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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작별(作別)25

내 글은 언제 죽을까? 지난 초여름에 "momo"라는 분과 나눈 댓글·답글입니다. "사람들이 알아주는 것은 당대로 끝나지 않으니... 파란편지 블로그는 Daum에 영원히 남겠지요^^;;" momo님이 그렇게 썼고, 나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제가 쓰는 이 글들이 DAUM에 영원히 남을 것이라는 말씀에 위안을 느낍니다. 뭘 몰라서 이러는지는 모르지만, 저는 걸핏하면 이런 매체가 없어지면 내 글도 죽음의 길을 가겠구나 합니다. ㅎ~"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할 것입니다. 내가 알고 있는 블로거는 아직 한 명도 죽지 않아서(혹 죽었다 하더라도 내가 알지 못해서) 가타부타할 수가 없습니다. 워낙 유명한 인물의 경우는 이렇습니다(조호근 '어느 동물원 방문의 재구성' 《현대문학》 2022년 6월호, 조명독법鳥鳴讀法 제4회, 169). 찰.. 2022. 11. 8.
결별(訣別) 2009년 11월 2일, 나는 한 아이와 작별했습니다. 그 아이의 영혼을 저 산비탈에 두었고, 내 상처 난 영혼을 갈라 함께 두었습니다. 이 포스팅을 새로 탑재하면서 댓글 두 편도 함께 실었습니다. .............................................................................................. …(전략)… 우리는 흔히 학생들에게 장차 훌륭한 사람이 되려면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 애에게 교육은 무엇이고 장래는 다 무엇이었을까. 장래는 고사하고 하루하루 얼마나 고달픈 삶으로써 고사리 같은 짧은 인생을 채우고 마감하게 되었는가. 그걸 살아간다고, 어린 나이에 뿌린 눈물은 얼마였을까. 그러므로 교육의 구실은 우선 그날그날.. 2020. 9. 26.
오면서 가는 저 가을 마포대로에 가을이 서성거리고 있습니다. 아직 손을 대다 만 것 같은, 초록 그대로의 나무들도 많은데 두꺼운 옷을 입은 사람들이 그 아래를 지나갑니다. 11월도 며칠이 지났으니까 초조할 것입니다. "가을이 왔다"고 하더니 당장 눈(雪) 얘기도 들렸습니다. 며칠 전에도 에어컨을 틀어 놓고는 그걸 잊었다는 듯 오늘은 히터까지 틀고 일합니다. 잘난 척해봤자, 누구나 오자마자 가는구나 싶어 하게 될 것입니다. 2016. 11. 8.
《고맙습니다Gratitude》Ⅱ(抄) 올리버 색스Oliver Sacks 《고맙습니다Gratitude》 Ⅱ(抄) 김명남 옮김, 알마 2016 * 아쉬운 점은 너무 많은 시간을 낭비했다는 (그리고 지금도 낭비하고 있다는) 사실이다.(17)1 * 나로 말하자면 내가 사후에도 존재하리라는 믿음이 (혹은 그러기를 바라는 마음이) 전혀 없다. 그저 친구들의 기억 속에서 살아남길 바라고……(18)2 * 반응이 살짝 느려지고, 이름들이 자주 가물가물하고, 에너지를 아껴 써야 한다.(19)3 * 크릭은 대장암이 재발했다는 소식을 듣고도 처음에는 아무 말도 안 했다. 그냥 일 분쯤 먼 곳을 바라보다가 곧장 전에 몰두하던 생각으로 돌아갔다.(19)4 * 여든 살이 된 사람은 긴 인생을 경험했다.(20)5 〈수은 Mercury〉 * 그6는 예순다섯 살에 자신이 .. 2016. 8. 14.
