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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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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세련(소년소설) 《아빠의 불량 추억》 장세련(소년소설) 《아빠의 불량 추억》 시은경 그림, 단비어린이 2023 "아들, 뭐 하고 있어?" 엄마였다. 유난히 다정했다. 옆에 사람들이 있다는 건 엄마 목소리만 들어도 안다. "옆에 직원들 있지?" "왜?" "우웩! 하던 대로 하시지." 나는 일부러 토하는 시늉을 하며 이죽거렸다. 평소와 다르게 다정한 엄마의 말투가 느끼했다. 옆에 누가 있을 때나, 나를 혼내다가 걸려 온 전화를 받을 때 달라지는 두 얼굴의 엄마가 떠올랐다. 그럴 때 하던 말투라는 생각에 온몸이 간지러웠다. "집에서 노니까 좋아?" "좋지! 그럼!" "그런데 왜 퉁퉁 부은 말투야?" "몰라! 말이 어떻게 퉁퉁 부어?" 알면서도 묻는 엄마가 얄미워서 아무렇게나 말했다. 게다가 감시하는 전화라니. 사춘기를 맞은 재우는 다른 사람이 되.. 2023. 11. 26.
장세련 동화 《시크릿 키》 장세련 동화 《시크릿 키》 권혜수 그림, 연암서가 2023 5학년이 된 로미와 영교는 아직 '커플 선언'은 하지 않은 절친이다. 사이에 전학생 이진이 끼어든다. 이진이의 풍부한 지식과 깔끔한 외모, 세련된 태도가 아이들에게 선망의 대상이 되고, 그 이진이가 영교에게 접근하자 로미는 위기감을 느낀다. 얘들이 어떻게 될까, 로미의 갈등은 어떻게 전개될까...... 그 생각과 마음의 흐름이 자연스럽다. 이진에게 질투를 느끼고, 영교와의 사이를 의심하고, 이진이의 어머니와 아버지가 헤어진 사실을 알고 짓궂은 심리를 발동하고, 이진이의 필통까지 훔쳐 망가뜨리고... 그러다가 그런 행동들을 스스로 깨달아 극복해 가는 과정이 어떤 매뉴얼처럼 퍼져 나갈 수 있다면 세상은 훨씬 깔끔한 곳이 될 것 같았다. 환영처럼 나타.. 2023. 11. 25.
교사가 전문직인가? (202.11.24) 교사 출신이라 그런지, 의사가 환자의 검사 결과를 들여다보고 상태가 좋다고 하면 벌떡 일어서 "선생님, 감사합니다!" 하고 절을 하는 모습을 보면 그게 의사에게 감사할 일인가, 관리를 잘한 건 본인 아닌가, (혹은) 다른 의료진이 검사했는데 인사는 의사가 받는구나, 공연한 심술이 나고 의사는 좋겠다, 부러워하면서 교사 시절에 그런 인사를 받아봤는지 되돌아보곤 한다. 의사만도 아니다. 겨울철로 접어들었는데 수도 배관에 무슨 탈이 났는지 내내 잘 나오던 따뜻한 물이 갑자기 생각을 바꾼 듯 아무리 애를 써 봐도 헛일이면 내가 평소 이 간단한 것에도 관심이 없었구나 싶고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당혹감에 사로잡힌다. 그동안 일상생활이 그처럼 순조롭게 흘러온 데 대한 무관심이 벌을 받은 것처럼 약간의 죄책감도 느끼.. 2023. 11. 24.
만남과 헤어짐 : 수양공과 경제 위군(魏郡) 사람 수양공(脩羊公)은 화음산(華陰山) 위 석실에서 살았는데 그가 돌 침상에 누우면 돌이 푹신하게 들어갔다. 그는 식사도 거의 하지 않았고 때때로 황정(黃精)을 캐어 먹었다. 경제(景帝)가 그의 도술을 배우고 싶어서 그에게 벼슬을 주고 예우하여 왕족의 저택에 머물게 했는데 몇 년이 지나도록 도술을 얻을 수 없자 조서를 내려 "수양공은 어느 날 떠날 수 있는가?" 하고 물었다. 수양공은 사자의 전언(傳言)이 끝나기도 전에 침상 위에서 흰 양으로 변했는데 그 옆구리에 이렇게 쓰여 있었다. "수양공이 전하께 하직을 고합니다." 멋진 수양공, 그리운 신선, 살고 싶은 대로 살다가 홀연히 떠날 수 있는 신선에게 무슨 허물을 말하겠습니까. 신선 이야기 《열선전 列仙傳》(유향 지음, 김장환 옮김, 지식을.. 2023. 11. 23.
