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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책 보기의 즐거움

E. 데 아미치스 「난파선」

by 답설재 2014. 4. 22.

가령, 선장이 되려면 어떤 절차를 거쳐야 합니까? 물어보나마나 초등학교나 중학교 수준의 지식으로는 어림도 없을 것입니다. 성적이 최상이던 고등학교 동기생 한 명이 좋은 대학을 나와 행정고시에 합격했고 선장이 되었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그 소문만으로도 아주 높은 수준의 지식을 갖추어야 할 것은 쉽게 짐작됩니다.

그럼, 그런 지식은 무얼 하는데 쓰입니까? 시험 보는데 쓰고나면 그만입니까?

 

어릴 때 도덕책에서 읽은 선장 이야기가 나중에 보니까 『쿠오레(사랑의 학교)』라는 이탈리아 소년소설에 들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어른이 되어서 읽어도 충분히 감동적이었습니다.

 

왜 하필 이탈리아 이야기를 읽고 감동하느냐고 따질 수 있습니까? 이탈리아 작가가 이탈리아인들에게 자부심, 긍지, 애국심을 넣어주려고 쓴 책이어서 못마땅할 수도 있습니까? 그러면 어떻습니까? 우리는 우리대로 '아, 이런 마음가짐이 필요하구나!' 하면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우리 이야기가 아니니까 이탈리아인들이 자기네 나라를 위해 쓴 이야기니까 빼버리자, 읽지 말자고 하면 참 옹졸한 짓이 아니겠습니까?

 

설마 그렇기야 하겠습니까. 그렇지만 우리는 좀 심한 경향이 있습니다. 나라를 위해, 이웃을 위해, 목숨을 바치고, 정열을 쏟고, 훌륭한 업적을 남긴 사람들을 찾아서 동상을 세우자, 전기를 읽자고 하면 누구는 뭐가 어떻고 알고보면 어떤 비리를 저질렀고 사실은 이런저런 일도 있었고 해서 도저히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이 되고 맙니다.

 

이제 좀 넓은 마음으로 이런 책도 읽고 우리의 이 세상 이 나라에서 살다간 사람들 중에서 인간이니까 우리처럼 잘잘못이 있다 하더라도 그럴 듯한 일을 한 사람들을 찾아서 기리며 살면 좋겠습니다.

 

아, 선장처럼 멋있는 일을 하려는 사람에게는 괜히 어려운 문제를 출제해서 실력이 있는지 없는지, 공부시간에 졸았는지 정신을 바짝 차리고 들었는지, 학원에는 잘 다녀서 아직도 많이 외우고 있는지 어떤지 따지기보다는 이 「난파선」 같은 이야기를 읽어주고, 아니 읽어보게 하고,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어보면 그의 이성이나 감성이 어느 수준인지 당장 알 수 있을 것 아닙니까?  그러면 이 사람을 선정으로 임명해도 괜찮을지, 상관 없을지, 잘 해낼 수 있을지, 누구라도 판단할 수 있을 것 아니겠습니까?

 

사실은, 이런 이야기도 읽지 않은 주제에 어떻게 박사가 되고, 교수가 되고, 선장이 되고, 심지어 교장선생님이 되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난파선

 

- E. 데 아미치스, 『사랑의 학교』, 이달의 이야기 중 마지막 이야기

 

 

몇 년 전 12월 어느 날 아침, 대형 증기선 한 척이 리버풀(영국의 항구 도시)의 항구를 떠났습니다. 배에는 이백 명이 넘는 사람들이 타고 있었는데 그중 승무원이 칠십 명이었습니다. 선장과 거의 모든 선원들은 영국인이었습니다. 승객 중에 이탈리아인도 몇 명 있었습니다. 세 명의 신사와 신부님, 그리고 악단이었습니다. 증기선은 몰타 섬으로 갈 예정이었습니다. 구름이 잔뜩 낀 날씨였습니다.

 

뱃머리 쪽에 있는 삼등칸의 여행객 중에 열두 살가량의 이탈리아 소년 한 명이 섞여 있었습니다. 소년은 나이에 비해 키가 작았지만 튼튼했습니다. 용기 있고 진지하며 잘생긴 시칠리아인의 얼굴이었습니다. 그는 혼자 떨어져 앞 돛대 곁에 있었는데 자기 물건이 든 낡은 가방을 옆에 놓고 한 손을 그 위에 얹은 채 밧줄 더미 위에 앉아 있었습니다. 갈색 얼굴에 거의 어깨까지 내려오는 검은 곱슬머리였습니다. 보잘것없는 옷차림에 다 떨어진 담요로 몸을 감싸고 낡은 가죽 가방을 어깨에 메고 있었습니다. 그는 생각에 잠긴 채 주변과 여행객들, 증기선,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선원들, 그리고 불안한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소년은 집안의 큰 불행을 방금 겪고 나온 듯한 분위기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얼굴은 어린아이 같았지만 표정은 어른 같았습니다.

