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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이우환21

책 고르기, 즐겁고도 어려운 일 책 고르기, 즐겁고도 어려운 일 Ⅰ 책 고르기는 즐겁고도 어렵다는 걸 실감했습니다. 즐겁다는 건 적은 돈으로 누릴 수 있는 특별한 사치이기 때문입니다. 그 대신 그건 어려운 작업이고 더구나 남을 위한 것이라면 더욱 그럴 것은 당연합니다. 다른 사람으로부터 받은 책이 마음에 드는 .. 2016. 10. 27.
이우환 공부 Ⅱ 미술가가 철학을 이야기하며 작품 활동을 하는 경우가 보다 바람직하다는 주장을 하는 건 아니지만, 이우환 선생1의 글을 읽고 있으면 행복했습니다. 주제넘은 일은 분명합니다. 그의 작품을 단 한 번도 구경한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신문이나 잡지, 방송에 나오는 그에 관한 소개를 눈여겨보고 그가 낸 책을 읽어보는 데 힘썼습니다. 수필집 『시간의 여울』, 시집 『멈춰서서』는 감명깊게 읽었고, 대담집 『양의의 예술』도 어려운 부분이 좀 있긴 해도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어려운 부분도 웬만큼 짐작은 할 수 있었습니다. 부끄럽지만 독서의 속도가 워낙 느려빠져서 『여백의 예술』은 사다놓고도 아직 읽지 못했습니다. 지난해에는 (쑥스럽습니다. 좀 정신없은 짓일는지……) 그의 시에 '등장'하는 '도코노마(床の間)'가.. 2016. 2. 22.
이우환 공부 Ⅰ 이우환1 공부 Ⅰ ― 『현대문학』 2016년 1월호(326~340), 「이우환과의 대화」(서면 인터뷰) 발췌 ― Q. 이우환 선생님의 약력에 따르면 한국의 전통 서당 교육문화의 마지막 세대를 경험하신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 교육문화가 어떤 구조를 갖추고 있는지, 독자들이 당시의 생활을 상상할 수 있도록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미셀 앙리시2) A. (……) 어머니의 사랑과 예민한 감성이 없었다면 내가 예술가가 되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고달픈 노동에서도 어김없이 시간을 내어 옷을 갈아입고 반듯이 앉아 고전소설이며 시를 읽어주던 어머니의 모습은 아름다운 문학소녀 같으면서도 고귀하고 준엄했습니다. 특히 문장을 독특한 리듬으로 소리 내어 읽는 어머니의 예쁜 목소리는 지금도 귓전에 아련합니다. 문장뿐 아니라 모.. 2016. 2. 16.
이우환 「보이는 것」 보이는 것 일본 여관의 휑그렁한 회반죽 벽의 다다미 방. 그 한 모퉁이에 자그만 꽃 한 송이가 환하게 꽂혀 있다. 그것뿐이건만 웬지 방보다 크고 아련하게 여백이 퍼진다. 이 공간에 젖어들면 고요히 보이는 것이 있어, 문득 사람은 투명해진다. 이우환 시집, 성혜경 옮김, 『멈춰 서서』(현대문학, 2005), 72~73. 저녁 내내 이우환의 『시간의 여울』(수필집) 『멈춰 서서』(시집), 『양의의 예술』(대담집)을 다시 들여다보고 있었습니다. 『여백의 예술』은 아직 읽지 않았습니다. 저 화병에 관한 길고 자세한 이우환의 글을 들여다보며 오래 생각하던 시간이 있었습니다. 끝내 보이지 않았습니다. 여기에 옮기니까 겨우 두 줄인데 그만큼 넓고 깊은 생각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정말 이 한 편의 시(詩)뿐이었는가, 의.. 2015. 10. 22.
이우환 시집 『멈춰 서서』 이우환 시집 『멈춰 서서』 성혜경 옮김, 현대문학 2005 그림을 소재로 한 시를 골랐습니다.(22~23) 그리는 일 내가 그림을 생각해냈다 하여 그림이 나인 것은 아니다. 그림이 내 손을 빌렸다 하여 내가 그림인 것은 아니다. 내가 그림을 그리고 있으면, 어느새 그림이 내게 그리게 하고 있다. 다시금 내가 그림을 그리지만, 그러다가 정신을 차려 보면 또 그림이 내게 그리게 하고 있다. 나와 그림 사이에, 무언가가 왔다갔다하는 듯하다. 내가 의식하여 그림을 그리거나, 혹은 반대로 그림에게 맡긴 채로 그려버리면, 그 무언가가 터트려지지 않게 된다. 작품이 불가사의한 힘으로 가득 차 보이는 것은, 대개 나와 그림이 겨루었던 것이다. 이 텐션*과 밸런스의 무언가가 나를 화가이게끔 한다. 긴장감으로 단숨에 읽은.. 2014. 11. 30.
