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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작별(作別)25

영혼의 여정 사람이 죽으면, 영혼은 그다음 날 아침부터 40일에 이르는 여정을 시작한다. 그 여정이 시작되기 전날 밤, 영혼은 땀내가 밴 베게에 가만히 누워, 살아 있는 사람들이 자신의 손을 잡아주고 눈을 감겨주는 모습을 지켜본다. 또한 문과 창문과 바닥의 틈새로 영혼이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사람들이 방 안을 연기와 침묵으로 가득 채우는 모습을 바라본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영혼이 강물처럼 집 밖으로 흘러나가기라도 할 것처럼……. 사람들은 동이 틀 무렵 영혼이 자기들을 떠나 과거에 머물렀던 곳, 즉 젊었을 때의 학교와 기숙사, 군대 막사와 주택, 허물어졌다가 다시 지어진 집들, 그리고 사랑과 회한, 힘들었던 일들과 행복했던 일들, 희망과 희열로 가득했던 일들, 다른 사람들에게는 의미 없는 소중한 기억들을 떠올리게 하는.. 2012. 6. 25.
동요 '겨울나무' 저녁나절에 라디오에서 동요 '겨울나무'를 들었습니다. 오십여 년 전, 방학 때만 되면 돌아가 조용히 지내던 그 시골집 건넌방에서 듣던 라디오가 생각났습니다. 조용한 초겨울 저녁때여서 그 생각이 났을 것입니다. 라디오는 초겨울 저녁때나 듣는 것 같기도 했습니다. FM 프로그램은 그때나 지금이나 거의 같다는 느낌입니다. 변하지 않았다는 건 얼마나 고마운 것인지요. 우리가 세상에서 사라진 날에도 오늘 같은 초겨울 저녁나절에는 그리운 우리 가곡, 동요들이 어김없이 들려올 것입니다. 그 점에 대해서는 안심해도 좋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6학년을 맡아서, 어슬프게 가르친 나에게 그 아이들이 물었습니다. "선생님, 좋아하시는 노래가 뭐예요? 18번요." 곧 방학이고 그러면 졸업이 이어질 초겨울 어느 날이었습니다. 그런.. 2011. 12. 18.
어느 학부모의 편지 교장선생님~~ 조금 전 전화 드렸던 ○○ 엄마입니다. 3년 만에 들어보는 따뜻하고 인자하신 음성에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그간의 저의 무심함에 얼굴이 달아오르기도 했습니다. 선생님이 떠나실 때는 저희를 두고 떠나신다는 서운함이 있었습니다. 지금 전 선생님께서 성복학교에 계실 때 주셨던 '파란편지'를 꺼내 선생님 mail 주소를 확인하고, 선생님께서 쓰신 글을 읽다 눈물이 쏟아져서 컴퓨터 자판기를 쳐내려가기가 힘이 듭니다. 이토록 우리 아이들을, 아니 이 사회를, 이 세상을 사랑하신 선생님과 결코 짧지 않은 2년 6개월의 시간을 함께 나누었다는 것이 얼마나 큰 행운이었는지 다시 한 번 뼛속 깊이 깨닫습니다. …(후략)… 아침에 잠이 깨며 용인 수지 성복의 이 학부모를 생각해내고, 흡사 한 무리의 별들 속.. 2010. 7. 13.
그리운 사람들 인터넷 서핑을 하다가 다음과 같은 글을 읽었습니다. 나를 그리워하는 사람이 있다는 게 신기합니다. 나는 지금 다른 세상에 와 있습니다. 그래서 두고 온 사람들이 그립습니다. 내가 와 있는 세상은 ‘저승’은 아니지만 멀쩡한 사람들이 살고 있는 그 세상, 내가 그 세상에서 하던 '교육'이라는 것이 이루어지고 있는 그 학교 근처를 기웃거리게 되면 그들이 하는 일에 지장을 주게 됩니다. 그래서 내가 떠나온 곳을 다시 찾아가 본 적이 없습니다. 그곳 사람들은 나를 매정한 사람이라고 할지 모릅니다. 어처구니없는 생각이지요. ♣ 내가 마지막으로 두고 온 사람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이들 중에는 지금은 다른 곳에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내 마음 속에는 내내 그곳에 있습니다. 이들이 내가 사랑하던 그 아이들과 함.. 2010. 5. 28.
