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책 보기의 즐거움

케이트 디카밀로 『신기한 여행』

by 답설재 2014. 6. 8.

 

 

 

 

『에드워드 툴레인의 신기한 여행』

케이트 디카밀로 글·배그램 이바툴린 그림/김경미 옮김,

(비룡소, 2009, 2014 1판13쇄)

 

 

 

드러내놓고 이런 책을 보려면 눈치가 보이는 나이가 되긴 했습니다. 그렇지만 '거의'내 마음대로 읽을 수 있다'는 것이 '이럴 때도 있나?' 싶어서 신기하고 행복합니다. 그것은, '내 마음대로 고를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해서 더욱 좋습니다.

또 동화책 이야기를 하게 되어서 생각나는 것을 이렇게 적어 두는 것입니다.

 

 

 

 

27장 다음의 '맺음말'이 마침 줄거리 소개와 같아서 옮겨보겠습니다.

 

옛날에 토끼가 있었어요. 토끼는 어린 여자아이를 사랑했고 그 아이가 죽어 가는 걸 지켜보았어요.

그 토끼는 멤피스 거리에서 춤을 추었어요. 그리고 어느 식당에서 머리가 산산조각이 났지만 인형 수선공 덕분에 다시 살아났지요.

그 토끼는 다시는 사랑하는 실수를 저지르지 않겠다고 맹세했어요.

옛날에 토끼가 있었어요. 토끼는 봄에 여행이 시작될 때 자기를 사랑해 주던 여자아이의 딸과 정원에서 춤을 추었어요. 아이는 원을 그리며 춤을 추면서 토끼를 흔들었어요. 가끔은 너무 빨리 돌아서 둘 다 하늘을 나는 것 같았어요. 둘 다 날개가 달린 것 같았지요.

옛날에 신기하게도 집으로 돌아오는 길을 찾은 토끼가 있었답니다.

 

맨 처음에 만난, 그 이집트 거리의 어느 따듯한 집 여자아이 애빌린 툴레인은 이 도자기로 만든 토끼인형 에드워드 툴레인을 사랑해 주었지만, 불행하게도 이 토끼는 사랑하는 마음을 갖지 못한 채 그 여자아이와 헤어졌습니다.

 

세상을 돌아다니며, 그러니까 온갖 경험을 다 하는 여행을 하면서 사랑이 무엇인지도 알게 되고, 가슴아픈 사랑 때문에 다시는 사랑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그리하여 아무것도 기다리지 않겠다는 체념을 하려 하지만 어느새 다시 사랑을 기다리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고, 드디어 그 이집트 거리의 여자아이 그러니까 어른이 된 애빌린 툴레인을 만나게 됩니다.

 

그 애빌린 툴레인의 다섯 살 난 딸 매기가 이 토끼를 포근한 그 품에 안아주었기 때문에 애빌린이 에드워드 툴레인을 다시 만나게 되었다는 이야기, '동화 같은 이야기'입니다.

 

 

 

 

생명이 없는 대상과 현상에 대해 생명이나 감정을 부여하는, 유아들의 그 물활론적(物活論的) 사고(피아제, 인지발달이론)는 유아기를 지나면 영영 사라지게 된답니까?

그럼, 때로 그런 사고에 빠져드는 건 노인이라도 아직 유아기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이야기인지 뭔지……

 

에드워드는 자기 수염이 원래 누구의 것이었는지, 어떤 기분 나쁜 동물의 수염이었을지 생각하면 기분이 안 좋았죠. 그래서 오래 생각하지 않았어요. 대체로 불쾌한 생각은 하지 않는 편이었거든요.(14)

 

애빌린은 에드워드가 거실 의자에 앉아서 창밖으로 정문까지 이어지는 길을 볼 수 있게 해 주었어요.(15)

 

 에드워드는 사계절 중에서 겨울을 가장 좋아했어요.(15)

 

할머니는 …(중략)… 에드워드 쪽으로 가까이 몸을 기울이더니 이렇게 속삭이는 거예요.

"넌 날 실망시키는구나."(39)

 

불쾌한 생각은 하지 않는다, 창밖으로 정문까지 이어지는 길을 내다본다, 사계절 중에서 겨울을 가장 좋아한다, 아! 가슴을 찌르는 그 말! "넌 날 실망시키는구나!"…… 이런 장면 때문이었지 싶습니다. 처음부터 저 토끼 에드워드 툴레인이 나 자신 같았고, 그의 여행이 바로 내 이야기를 비유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에 등장한 이래 더 많이 팔린 책이랍니다.

 

이런 책 이야기를 하는 것은 좀 난처한 점이 있지만, 사랑을 모르는 '인간'이("제 이야기이니까 절대로 오해하지 마십시오") 한번 읽어보면 조금이라도 나아질 수도 있는 것 아니냐 싶어서였으니까, '아, 그런 사람도 있겠구나.' 하면 좋을 것입니다.

 

그래서 생각하고 있습니다.

'나는 누구를 사랑하고 말고 할 자격이나 있는 인간일까……'

 

면지 안쪽에 이런 글이 인용되어 있습니다.

 

마음이 부서지고 또 부서진다.

부서지면서 살아간다.

점점 더 깊은 어둠 속으로

돌아설 수 없는 길을 갈 때

마음은 부서져야 한다.

 

                ― 스탠리 쿠니츠의 「실험나무 The Testing Tree」 중에서

 

 

 

누구라도 이렇게 지낼 때가 있는 것일까요? 아니면……

 

에드워드가 처음으로 사랑하게 된 그 여자아이

 

기다렸습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그 시간, 그 사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