출발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회색 머리의 한 이탈리아인 선원이 자그마한 소녀를 데리고 뱃머리에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이 시칠리아 소년 앞에 멈춰 섰습니다.

"자, 네 여행 친구가 왔다, 마리오."

그러고는 가버렸습니다.

소녀는 소년이 앉아 있는 밧줄 더미 위에 나란히 앉았습니다. 그들은 서로 쳐다보았습니다.

"어딜 가니?" 시칠리아 소년이 물었습니다.

"나폴리로 해서 몰타까지 가." 소녀가 대답했습니다. "날 기다리고 계시는 어머니와 아버지를 만나러 가는 길이야. 내 이름은 줄리엣 팟지아니야."

소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몇 분 후 소년은 가방에서 빵과 말린 과일을 꺼냈습니다. 소녀는 비스킷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둘은 그것들을 먹었습니다.

"좋아 보이는구나!" 이탈리아 선원이 바쁘게 지나가면서 소리쳤습니다. "점점 거칠어지기 시작하는군!"

바람이 점점 세게 불었고 증기선은 심하게 흔들렸습니다. 하지만 험악한 바다를 경험한 적이 없는 소년 소녀는 그런 것에 신경을 쓰지 않았습니다. 소녀는 미소를 지었습니다. 소녀는 친구와 나이가 비슷해 보였지만 키는 훨씬 더 컸습니다. 갈색 얼굴에 몸이 좀 야위었고 건강도 별로 좋아 보이지 않았습니다. 옷차림은 꽤 소박했습니다. 짧게 자른 곱슬머리에 빨간 손수건을 두르고 귀에는 작은 귀걸이를 달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음식을 먹으며 자신들의 이야기를 서로 들려주었습니다. 소년에게는 아버지도 어머니도 없었습니다. 노동자이던 아버지는 바로 며칠 전 소년을 혼자 남겨 둔 채 리버풀에서 돌아가셨습니다. 그래서 이탈리아 영사가 소년을 다시 고향인 팔레르모로 돌려보내는 길이었습니다. 팔레르모에는 먼 친척들이 살고 있습니다. 소녀는 지난해 자신을 몹시 사랑하는, 혼자 된 친척 아주머니에게 이끌려 런던에 왔습니다. 가난한 소녀의 부모들은 유산을 상속해 주겠다는 아주머니의 약속을 믿고 얼마 동안 소녀를 데려가도록 허락해 주었습니다. 하지만 아주머니는 몇 달 후 일 첸테시모도 남겨 놓지 않은 채 승합 마차에 치여 죽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소녀 역시 이탈리아 영사관에 도움을 청했고, 그곳에서 소녀를 이탈리아로 가는 배에 태워준 것입니다. 두 사람 모두 이탈리아 선원에게 맡겨진 것입니다.

"그래서," 소녀는 결론을 지었습니다. "우리 어머니와 아버지는 내가 부자가 되어 돌아가는 것으로 믿고 계실 거야. 그런데 난 가난뱅이야. 그래도 부모님들은 나를 변함없이 사랑하실 거야. 내 동생들도 마찬가지고. 동생이 네 명인데 아직 다 어려. 내가 우리 집 맏딸이야. 내가 그 애들 옷을 입혀 주었어. 나를 보면 아주 기뻐할 거야. 살금살금 걸어 들어가야지…… 바다가 좋지 않구나."

그런 다음 소년에게 물었습니다.

"그러면 넌 먼 친척 집에 가서 살 거니?"

"응…… 날 싫어하지 않으면." 소년이 대답했습니다.

"널 좋아하지 않아?"

"잘 모르겠어."

"난 크리스마스에 열세 살이 돼." 소녀가 말했습니다.

잠시 후 그들은 바다와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들은 가끔씩 몇 마디 말을 나누면서 하루종일 붙어 앉아 있었습니다. 여행객들은 두 사람이 남매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소녀는 뜨개질을 했고 소년은 생각에 잠겨 있었습니다. 밤이 되어 서로 헤어져 잠자리에 들 시간이 되자 소녀가 마리오에게 말했습니다.

"잘 자라."

"아무도 잘 잘 수 없을 거다, 불행한 애들아!"