조지 윈스턴 『December』 조지 윈스턴 내한 기사를 봤습니다.1 그 여 선생님이 생각났습니다. 1996년이었던가, 서울교원연수원에 가서 몇 번 사회과 교육과정 강의를 했습니다. 광화문 청사에서 그 연수원까지는 얼마 떨어져 있지도 않았지만 사무실 일 때문에 늘 초조한 마음으로 다녔습니다. 그날도 강의를 마치고 사무실 일 걱정으로 시간이 되자마자 마쳤는데 저 뒷자리에 앉은 한 여 선생님이 엎드려 울고 있었습니다. 아픈가 싶어서 까닭을 물었는데, 쑥스럽게도 제 얘기를 듣고 이미 많이 운 상태였습니다. 강의를 어떻게 했기에 그 선생님이 울었느냐 하면, 제가 사회과 교육을 연구하게 된 경위를 덧붙여 하나하나 깨달아 온 과정을 이야기했습니다. 난처했지만 그 선생님의 눈물이 그치기를 기다려 함께 식당으로 갔습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원인 S 선.. 2010. 5. 23.
마지막 날 밤의 꿈 나는 '교무실'의 뒷쪽 구석, 별도로 마련된 책상에 앉아 있었습니다. 교사들은 회의실이나 세미나실에서처럼 앉은 것이 아니라 옛날식 저 '지시·명령 전달형' 회의실에서 회의가 시작되기를 기다리며 두른두른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부산한 분위기가 가라앉자, 누군가 올해 새로 임명될 부장교사와 담임교사들을 호명했습니다. 순간적으로 '저 호명이 끝나면 내가 임명장을 주어야 한다'고 생각했으나, 그게 아니었습니다. 저 앞쪽으로 얼핏 새로 온 교장이 보였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교장, 교감, 교무부장은 모두 남성인 것 같았습니다. 이제 제가 할일이 끝났다는 걸 알아차렸습니다.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교무실 밖으로 나왔습니다. 교무실 문간에는 그곳에 벗어놓았을 제 신발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교무보조업무를 맡은 이를 .. 2010. 3. 5.
마지막 인사 우리 학교 여러분께는 이 인사말을 『슬픈 교육』이라는 비매품 인쇄물과 함께 종업식·졸업식 하루 전인 지난 17일 오후에 배부했습니다. 사실은 이미 2008년 겨울방학에 준비하여 USB에 담아 두었던 인사말이었습니다. 2010. 2. 26.
옛 제자 학교 뒤로는 구릉이 펼쳐져 있고, 구릉의 대부분은 꽃밭과 풀밭, '사색의 길'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넓게 펼쳐진 그 구릉의 관리를 위해 아이들이 동원되는 일은 없습니다. 꽃밭과 풀밭은 웬만하면 그냥 두어도 해마다 꽃을 피우고 잘 어우러지기 때문입니다. 그 넓은 구릉을 교사 '파란편지'가 혼자서 다 관리합니다. '파란편지'가 특히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는 부분은 꽃밭이나 풀밭, '사색의 길'이 아니고 관목림과 자작나무숲, 저 아래 평지로 이어지는 코스모스꽃밭 같은 특별한 곳들입니다. 꽃밭이나 풀밭, '사색의 길'에는 관심이 전혀 없다는 뜻은 아닙니다. '사색의 길'만 해도 그렇습니다. 교장 선생님께서 "아이들이 너무 소란을 피우는 것 아니냐?"고 따졌을 때, '파란편지'는 그 비난에는 대꾸도 하지 않다가 ".. 2010. 2. 5.
