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과 함께 식사 / 주용일
며칠 전 물가를 지나다가
좀 이르게 핀 쑥부쟁이 한 가지
죄스럽게 꺾어왔다
그 여자를 꺾은 손길처럼
외로움 때움에 내 손이 또 죄를 졌다
홀로 사는 식탁에 꽂아놓고
날마다 꽃과 함께 식사를 한다
안 피었던 꽃이 조금씩 피어나며
유리컵 속 물이 줄어드는
꽃들의 식사는 투명하다
둥글고 노란 꽃판도
보라색 꽃이파리도 맑아서 눈부시다
꽃이 식탁에 앉고서부터
나의 식사가 한결 부드러워졌다
외로움으로 날카로워진 송곳니를
함부로 보이지 않게 되었다
- '꽃과 함께 식사' 고요아침, 2006
내 블로그 임시보관함에서 이 시를 '발견'했다.
독일 흑림에서 살고 있는 '숲지기' 님 블로그에서 복사해 온 것이 거의 확실한데 혹 모르겠다.
숲지기의 정원에도 여기처럼 기온이 영하로 내려갔을까?
이런저런 일로 마음이 흔들리고 머릿속에 또 구정물이 좀 흐르고 그런 아침에 초겨울 햇살이 저렇게 고운 걸 보며 내가 정말 반성하고 맑은 마음으로 돌아가려는 사람 맞나 싶은 시간이었다.
'외로움 때문에 내 손이 또 죄를 졌다'
'꽃들의 식사는 투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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