한국교과서연구재단을 떠나는 인사 저는 한국교과서연구재단 수석연구위원직을 그만두었습니다. 재단 측의 영광스런 요청에 따라 그동안 날마다 새로운 일을 생각하고 꾸미는 즐거움으로 지냈으나 이제 그 환경에 변화가 일어나 아쉬움 속에서 발길을 돌렸습니다. 돈 버는 일 말고 혹 저의 생각을 필요로 하는 곳이 남아 있는지, 봉사할 곳은 없는지 살펴볼 것입니다. 그동안의 관심과 지도에 감사드리며, 부디 늘 편안하시기 기원합니다. 2015년 6월 1일 2015. 6. 24.
'이러다가 가겠지?' 1 묵현리 산다는 아주머니의 자동차가 신호에 걸려 서 있는 내 자동차 뒷부분을 들이박았습니다. 가슴이 답답하고, 쓰리고, 병원에 드나들던 그때 같아서 종일 죽을 맛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차야 중고니까 굴러가기만 하면 그만이지만, 막혀버린 통로를 철망으로 뚫어준 내 심장이 충격을 받았구나.' 그러다가 다시 생각했습니다. '차는 중고라도 아직 잘 굴러가는데…… 나는 이제 잘 굴러가지 못하는구나.' 묵현리 그 아주머니는 걱정이 되어 문자도 한 번 보내고, 전화도 두 번을 했습니다. 사고를 냈을 때 쳐다보니까 못된 아주머니 같았는데 이러는 걸 보니까 내가 잘못 본 것 같았고, 괜히 오해한 것 같았습니다. 그렇지만 자꾸 연락을 해서 차를 들이받아 괴롭히고 이제 전화로 추가하는구나 싶기도 했습.. 2015. 4. 18.
모두 떠났다 Ⅰ 그 식당은 저 산 오른쪽 기슭에 있습니다. 자동차 전용도로로 춘천이나 양평 쪽으로 가면서 먼빛으로 한적한 산비탈의 그 식당 건물을 바라본 사람들은 누가 찾아갈까 싶었겠지만, 주말이나 공휴일에는 점심, 저녁 시간에 걸쳐 종일 사람들이 몰려들어 빈자리를 찾기가 어려울 때도 있었습니다. 식당에 들어서면 오른쪽으로 계산대 옆에 커피 자판기, 원두커피 포트가 준비되어 있고, 맞은편 주방 앞에서는 분명히 안주인의 친정어머니일 듯한 할머니가 단정한 모습으로 마늘을 장만하고 있었습니다. 할머니는 안주인의 다소곳한 품위를 그대로 물려준 어머니답게 더러 화장실을 갈 때가 아니면 여름에나 겨울에나 늘 그 자리를 지켰습니다. 할머니의 성품은 마늘조각에 그대로 나타나서 어느 조각이나 '무조건' 같은 크기였고 자른 모양도 한.. 2015. 1. 4.
지나가 버린 여름에게(장 프랑소아 모리스 "모나코") 어제 저녁에 바라본 달은, 가을저녁이 완연했습니다. 스산한 하루였습니다. 한가하다면 걸어가도 좋을 곳을 가자고 해서였는지 택시기사가 물었습니다. "덥지요?" 글쎄, 덥지 않은 건 아니지만 산들바람이 부는 걸 보고서도 "예, 덥습니다." 하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러자 내가 무안해할까봐 그러는지 이번에는 "어제가 입추였다"면서 24절기를 만들어낸 조상들의 슬기를 기리기 시작했습니다. 끝났다면 섭섭하지 않을 리 없습니다. 이런 허전한 일이 어디 또 있겠습니까? 그렇게 도도하게 왔으면, 바로 하루 전까지도 맹위를 떨쳐놓고, 어떻게 이럴 수가 있습니까? 단 하룻만에 이렇게 시들해질 수가 있습니까? 나는 정말이지, 해마다 여름이 언제까지라고 정해 놓는 건 아니라 해도, 앞으로도 이어질 줄 알았습니다. 이렇게 허무하게.. 2014. 8. 9.
