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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책 보기의 즐거움

『국화와 칼』Ⅱ

by 답설재 2009. 10. 22.

루스 베네딕트 『국화와 칼』

김윤식․오인석 옮김, 을유문화사 1994(초판 16쇄)

 

 

 

 

 

어쭙잖은 책을 쓰며 루스 베네딕트를 이렇게 인용한 적이 있습니다.*

 

미국인은 생활 전부를 끊임없이 도전해오는 세계에 맞게 조정한다. 그리고는 그 도전을 받아들일 준비를 한다. 반면 일본인은 오히려 미리 계획되고 진로가 정해진 생활양식에서만 안정을 얻으며 예견하지 못한 일에는 심각한 위협을 느낀다.**

 

이 글의 '일본인'에 '한국인'을 대입해보면, "이건 우리나라에 대한 비판이나 다름없다"는 느낌을 갖게 된다. '우리 교육이 이래서는 안 된다' '아이들에게 관찰력, 사고력, 창의력을 기르지 않으면 우리는 제2차 세계대전 때의 일본과 같은 꼴이 되지 말라는 법이 없다'는 생각도 든다. 우리에게는 딱 한 번만 써서 수정 없이 제출하고 마는 데 익숙한 습관이 있다. 무슨 양식을 주고 기록해 내라고 하면 아무리 까다로워도 별 불평을 하지 않는다. 그러나 백지에 창의적으로 생각하여 써내라고 하면 당황하고, 망설이고, 자신감을 잃게 된다. 어쩌면 우리는 학교교육을 통하여 정해진 양식에 딱 한 번만 써내고 마는 문화에 길들여져 있는지도 모른다. 이러한 습관은 우리가 학생들에게 나누어주는 현장견학보고서의 양식에도 잘 드러나 있다. 으레 일시, 장소, 견학한 사람, 견학 목적, 견학 내용(본 것, 들은 것, 질문한 것, 알아낸 것, 더 알고 싶은 것), 견학한 느낌 등 수많은 항목에 대하여, 어느 학생이나 획일적으로, 일정하게 줄이 쳐진 양식에 적어내게 하고 있으니 창의성이 길러질 수가 있겠는가. 웬만한 아이라면 다시는 견학을 갈 마음도 생기지 않을 정도의 복잡한 양식을, 우리는 오늘도 아이들에게 나누어주고 있다. 지식을, 첩첩이 쌓인 가설, 불분명한 유추로 이루어진 것, 상상력, 직관력, 정열, 감정 같은 것의 산물이라고 한 앨빈 토플러는 이미 오래 전에, 지금은 표준화, 중앙 집권화, 극대화, 집중화, 관료화, 대량 생산의 공장 공업적 '제2물결의 시대'를 벗어나 지식이 가장 큰 위력을 발휘하는 '제3 물결의 시대', '정보화 시대'로 넘어가고 있다고 하였다. 그는 의회에서든 기업에서든 어디서든 '제2물결적'인 제안을 간파해 내는 가장 빠르고 손쉬운 방법은, 그것이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여전히 공장의 모델에 기초하고 있는지, 말하자면 공장에서 물건을 만들어 내듯 엄격하게 거침없이 한번만 써내면 그만인 능률 위주의 일사불란한 작업을 시키는 관료주의적, 중앙 집권적, …… 지시형인지 아닌지 살펴보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또 앞으로의 교육제도는 표준화된 공장식 운영을 타파하고 개성, 다양성을 살려 생각하고, 질문하고, 혁신하고, 모험심을 발휘하는 사람을 길러내는 두뇌력 경제(brain-force economy)에 입각해야 한다고 했다.*** 일방적으로 주어진 틀에 맞추는 작업에는 전문가가 필요 없으며, 그런 일이나 하고 있는 곳에서는 전문가가 생기지도 않는다. 그러므로 그런 일을 전문가에게 시키는 것도 옳지 않고, 똑똑한 아이들에게 그런 학습을 시키는 것도 옳지 않다.