허버트 조지 웰즈 《우주전쟁》 허버트 조지 웰즈 《우주전쟁 THE WAR OF THE WORLDS 》 임종기 옮김, 책세상 2005 # 목요일 오후 "이 책 아니야." "이건 줄 알았는데..." "이 제목으로 100페이지 정도 되는 것 따로 있어." "주말에 보는 대로 봐. 다음주 초에 새로 찾아올게." # 월요일 오후 "이 책 다 읽었어. 더 빌려올 필요 없어." "벌써?" "응. 스토리는 단조로워. 다른 내용의 (별로 알고 싶지 않은) 설명이 많아." "그래? 축소판을 달라고 신청해 놓았는데..." "그럼, 그것도 볼게." # 한 장면 비행 물체가 추락한 들판의 상황은 오후에는 전혀 다르게 변해갔다. 석간 신문들이 가공할 헤드라인으로 런던을 발칵 뒤집어 놓았다. 화성에서 메시지가 오다 워킹에서 일어난 놀라운 사건 더욱이 우주천문 .. 2023. 11. 22.
광고는 어떻게 우리를 사로잡는가 (...) 근대적 광고는 대부분 전혀 다르다. 그것은 이성이 아니라 감정에 호소한다. 최면술의 암시와 마찬가지로 광고는 대상에게 감정적으로 깊은 인상을 준 다음 지적으로 그들을 굴복시키려고 애쓴다. 이런 유형의 광고는 온갖 수단으로 고객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준다. 같은 표현으로 몇 번이고 되풀이하기도 하고, 사교계의 부인이나 유명한 권투선수가 어떤 브랜드의 담배를 피우는 모습처럼 권위 있는 이미지의 영향력을 이용하기도 하고, 예쁜 소녀의 성적 매력으로 고객을 매혹시키는 동시에 그의 비판 능력을 약화시키기도 하고, 체취나 구취가 날지도 모른다는 위협으로 겁을 주기도 하고, 어떤 셔츠나 비누를 사면 인생 전체가 갑자기 달라진다는 몽상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이 방법들은 모두가 본질적으로 비합리적이다. 상품의.. 2023. 11. 21.
돈 : 나의 친구 J의 경우 내 친구 J는 저세상으로 간지 한참되었다. 평생 돈도 못 벌어본 채 한 많은 생을 비감하게 마감했다. 서울에는 나보다 훨씬 먼저 올라왔다. 작심하고 푸줏간을 운영했다. '되겠지' '되겠지' 했겠지만 점점 더 되지 않았다. 대형 마트에 가서 고기를 사는 사람들이 늘어나서였는지 그의 푸줏간을 찾는 발길은 아주 드물게 되어버렸다. 그는 그렇게 살면서도 부인의 행색만은 남루하지 않게 해 주었고, 밖으로는 결코 아쉬운 소리를 하지 않았다. 초등학교 동기 모임이 있는 날엔 단정한 모습으로 나왔고, 점잖은 용어로 조용조용 얘기했고, 친구들이 호들갑을 떨어도(가령 어떤 교사가 학생을 두들겨 팼거나 아이에게 두들겨 맞아서 신문에 난 날 모임이 있으면 그들은 다짜고짜 내게 덤벼들었다. "야, 임마! 교육부 놈들 다 뭐하냐.. 2023. 11. 19.
주용일 「꽃과 함께 식사」 꽃과 함께 식사 / 주용일 ​ 며칠 전 물가를 지나다가 좀 이르게 핀 쑥부쟁이 한 가지 죄스럽게 꺾어왔다 그 여자를 꺾은 손길처럼 외로움 때움에 내 손이 또 죄를 졌다 홀로 사는 식탁에 꽂아놓고 날마다 꽃과 함께 식사를 한다 안 피었던 꽃이 조금씩 피어나며 유리컵 속 물이 줄어드는 꽃들의 식사는 투명하다 둥글고 노란 꽃판도 보라색 꽃이파리도 맑아서 눈부시다 꽃이 식탁에 앉고서부터 나의 식사가 한결 부드러워졌다 외로움으로 날카로워진 송곳니를 함부로 보이지 않게 되었다 ​ - '꽃과 함께 식사' 고요아침, 2006 내 블로그 임시보관함에서 이 시를 '발견'했다. 독일 흑림에서 살고 있는 '숲지기' 님 블로그에서 복사해 온 것이 거의 확실한데 혹 모르겠다. 숲지기의 정원에도 여기처럼 기온이 영하로 내려갔을까?.. 2023. 11. 18.
