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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책 보기의 즐거움

심은록 엮음 『양의의 예술-이우환과의 대화 그리고 산책』

by 답설재 2014. 7. 11.

심은록 엮음

『양의의 예술-이우환과의 대화 그리고 산책』

현대문학(2014)

 

 

 

 

 

 

『현대문학』에 4회에 걸쳐 연재된 글을 모은 책입니다.

비닐 포장이 되어 있어서 '이 책에서는 도판이 컬러로 인쇄되었겠지?' 생각하며 구입했습니다. 다 읽은 책을 구태여 구입하고 싶어서 마련한 핑계였습니다.

 

『현대문학』의 광고 페이지에는 그의 저서들이 소개되고 있었는데 그동안 눈여겨본 적이 없었습니다.

 

세계 현대미술의 거장 이우환, 예술에 대한 성찰과 명상

『여백의 예술』(에세이) 동양사상으로 미니멀리즘의 한계를 뛰어넘은 이우환 화백의 철학적 단상

『멈춰 서서』(시집) 철학과 예술론이 압축되어 있는 이우환 화백의 시집

『시간의 여울』(에세이) 일본 고등학교 교과서에도 수록된 「뱀」 「아크로폴리스와 돌멩이」 등, 생명력으로 가득 찬 시간의 떨림을 기록한, 일본 '모노파'1를 창시한 이우환의 명 에세이

 

알아야 보인다더니, 이런 신문기사도 보였습니다.2

 

"와, 쇠 무지개다!" 지난 12일 '절대왕정의 꽃'으로 불리며 세계에서 가장 화려한 궁전으로 손꼽히는 프랑스 베르사유의 베르사유 궁전. 구름 한 점 없이 청명한 날, 수학여행 온 개구쟁이 한 무리가 고풍스러운 궁전 앞에 설치된 대형 철제 아치 아래로 뛰어들어갔다. 길이 30m, 폭 3m 스테인리스 철판을 최대 높이 12m의 반원 형태로 둥그렇게 휘어 만든 이 구조물은 궁전에서 정원으로 내려가는 계단 바로 앞에 세워졌다. 양끝엔 두루뭉술한 큰 돌덩이가 하나씩 놓여 있었다. 관람객들은 자연스레 아치 아래 멈춰서서 발아래 펼쳐지는 광활한 풍경을 내려다봤다.

 

"이만하면 됐다. 내 이름을 안다거나, 어떤 뜻이 담겨 있는지 그런 건 몰라도 된다. '이게 뭐야' '희한하네' 이런 반응도 괜찮다. 사람들이 잠깐 발걸음 멈추고 궁 전체를 다시 보는 '계기'를 만드는 것, 그게 내 의도였으니까." 이 모습을 흐뭇한 표정으로 물끄러미 바라보는 사람이 있었다. 아치 모양의 작품 '관계항(關係項)―베르사유의 아치(Relatum―L'Arche de Versailles)'를 만든 작가 이우환(78)이었다. …(후략)

 

이 책의 첫머리와 끝부분(9, 273~275).

 

세계적으로 존경받는 예술가들을 만날 때는 샤머니스트적인 심정으로 거대한 나무를 보러 가는 조심스러운 기분이다. 작품이 열매나 꽃이라면 작가와의 심도 깊은 대화에서는 깊은 뿌리를 본다. …(중략)… 이우환(1936~, 한국)은 1968년경부터 일어난 일본 '모노하' 운동의 중심 작가 가운데 한 명으로 미술가이자 문필가이다. 그는 파리 죄 드 폼 미술관,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 본 시립미술관, 서울 삼성미술관 등 주요 미술관에서 많은 개인전을 개최했으며, 또한 파리 비엔날레, 베네치아 비엔날레, 카셀 도쿠멘타와 같은 주요한 국제 전시에 참여했다. 그리고 그의 저서 『만남을 찾아서』, 『시간의 여울』, 『여백의 예술』 등은 이미 한국어뿐만 아니라 영어와 프랑스어로도 번역되어 세계에서 널리 읽히고 있다. 그의 예술은 '조각'과 '회화', '시'와 '산문' 사이를 오가며 무수한 질문을 던지면서 '사유의 경건함'에 젖어들게 한다.

 

2013년 4월 일본을 방문했을 때, 벌써 졌어야 할 벚꽃들이 아직 화사하게 피어 있어서 가슴을 설레게 했다. 그러나 며칠 후에 바람이 점점 강하게 불기 시작하면서 벚꽃이 우수수 떨어졌다. 그새 벚꽃의 화사함이 가슴속까지 물들였기에 돌풍에 휩쓸려 공중에서 떠돌다가 땅에 떨어져버리는 모습이 못내 아쉬웠다. "벚꽃이 질 때는 폭풍이 분다"던 이우환의 말이 문득 떠올랐다. 그때는 무슨 말인지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상식적으로는 바람이 불어서 꽃들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우환에게는 반대로 꽃이 지기 때문에 바람이 분다. 꽃이 질 때가 되어 마침 바람이 불자 꽃잎들이 떨어진다는 '현실적 관점'이 아니라, 꽃이 지기에 폭풍이 분다는 '시적 관점'으로의 전환이다. 마찬가지로 4월이 잔인하기에 라일락 향기가 진한 것이 아니라, 라일락 향기의 진함 때문에 4월은 잔인한 것이다. 이우환이 즐겨 읊은 서정주의 시처럼 '수틀 속의 꽃밭을 보듯 세상은 보는 것'이지, 세상을 보는 식으로 수틀을 보는 것이 아니다. 산문적이고 일상적인 관점에서 시적 관점으로의 전환이다. 이러한 시적 관점의 전환은 '시각적 관점'의 전환과 동시에 '만드는 것에 대한 관점의 전환'을 동반한다.3 이우환의 이러한 시적, 시각적 관점의 전환은 현실을 새로운 차원에서 보게 하기에 동시에 비판적 관점을 가능하게 한다. 이는 또한 존재에서 비존재로의 이행, 유한에서 무한, 생산pro-duction에서 시poésie로의 이행을 가능하게 하는 초월적 관점도 동반한다. 이러한 시적 관점은 이미 이우환이 지적한 '트릭'의 기능에서 본 것처럼 단지 미적 상상력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현대과학적이며 우주적 관점이 되기도 한다. 왜냐하면 '나비의 단순한 한 번의 날개짓이 반대편의 세계에 돌풍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파리의 전형적인 건물의 진한 초록색 대분이 무겁게 열리며 이우환이 아무 표정도 없이 나온다. 중독된 우리 사회에 전해줄 또 다른 파르마콘(약) 봉지와 '우산과 재봉틀'이 담긴 여행용 가방을 들고 나온다. 육중한 대문이 그 무게만큼이나 무겁고도 천천히 움직여서 완전히 닫혔을 때는 이미 작가는 저 멀리 등을 보이고 부지런히 경계를 향해 가고 있다.

 

『現代文學』 7월호에서 '지상 전시―「이우환 베르사유 전」'(화보)과 이 책 『양의의 예술』의 저자 심은록 기자가 쓴 원고 「베르사유 궁전에서 이우환과의 산책」을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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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우환은 1960년대 말 일본에서 진보적인 미술운동인 '모노하(物派)'를 이끌었다.
2. 2014.6.16. 조선일보.
3. 하이데거에 따르면, '시'와 '만드는 것'은 그리스어로 같은 어원을 가지고 있다(이 책의 주 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