇이 아우를 위한 것인가를 결정하여 그것을 강요함에 있어서는 '너무 지나친 배려'를 보여주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53)

 

기가 막히지 않습니까? 60년도 더 지난 이야기라고 하겠습니까? 그러면 그들은 이제 우리더러 형이라고 부르겠답니까? 아니면, 형이 어디 있고 아우가 어디 있느냐고 하겠답니까? 언제 그들이 우리에게 큰 실수를 했다고 고백했습니까?

날이 갈수록 그 관점이 분명해져서 어쩌면 예언가와도 같은 루스 베네딕트의 결론을 보시겠습니까?

 

일본인은 침략 전쟁을 하나의 오류 및 실패한 주장으로 동일시함으로써 사회적 변혁을 위해 최초로 큰 걸음을 딛게 되었다. 그들은 어떻게 해서든 다시 평화로운 나라들 가운데서 존경받는 지위를 회복하기를 희망하고 있다. 세계 평화는 실현되지 않으면 안 된다. 만일 러시아와 미국이 앞으로 몇 년간을 공격을 위한 군비 확충에서 세월을 보낸다면, 일본은 군사 지식을 이용하여 그 전쟁에 참가하리라. 그러나 그러한 확실성을 인정한다 해도 나는 결코 일본이 본래 평화 국가로 될 수 있는 가능성을 갖고 있다는 것에 대해 의심을 품지 않는다. 일본의 행동 동기는 기회주의적이다. 일본은 만일 사정이 허락되면, 평화로운 세계 속에서 자기 위치를 구하리라. 그렇지 않게 되면, 무장된 진영으로서 조직된 세계 속에서 자기의 위치를 구할 것이다.

현재 일본인은, 군국주의를 희미해진 한 줄기의 광명으로 여기고 있다. 그들은 군국주의가 과연 세계의 다른 나라들에서도 실패할 것인가를 알기 위해, 다른 나라의 동정을 주시하리라. 만일, 실패하지 않았다고 한다면, 일본은 스스로의 호전적 정열을 다시 불태워, 일본이 얼마나 전쟁에 공헌할 수 있는가를 보이리라. 만일, 다른 나라들에서도 그 군국주의가 실패한 것으로 판단된다면, 일본은 군국주의적 침략 기도가 결코 명예에 이르는 길이 아니라는 교훈을, 얼마나 철저히 체득하였는가를 증명할 것이다.(288, 책의 끝부분)

 

루스 베네딕트가 본 '일본 문화의 틀'이 왜 '국화(菊花)'와 '칼'인지, 이 책의 제목이 왜 『국화와 칼(The Chrysanthemum and the Sword―Patterns of Japanese Culture, Boston, 1946)』인지 분명하지 않습니까? 컬럼비아대학 인류학과장이던 루스 베네딕트(Ruth Benedict, 1887~1969)의 이 책은, 1944년 6월 국무성 위촉으로 연구하기 시작한 것인데, 저자 자신은 일본을 방문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답니다. 이에 대해 역자의 서문에는 이렇게 언급되어 있습니다.

 

학문의 연구에서 그 대상을 직접 목격하지 않는 쪽이 오히려 보다 엄밀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이 저서는 입증하고 있다. 대체적으로 부분적 체험은 전체적인 방법론을 망쳐놓기 쉬운 것이다. 이 저서가 허다한 자기 멋대로의 기행문이나 그것에 준하는 저널리스틱한 일본 인상기와 결정적으로 구분되는 까닭도 여기에 있으리라.

 

언제 어디서인지는 생각나지 않지만, 이 책은 미국 정부가 일본과의 전쟁을 승리로 이끄는 길을 연구하기 위해 루스 베네딕트에게 위촉한 것인데, 결과적으로는 그 전쟁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지는 못했지만 마침내 훌륭한 문화인류학 저서로 남게 되었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정확한 기억인지는 모르겠습니다. 당시 대통령은 물론 프랭클린 루스벨트였습니다.3

 

나름대로라도 정리가 필요하다면, '군국주의가 …(중략)… 만일, 실패하지 않았다고 한다면, 일본은 스스로의 호전적 정열을 다시 불태워, 일본이 얼마나 전쟁에 공헌할 수 있는가를 보이리라.' '만일, 다른 나라들에서도 그 군국주의가 실패한 것으로 판단된다면, 일본은 군국주의적 침략 기도가 결코 명예에 이르는 길이 아니라는 교훈을, 얼마나 철저히 체득하였는가를 증명할 것'이라는 루스 베네딕트의 결론에 대하여 일본은 그 판단을, 아직은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무서운 나라 일본, 우리와 이웃하고 있는 그 일본이, 그 판단을 가볍게 할 리도 없고, 세상에는 아직 전쟁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일본이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서 올림픽을 개최하고 싶다면, "우리는 다시는 남을 괴롭히지 않겠다." 혹은 "다시는 전쟁을 일으키지 않겠다." "남의 영토를 넘보지 않겠다."는 약속, 다시 말하면 칼은 버리고 국화(菊花)만 갖겠다는 약속을 하고, 그 약속을 지표로 하는 올림픽 계획을 세워 발표한다면 '기꺼이'는 아니고 서로의 앞날을 기약하는 의미에서 '마지못해' 정도로 찬성해줄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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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올림픽 4修’란 말의 내용은, 일본은 1964년 도쿄올림픽 개최 이후 나고야(名古屋․서울에 패배), 오사카(大阪․베이징에 패배), 도쿄(東京․리우데자네이루에 패배)가 올림픽 개최지로 도전했지만 세 차례 모두 명분에 밀려 탈락한 것을 말합니다(위 기사 참조).


2. 일본을 주축으로 아시아를 단결시킨다는 소위 대동아공영권(大東亞共榮圈)을 말한다(번역자 주).


3. 미국 최초의 4선 대통령(1933~1945)으로서, 오늘날 미국 행정부의 기능과 역할은 그의 통치방식에 힘입은 바 크다. 국내적으로는 1930년대의 대공황 타개를 위하여 뉴딜정책을 추진했고, 대외적으로는 제2차 세계대전 동안 연합국을 지도함으로써 이후 미국이 세계평화에 기여하는 토대를 마련했다.(DAUM 백과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