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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책 보기의 즐거움

장세련(소년소설) 《아빠의 불량 추억》

by 답설재 2023. 11. 26.

장세련(소년소설) 《아빠의 불량 추억》

시은경 그림, 단비어린이 2023

 

 

 

 

 

 

"아들, 뭐 하고 있어?"

엄마였다. 유난히 다정했다. 옆에 사람들이 있다는 건 엄마 목소리만 들어도 안다.

"옆에 직원들 있지?"

"왜?"

"우웩! 하던 대로 하시지."

나는 일부러 토하는 시늉을 하며 이죽거렸다. 평소와 다르게 다정한 엄마의 말투가 느끼했다. 옆에 누가 있을 때나, 나를 혼내다가 걸려 온 전화를 받을 때 달라지는 두 얼굴의 엄마가 떠올랐다. 그럴 때 하던 말투라는 생각에 온몸이 간지러웠다.

"집에서 노니까 좋아?"

"좋지! 그럼!"

"그런데 왜 퉁퉁 부은 말투야?"

"몰라! 말이 어떻게 퉁퉁 부어?"

알면서도 묻는 엄마가 얄미워서 아무렇게나 말했다. 게다가 감시하는 전화라니.

 

 

사춘기를 맞은 재우는 다른 사람이 되었다. 엄마에게 대어들기도 하고 가출도 고려하게 되었다. 엄마도 폭발해버리기도 한다. "이재우! 너 못 먹을 거라도 먹었니!"

순하고 말도 잘 듣는 재우가 자신을 닮았다고 좋아하던 엄마는 이제 삐딱선을 타는 재우가 누구를 닮았는지 모르겠다고 한다.

 

아빠는 성실하고 업무 능력이 뛰어나 모범공무원 표창을 세 번이나 받았지만 재우는 그런 아빠도 좋아하지 않는다. 범생이... 재우 마음을 조금은 알아주는 듯하지만 어쩌다가 그렇다.

 

세 가족이 여름휴가를 떠나 깜깜한 밤에 도착한 곳은 펜션이 아니라 너와집이었다. 수염이 덥수룩한 할아버지 혼자 사는 산골짜기였다.

재우는 엄마 아빠가 자신을 떼어놓으려는가 싶어서 두려움을 느낀다.

불안감에 잠을 설치다가 별이 총총한 밤하늘을 바라보며 늦게까지 대화를 나누는 할아버지와 아빠 곁에서 한때 가출 소년이었던 아빠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들으며 아빠가 친구처럼 느껴지게 된다.

 

한때 유명했던 할아버지도 연극 공연에 실패해서 혼자 지내고 있지만 아무도 찾지 않더라는 슬픈 사연을 들려준다.

"인연이란 건 저 하늘의 별과도 같지. (...) 어떤 별은 가깝기도 하지만, 어떤 별은 아득하기도 하지. 사람도 그렇더군. 가장 가깝다고 느끼던 사람이 어느 순간 별처럼 아득해지더라고. 나는 경험이라고 느끼는 실패가 누군가에게는 절망으로 느껴지는 것처럼."

 

나흘째 날 아침, 재우는 겉으로는 이죽거려도 엄마 아빠에게 친밀감을 느끼며 함께 너와집을 떠난다.

 

 

나는 초등학교 3학년 때 글짓기를 배우겠다고 내 교실을 찾던 작가 장세련의 많은 책 중에서 한 권만 고르라면 서슴지 않고 이 책을 고르겠다.

"선생님께. 그날의 동심을 드립니다."

그 헌사를 자꾸 들여다보았다. 세련이 3학년 때였던 날들의 우리 교실도 떠올랐다.

 

시은경의 삽화도 '너무' 좋다. 아이스크림 케이크를 들여다보는 재우와 모범생 아빠(22쪽), 엄마에게 핸드폰과 아이패드를 빼앗기고 무력감에 빠져 오도카니 앉아 있는 재우(36쪽)... 이런 그림들에 빠져서 책을 읽다가 그림을 보다가, 그런 한나절을 보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