이탈리아 선원이 선장을 부르러 달려가면서 소리쳤습니다. 소년은 여자 친구에게 "잘 자."라고 대답하려고 했습니다. 그때 갑작스러운 파도가 세차게 소년을 뒤덮어 버렸습니다. 소년은 의자가 놓여 있는 곳에 나가떨어지고 말았습니다.

"오! 맙소사, 피가 나잖아!

소녀가 소년에게 달려들어 소리쳤습니다. 선실로 달아나던 여행객들은 그에게는 아무런 주의도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소녀는 충격 때문에 정신을 잃고 어리둥절해 하는 마리오 곁에 무릎을 꿇고 앉아 피가 흐르는 이마를 닦아 주었습니다. 머리에 묶은 빨간 수건을 풀어 소년의 머리에 감고 그 끝을 묶기 위해 소년의 머리를 가슴에 안았습니다. 노란 옷과 허리띠가 피로 얼룩졌습니다. 마리오는 깜짝 놀라 다시 일어섰습니다.

"괜찮니?" 소녀가 물었습니다.

"괜찮아."

"잘 자." 줄리엣이 말했습니다.

"잘 자."

마리오가 대답했습니다. 그리고 옆에 있는 두 개의 작은 계단을 통해 숙소로 내려갔습니다.

선원의 예상은 정확하게 맞았습니다. 무시무시한 폭풍우가 갑자기 몰아닥쳤기 때문에 아직 아무도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몇 분 사이에 돛대를 산산조각 내버리고, 철 기둥에 매달린 세 척의 배와 뱃머리에 있는 네 마리의 황소를 나뭇잎처럼 날려버리는 성난 파도가 갑자기 공격해온 것이었습니다. 증기선 안에서는 혼란과 공포, 대 소란이 일어났고 머리카락을 곤두서게 하는 비명, 울음소리 그리고 기도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폭풍우는 밤새 더 격렬해졌습니다. 동이 터 올 무렵에도 여전했습니다. 무시무시한 파도가 증기선 한쪽으로 부딪쳐 오면서 갑판 위로 몰려들어 배 위의 모든 것들을 산산조각 내고 무너뜨리면서 바닷속으로 내던져 버렸습니다. 기관이 가득 놓여 있던 갑판은 잠겨 버렸고 바닷물은 무시무시한 소음과 함께 안으로 밀려들어 왔으며 불이 꺼지고 기관사들은 달아나 버렸습니다. 사방에서 격렬하고 굵은 물줄기가 새어 들어왔습니다. 어떤 사람이 천둥 같은 소리로 외쳤습니다.

"펌프를 가져와!"

선장의 목소리였습니다. 선원들은 펌프를 가지러 달려갔습니다. 하지만 뒤쪽에서 갑작스러운 파도가 몰려와 증기선과 난간과 배의 창문들을 박살 내고 증기선을 격류 속으로 밀어 넣어 버렸습니다.

살았다기보다는 죽은 사람 같아 보이는 승객들 모두가 큰 객실로 몸을 피했습니다. 그때 선장이 나타났습니다.

"선장님! 선장님!" 모두 함께 외쳤습니다. "어떻게 된 거지요? 우린 어떻게 하나요? 희망이 있습니까? 우리를 살려 주세요!"

선장은 모두 조용해질 때까지 기다리다가 냉정하게 입을 열었습니다.

"포기해야 합니다. 최악의 상황을 기다려야 합니다."

한 여인만이 소리쳤습니다.

"자비를!"

다른 사람들은 단 한마디의 말도 입 밖에 낼 수가 없었습니다. 공포 때문에 모두 얼어붙어 버린 것입니다. 그렇게 무덤 속같이 조용한 가운데 많은 시간이 흘렀습니다. 모두 얼굴이 창백해져서 서로를 바라보았습니다. 바다는 더욱더 무시무시하게 성을 냈습니다. 증기선은 무겁게 흔들렸습니다. 선장이 바다에 구명보트를 띄워야 할 시간이 왔습니다. 그 안에는 다섯 명의 선원이 탔습니다. 배가 내려갔습니다. 하지만 파도가 그 배를 뒤덮어 버려 선원 두 명이 그 파도에 잠겼습니다. 물에 빠진 두 명 가운데 한 명은 이탈리아인이었습니다. 나머지 선원들은 밧줄을 겨우 다시 붙잡고 증기선 위로 올라올 수 있었습니다.

이제는 선원들도 승객들처럼 용기를 잃고 말았습니다. 두 시간 후 증기선은 벌써 뱃전의 수평판까지 물에 잠겨 버렸습니다.