소리 없는 슬픔 내 짝이 저렇게 누워서 일어서질 못합니다. 부러진 날개는 접혀진 채 성한 쪽 날개를 한껏 펴서 퍼덕여봤지만 땅을 박차고 날아오르기는커녕 일어서지도 못했습니다. 몇 번을 그렇게 했는데, 이젠 포기한 것 같습니다. 힘이 남아 있지 않은 걸까요? 사지가 짓이겨지고 출혈이 심하니까, 힘이 점점 떨어지고 있을까요? 저러다가 정신마저 잃고 말면 나는 어떻게 합니까? 이럴 때는 어떻게 구구거려야 하는지조차 모르겠습니다. 생각을 전하고 싶을 때, 그렇게 많은 일들을 저 짝에게 전할 때, 나는 수없이 구구거렸습니다. 다른 곳으로 가자고 할 때, 날씨가 흐려 마음조차 우울할 때, 사랑하는 마음을 표현할 때, 배가 고플 때, 마음이 불편할 때, 사람들이 괴롭힐 때…… 구구거려서 되지 않을 일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 2014. 8. 3.
귀신은 아무래도 있는 게 더 낫겠다는 생각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일 것 같긴 하지만 아무래도 귀신은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어차피 그런 말을 들을거라면 뜸을 들이는 것보다는 내친김에 이야기하고 말겠습니다. 귀신조차 없다면 영 재미가 없을 것 같고, '귀신제도(鬼神制度)'가 있어야 잘하면 귀신 중에 격이 제일 낮다는 저승사자 정도는 한번 해볼 수도 있을 것 아닌가 싶어진 것입니다. 저승사자는 초짜 귀신이 한다는 게 정설(定說)입니다. 게다가 저승사자는, 죽음을 목전에 둔 입장에서 보면 다 면식범(面識犯)이라는 말도 있으니까 "어디에 사는 아무개를 데려오라!" 하면 얼른 "그 사람이라면 제가 잘 압니다. 제가 가서 데려오겠습니다." 하면 될 것입니다. '귀신은 없는 것보다는 아무래도 있는 게 더 낫겠다'는 생각은, 그동안 막.. 2014. 6. 26.
좀 더 큰 어떤 다른 세상 『현대문학』에 미술가 이우환 선생을 인터뷰한 글이 연재되었습니다. 올해 1월호부터 4월호까지였고, 프랑스에서 미술비평 및 예술부 기자로 활동하는 심은록이라는 분이 쓴 글이었습니다. 1월호에서는 54쪽, 2월호 50쪽, 3월호 55쪽, 4월호 45쪽이었고, 매번 흥미진진하게 읽으면서 4월호를 끝으로 연재가 끝난 것이 섭섭해서 '느닷없이' 끝난 것 같은 축제, 한동안의 축제가 지나가고 그 이튿날 다른 계절이 시작된 듯한 느낌이었습니다.1 이우환이 누군가, 설명을 좀 해보는 것은 다 부질없는 일이고, '괜히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세계적 예술가'가 아니라는 걸 실감했다고만 하겠습니다. 그런 사람과 나는, 하는 일이나 생각이 서로 다르다 하더라도 지금까지 더러 뭘 좀 아는 척하며 지낸 자신이 쑥스러워집니다. 사람이.. 2014. 6. 13.
미안한 봄 더러 전화 연락을 해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거의 이렇게 시작합니다. "자주 연락하지 못해 미안합니다. 건강은 괜찮습니까?" 뭐라고 대답하는 것이 적절하겠습니까? 그 인사가 의례적인 것이라고 해서 이럴 수는 없잖습니까? "왜 묻습니까? 안 좋다면, 무슨 좋은 수가 있습니까?" 그럴 땐 망설여지는 게 사실입니다. 하필이면 건강을 묻다니…… 좀 만만하다 싶은 사람에게 이렇게 대답해 보기도 했습니다. "뭐, 별로입니다. 병원 신세를 진 이후에는 상태가 오락가락할 때가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런 대답이 실제로는 대화만 어렵게 하는 공연한 짓이라는 걸 알았습니다. 상대방의 응답이 어색해지고 괜히 쓸데없는 대화가 이어져야 하기 때문에 의례적인 인사에는 의례적인 대답이 제격인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은 얼른 이렇게 대.. 2014. 5.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