 

어떻습니까. 루스 베네딕트가 보면 아무래도 자신이 말하고자 한 것을 왜곡한 해석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대한민국의 교육자인 저로서는 꼭 그렇게 짚어보고 싶은 해석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다음 □ 안에", "다음 ( ) 안에" 무엇을 써넣으라는 지시를 너무 많이 합니다. 아이들이 백지에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활동들을 너무 제어하고 있습니다. 우리 교사들이 하는 활동 중에도 백지에 쓰는 일은 도무지 찾아볼 수가 없는 것이 사실이기도 합니다. 백지라니요! 그것은 우리에게 공포심과 불안감을 안겨주기에 충분한 조건이 되고 있습니다. 드디어 우리는 종이나 컴퓨터 화면을 대하면 우선 줄이나 칸부터 만들어놓고 보는 사람들이 되어 있는지도 모릅니다.

저는 우리의 이런 행동양식을 너무 확대해석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40여 년을 지켜본 결과로는 이러한 지적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렇게 해서는 아이들에게 창의력이나 사고력, 자기주도적 능력, 문제해결력 같은 고급의 능력을 길러준다는 것이 다 틀린 일입니다. 이렇게 가르치면 아이들은 사소한 일을 하면서도 먼저 우리의 눈치부터 보기 마련입니다.

지난번에 일본 문제로 『국화와 칼』을 소개하면서 아무래도 이 부분을 소개하지 않은 것이 마음에 걸려 오늘 별도로 소개하게 되었습니다. 사실은 「전쟁 중의 일본인」이란 글의 일부분이며, 참고로 그 앞부분을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해군대신이 의회에서 한 연설 속에는 1870년대의 위대한 무사(武士) 사이고 다카모리(西鄕隆盛)의 유훈(遺訓)을 인용한 구절이 있다. "기회는 두 가지가 있다. 그 하나는 우연히 부딪치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우리가 만들어내는 것이다. 매우 어려운 시기를 당해서는 반드시 스스로 기회를 만들어내지 않으면 안 된다." 또 라디오 보도에 의하면, "미군이 마닐라 시에 진입했을 때, 야마시타(山下) 장군은 활짝 웃으며, '적은 지금 우리 가슴 속에 있다.'고 말했다. 적이 링가옌 만(灣)에 상륙한 후 즉시 마닐라가 함락된 것도, 야마시타 장군의 전술의 결과이며, 장군의 계획대로 된 것이다. 야마시타 장군의 작전은 계속 진행 중이다." 바꾸어 말하면 지면 질수록 일이 잘 되어간다는 투인 것이다.

 

미국인도 일본인 못지않게 극단으로 달리긴 했지만, 그 방향은 정반대였다. 미국인은 무엇보다도 이 전쟁이 일방적으로 일본에 의해 강요되었다는 '이유'로써 전쟁에 몸을 던졌다. 우리들은 공격당했다, 따라서 적에게 본때를 보여주어야 한다. 미국인들에게 안심을 줄 수 있도록 획책하는 대변인은, 진주만이나 바타안 반도에서의 패배를, "이것은 우리들 계획 속에 충분히 고려된 것이었다."라고는 결코 말하지 않았다. 그 대신 우리 관변측(官邊側)은, "적은 저쪽에서 멋대로 들어와 싸움을 걸었다. 우리는 그들에게 우리의 힘을 보여줄 것이다."고 말했다. 미국인은 생활 전부를 …(위의 인용문)…

"미국인은 생활 전부를 끊임없이 도전해오는 세계에 맞게 조정한다. 그리고는 그 도전을 받아들일 준비를 한다. 오늘날 일본인도 거의 그렇다. 반면 한국인은 오히려 미리 계획되고 진로가 정해진 생활양식에서만 안정을 얻으며 예견하지 못한 일에는 심각한 위협을 느낀다. 그리고 그것은 교육의 영향으로 형성된 행동양식이다.” (우리의 교육현장을 바라보는 비판적 관점에서의 가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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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졸저,『보고 읽고 생각하는 아이로 키워야 한다』(아침나라, 2005).

** 루스베네딕트(1946), 김윤식‧오인석 옮김,『국화와 칼:일본 문화의 틀』(을유문화사, 1994), 31쪽.

*** 앨빈 토플러․하이디 토플러, 이규행 감역,『제3물결의 정치』(한국경제신문사, 1995), 158~162쪽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