그사이 무시무시한 광경은 갑판 위에서도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어머니들은 아이들을 절망적으로 가슴에 부둥켜안았고 친구들은 서로 포옹을 하며 작별의 말을 나누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바다를 보지 않고 죽기 위해 선실로 내려갔습니다. 한 여행객은 머리에 권총을 쏘고 선실 계단에 쓰러져 죽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흥분해서 서로를 붙잡았습니다. 여자들은 끔찍한 발작을 일으키며 몸부림을 쳤습니다. 어떤 이들은 신부님 주위에 무릎을 꿇고 앉았습니다. 흐느낌과 어린아이의 울음소리, 날카롭고 이상한 목소리들의 합창이 들려왔습니다. 무감각해져서 눈을 둥그렇게 뜨고 아무것도 바라보지 않는 시체나 미친 사람 같은 얼굴을 하고 석상처럼 꼼짝 않고 서 있는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보였습니다. 마리오와 줄리엣, 두 아이는 중기선의 돛대에 달라붙어 정신 나간 사람처럼 뚫어져라 바다를 바라보았습니다.

바다가 조금 잠잠해졌습니다. 하지만 증기선은 계속 천천히 가라앉았습니다. 완전히 가라앉기까지는 불과 몇 분 남지 않았습니다.

"바다에 보트를 띄워라!"

선장이 소리쳤습니다. 단 한 척 남아 있던 보트가 바다에 던져졌습니다. 열네 명의 선원과 세 명의 승객이 보트에 탔습니다.

선장은 배에 남았습니다.

"선장님, 이리로 내려오세요!" 보트에서 소리쳤습니다.

"난 내 자리에서 죽어야 합니다." 선장이 대답했습니다.

"다른 배들 만날 수 있을 겁니다." 선원들이 외쳤습니다. "살아야 합니다. 내려오세요. 그냥 계시면 죽습니다."

"나는 남겠습니다."

"아직 자리가 하나 남았어요!" 선원들이 다른 승객들에게로 몸을 돌리며 외쳤습니다. "여자 한 사람을 보내세요!"

한 여인이 선장의 부축을 받고 앞으로 나왔습니다. 하지만 증기선과 보트 사이의 거리를 보자 감히 뛰어내릴 용기를 내지 못하고 갑판에 다시 쓰러져 버렸습니다. 다른 여자들은 이미 기절을 했거나 거의 죽어 가고 있었습니다.

"아이요!" 선원들이 소리쳤습니다.

그 때까지 상상할 수도 없는 놀라움 때문에 돌처럼 굳어 있던 시칠리아 소년과 그 여자 친구는 고함 소리에 갑자기 삶에 대한 강렬한 본능이 살아났습니다. 정신을 차리는 순간 돛대에서 떨어져 나와 한 목소리로

"나를 데려가 주세요!"

라고 소리치며 뱃머리로 달려갔습니다. 그리고 성난 짐승들처럼 서로 상대방을 뒤로 밀어내려고 애를 썼습니다.

"작은 아이로 보내세요!" 선원들이 소리쳤습니다. "보트에 벌써 너무 많이 탔어요! 작은 아이로 보내세요!"

이 말을 듣자 소녀는 번개를 맞은 듯 힘을 잃고 그 자리에 꼼짝 않고 서서 힘없는 눈으로 마리오를 쳐다보았습니다. 마리오는 잠깐 소녀를 보았습니다. 가슴에 핏자국이 보였습니다. 그는 생각이 났습니다. 성스러운 생각이 번개같이 그의 얼굴을 스쳐갔습니다.

"작은 아이요!" 선원들이 초조하고 절실하게 외쳤습니다. "떠나야 합니다!"

마리오는 평소 목소리 같지 않은 소리로 외쳤습니다.

"이 애가 더 가벼워요. 네가 가, 줄리엣! 넌 아버지도 있고 어머니도 있잖아! 난 혼자야! 내 자릴 너에게 줄게! 뛰어내려!"

"그 애를 바다에 던져라!"

선원들이 소리쳤습니다. 마리오는 줄리엣의 허리를 잡고 바다에 던졌습니다. 소녀는 비명을 질렀고 풍덩 소리를 내며 바다에 떨어졌습니다. 선원 한 사람이 줄리엣의 팔을 잡아 보트 위로 끌어올렸습니다. 소년은 고개를 쳐들고 머리카락을 바람에 날리며 꼼짝 않고 조용하고 늠름하게 증기선의 뱃머리에 서 있었습니다.