죽음 너머로의 대화 나는 오래전에 죽은 아버지, 어머니와의 대화는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하며 살았다. 어쩌다가 몇 년에 한 번씩 나도 죽어 저승에 가면 만나서 회포를 풀 수 있을까 싶기는 했다. 그러다가 최근에는 가끔이긴 하지만 전보다는 자주 어머니를 생각하게 되었고, 특히 아버지는 하루에도 몇 번씩 생각하게 되었다. 또 전에는 내게 짐을 맡기고 일찍 세상을 떠난 두 분에 대한 원망이 컸지만 최근에는 있었던 일을 떠올리거나 이 일 저 일로 미안한 마음 같은 것들을 떠올린다. 원망하는 마음은 절로 사라졌다. 어머니는 저승으로 간지 51년, 논밭에서 죽도록 일만 한 일생, 큰댁에 걸핏하면 나락을 다 퍼주는 아버지와 다투던 일, 내가 초임 발령받은 학교 운동장에서 사진 찍은 일, 아내가 첫째를 임신하여 만삭의 몸으로 아픈 어머니.. 2023. 11. 17.
1999년 12월 11일 저녁 그 애와 내가 달라진 점 늦은 밤 늘 듣던 인사 "다녀왔어요." 오늘 아침 제 엄마에게 주고 나갔다는 아파트 열쇠 오후 5시 30분경 공항 가는 길의 전화, "아빠, 지금 어디 있어요?" 하고 울먹이던 목소리 기다려도 내 집으로 귀가하지 않게 된 것. 그런데도 나는 그 애가 여행을 다녀올 것 같은 느낌으로 지내게 된 것 2023. 11. 16.
홍시 단감은 네 언니, 홍시는 내 차지다. 어제 수영 가며 홍시 먹어보라고 해서 하나 먹어봤더니 어릴 때 내가 나무에서 따먹은 그 홍시구나 싶더라. 남은 건 좀 오래 구경하다가 먹으려고 한다. 이 홍시 때문에 그런 건 아니지만 권 서방 맘이 참 곱고 좋다. (10.30) 사랑하는 큰오빠.. 밤 늦은 시간에 문자 드려요. 편안히 주무세요. 어제 내려온 후 두 분께 미련이 남아 우왕좌왕하는 마음을 주저앉히기 위해 친구 밭에 가서 종일 엎드려 일하고 놀다 늦게 와서 언니가 싸준 달걀 고구마를 만지작거리다 먹으며 또 그리워하다 폰을 뒤늦게 열었어요....♡ 큰오빠, 언니 부디 마음 평온하시게 건강만 잘 지키셔서 오래오래 제게 버팀목이 되어주세요. ○○의 큰오빠 집이 너무 아름답고... 오빠 손길이 눈에 선하네요. 주.. 2023. 11. 15.
너 아니? 탐욕은 바닥이 없는 구덩이란다 이기심은 자기애와 동일하지 않다. 오히려 자기애와는 정반대의 것과 동일하다. 이기심은 일종의 탐욕이다. 모든 탐욕이 그렇듯이 이기심은 결코 만족할 줄 모르는 불만족감을 포함하며, 그 결과 진정한 만족은 존재하지 않는다. 탐욕은 바닥이 없는 구덩이다. 탐욕스러운 사람은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끝없이 노력하지만 끝내 만족에 도달하지 못하고 기진맥진한다. 자세히 관찰해 보면, 이기적인 사람은 항상 안절부절못하고, 충분히 얻지 못하거나 뭔가를 놓치거나 빼앗기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에 늘 사로잡혀 있다. 그는 자기보다 더 많이 가진 사람에 대한 불타는 질투심으로 가득 차 있다. 특히 무의식적인 역학 관계를 좀 더 관찰해 보면, 이런 유형의 사람은 기본적으로 자신을 좋아하지 않으며, 사실은 자신을 몹시 혐오한다는 것.. 2023. 11.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