변명(辨明) 2007년 8월말에 용인을 떠나 한적한 이곳 남양주로 왔습니다. '내가 여기 와 있는 줄 누가 알까?' 싶은 곳입니다. 그 3년 전인 2004년 8월말에 광화문을 떠나 용인으로 옮길 때만큼은 아니어도 서글픈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자꾸 서글픈 일을 당하게 되어 이 블로그를 만들려는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당시에는 하루에 수십 명씩 이 블로그를 찾아왔고, 그것으로 보람과 위안을 느꼈습니다. 저를 직접 찾아오고 싶어 하거나 저를 바라보고 있는 분들 중에 몇몇 분이 저와 함께 광화문을 떠나, 그 다음에는 또 용인을 떠나 이곳으로 오신 것 같은 느낌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것이 2년 반이 지나자 이제 제 손님은 때로는 하루 천 명을 넘나들게 되었습니다. 한밤을 지난 첫새벽도 첫새벽이지만 비오는 밤 눈 내.. 2010. 1. 31.
모차르트 피아노협주곡 제20번 d단조 KV 466 모차르트 피아노협주곡 제20번 d단조 KV 466 - 슬픔과 눈물과 … 행복과 - 늦가을이면 더 좋을까요? 모차르트 피아노협주곡 제20번. 이상하지 않습니까? 제게는 그렇습니다. 할일이 아직 남은 것 같은데 달력을 보면 이제 거의 끝났습니다. 지나간 일들은, 늘 치열했는데, 지금 기억으로는 다 그렇고 그런 일들에 지나지 않습니다. 사람들을 만나면, 특히 어쩌다 만난 사람들은 "그땐 참 대단했다"고 해서 '그래, 그걸 기억해야 한다'고 정신을 가다듬지만 그때뿐입니다. 베이징을 다녀오는 비행기 안에서 G 교수가 한 말이 사실이고 진실일 것입니다. "제가 언제 또 교장선생님 모시고 다니게 되겠어요?" 세상은 본래 '단조'여서 단조스럽게 말하는 사람 같으면 '비극적'이라고 해야 하는 것인데 느낌에 따라 '장조'.. 2009. 11. 24.
우리는 그가 이런 교장이었다고 이야기한다 그는 황당한 교장이었다. 2004년 가을에 우리 학교에 온 그는 그 황당함으로 낯설게 다가왔다. 인근 학교 운동회를 구경 다니던 어느 날 오후에 “우리도 운동회를 하자”고 했다. 올해는 계획에 없고, 교육과정 계획은 이미 교육청에 보고한 사항이라고 하자, “계획은 바꿀 수 있는 것”이라고 했다. 운동회는 그냥 하는 게 아니고 계획을 세워 한 달 정도 연습해야 한다는 걸 상기시키자 “당연하다. 그러므로 그냥 할 수 있는 운동회를 하자”고 했다. 할 수 없어서 그 운동회 프로그램을 만들어 보여주자, 개회식의 ‘개회사’, ‘국민의례’, ‘대회장 인사’ 순으로 짚어 내려가다가 “대회장이 나냐?”고 묻더니 “싫다. 중요한 일도 좀 했지만, 대회장 같은 건 해본 적이 없다”고 했다. 왜 싫은가 묻자 “인물도 없고,.. 2009. 11. 11.
이상한 교장할아버지 지난봄 어느 날 교장선생님과 함께 계단을 오르고 있는데 2학년 정도로 보이는 사내아이가 지나가다가 큰소리로 인사를 했다. “교장할아버지, 안녕하세요?” 웃음이 나면서도 당황스럽기도 했다. 언짢아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그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면서 미소 짓는 모습을 보고 의아하기도 했고 안심이 되기도 했다. 그렇다. 우리 교장선생님은 ‘이상한’ 교장할아버지다. 근엄한 교장이 아니라 한없이 편안한 시골할아버지다. 아이들 교과서 뒷장에 나오는 편찬·심의위원이기도 한 우리 교장선생님은 오늘도 한국교원대학교에 교장자격연수 강의를 하러 갔다. 한 달에 두세 번 교장, 교감, 전문직 자격연수나 직무연수에 강의를 다닌다. 그러나 1년 가까이 함께 지내면서 이런 대외적 지위나 평판보다 더 커다란 것을 보고 느끼면.. 2009. 11.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