이우환의 '관계' 『현대문학』 7월호 표지에 실린 작품입니다.여러 작품이 화보로도 소개되었습니다. 각 작품 제목에 '관계'라는 단어가 들어가 있습니다. 「관계항―대화Ⅹ/Relatum―DialogueⅩ」, 「관계항―별들의 그림자/Relatum―L'ombre des étoiles」, 「관계항―대화Z/Relatum―DialogueZ」, 「관계항―솜의 벽/Relatum―Cotton Wall」, 「관계항―베르사유아치/Relatum―L'Arche de Versailles」, 「관계항―거인의 지팡이/Relatum―The Cane of Titan」………… 그 까닭을 알 수 있는 글입니다(『현대문학』2014년 7월호, 270쪽,「표지화가의 말」). "내 발상은 모든 것이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대단히 모순된다는 겁니다. 존재는 모순이지, .. 2014. 10. 14.
이우환 『시간의 여울』 이우환 『시간의 여울』(현대문학, 2013) 아침, 집 앞의 길바닥에 개구리가 차에 치여 죽어 있었다. 내장이 터져 파리가 들끓고 있었다. 그 이튿날 아침에 보니, 이미 개구리는 전병이 되어 납작하게 땅바닥에 달라붙어 있었다. 그로부터 며칠이 지나 마음에 걸려 그곳에 나가 보니 이미 아무것도 없고, 그 위치조자 확실치 않았다. 어느 비 오는 밤, 끊임없이 울어대는 개구리 소리에 잠이 깨어, 희뿌연 불빛에 떠오른 흰 캔버스를 멍하니 바라보며 밤을 새웠다. 그런 일이 있은 다음, 어언 그 개구리에 대한 것은 벌써 잊어버렸을 터인데도, 이따금 까닭도 없이 한밤중에 일어나 멍청하게 흰 캔버스를 바라보는 버릇이 들었다. 「개구리」 전문 이우환의 에세이 81편을 실은 책입니다. 언제 다 읽었는지 모르겠습니다. '먼.. 2014. 10. 13.
심은록 엮음 『양의의 예술-이우환과의 대화 그리고 산책』 심은록 엮음 『양의의 예술-이우환과의 대화 그리고 산책』 현대문학(2014) 『현대문학』에 4회에 걸쳐 연재된 글을 모은 책입니다. 비닐 포장이 되어 있어서 '이 책에서는 도판이 컬러로 인쇄되었겠지?' 생각하며 구입했습니다. 다 읽은 책을 구태여 구입하고 싶어서 마련한 핑계였습니다. 『현대문학』의 광고 페이지에는 그의 저서들이 소개되고 있었는데 그동안 눈여겨본 적이 없었습니다. 세계 현대미술의 거장 이우환, 예술에 대한 성찰과 명상 『여백의 예술』(에세이) 동양사상으로 미니멀리즘의 한계를 뛰어넘은 이우환 화백의 철학적 단상 『멈춰 서서』(시집) 철학과 예술론이 압축되어 있는 이우환 화백의 시집 『시간의 여울』(에세이) 일본 고등학교 교과서에도 수록된 「뱀」 「아크로폴리스와 돌멩이」 등, 생명력으로 가득 .. 2014. 7. 11.
좀 더 큰 어떤 다른 세상 『현대문학』에 미술가 이우환 선생을 인터뷰한 글이 연재되었습니다. 올해 1월호부터 4월호까지였고, 프랑스에서 미술비평 및 예술부 기자로 활동하는 심은록이라는 분이 쓴 글이었습니다. 1월호에서는 54쪽, 2월호 50쪽, 3월호 55쪽, 4월호 45쪽이었고, 매번 흥미진진하게 읽으면서 4월호를 끝으로 연재가 끝난 것이 섭섭해서 '느닷없이' 끝난 것 같은 축제, 한동안의 축제가 지나가고 그 이튿날 다른 계절이 시작된 듯한 느낌이었습니다.1 이우환이 누군가, 설명을 좀 해보는 것은 다 부질없는 일이고, '괜히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세계적 예술가'가 아니라는 걸 실감했다고만 하겠습니다. 그런 사람과 나는, 하는 일이나 생각이 서로 다르다 하더라도 지금까지 더러 뭘 좀 아는 척하며 지낸 자신이 쑥스러워집니다. 사람이.. 2014. 6.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