보트가 움직였습니다. 증기선이 밑으로 가라앉을 때 생긴 회오리바람이 보트를 뒤덮어 버리려고 위협하는 것을 겨우 아슬아슬하게 벗어났습니다.

그 때까지 거의 정신이 나가 있던 소녀는 눈을 들어 소년을 바라보다가 흐느껴 울었습니다.

 

 

 

 

"안녕, 마리오!" 흐느껴 울다가 마리오 쪽으로 손을 뻗으며 소리쳤습니다. "안녕! 안녕! 안녕!"

"안녕!" 소년도 손을 높이 흔들며 소리쳤습니다.

보트는 흔들리는 바다 위로, 어두운 하늘 밑으로 재빠르게 사라졌습니다. 증기선에서는 이제 아무도 소리를 지르지 않았습니다. 바닷물이 벌써 갑판의 가장자리에서 넘실거렸습니다.

소년은 갑자기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모으더니 하늘을 바라보았습니다.

소녀는 얼굴을 가렸습니다.

소녀가 얼굴을 다시 들고 바다를 바라보았습니다. 증기선은 어느 곳에도 없었습니다.

 

 

―― E. 데 아미치스/이현경 옮김/김환영 그림, 『사랑의 학교 3』(창작과비평사, 1997), 152~165쪽에서.

 

 

 

 

 

 

 

『사랑의 학교』의 이탈리아판 원제목 『쿠오레(Cuore)』는 사랑이나 우정, 감동, 열정 등의 마음을 뜻한답니다. 에드몬드 데 아미치스(Edmondo De Amicis, 1846~1908)는 오랫동안 외세에 시달리던 이탈리아가 통일운동을 벌이던 시기에 전투에 참가한 경험을 바탕으로 군대생활(1868), 추억들(1872) 등을 발표해 단숨에 유명해졌습니다. 하지만 그를 세계적인 작가로 만든 이 작품은 나오자마자 큰 성공을 거두어 이탈리아에서는 꼭 읽어야 하는 책이 되었답니다.'엔리코'라는 초등학교 4학년 학생의 학교생활과 친구들을 중심으로 가정의 일, 사회적인 일들이 펼쳐지는 일기체 소설입니다. 부모와 자식, 스승과 제자, 친구들, 부자와 가난한 사람들 사이의 사랑의 중요성을 선생님과 아버지, 엔리코를 통해 보여줍니다.

 

 

전에 이 책을 소개하며 다음과 같이 썼는데, 이 책을 좋아하는 마음은 지금도 변함이 없어서 지금 또 이 책에 대해 쓰라고 해도 그렇게 쓸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이렇게 썼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문화일보기자가 제게 전화를 해서 Readers are Leaders라는 특별기획 코너에 교육자 한 명을 소개하기로 했고, 그 첫 번째 인터뷰가 하필이면 블로그 파란편지주인에게 돌아가게 되었다고 하면, 저는 망설이지 않고 이 책을 소개할 작정입니다. 그러나 그럴 일이 일어날 가능성은 전혀 없기 때문에 기자가 오면 인터뷰를 어디서 어떻게 하고, 그 기자와 식사를 할 식당 같은 문제는 전혀 생각해두지 않았습니다.제가 평생에 책을 그렇게 많이 읽은 사람도 아니고, 앞으로도 이제 정말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구나하고 걸신들린 듯 읽어댈 자신도 없지만, 그동안 읽은 책 중에서 딱 한 권만 고르라면, “그 책을 고르고 어떠한 후회도 없겠는가?” 묻는 한이 있더라도 저는 이 책을 선택해야 할 것입니다.만약, 교육부장관에게 권할 만한 책을 고르라고 해도그 책을 각 시도 교육감, 교육위원회 위원들, 전국 초고등학교 교장들, 수많은 교사들, 그보다 더 많은 학생과 학부모들에게도 권할 예정이라고 해도, 저는 이 책을 이야기해야 할 것입니다. 지금 교육대학교나 사범대학을 다니는 예비교사들에게도 역시 이 책이 좋다고 설명할 것입니다. 특히 저처럼 교장이 되어 앉아 있는 사람은 물론 아이들을 직접 대하고 있는 교사들은, 오늘 이 시간 아이들을 더 잘 가르치는 일보다 교육부나 교육청에서 시키는 어떤 시책에 관한 일이 더 중요하게 생각될 때 지체 없이 이 책을 읽어보는 것이 좋겠다고 하겠습니다.저는 이 책을 40년 전에 처음 읽고 우리도 이런 학교를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이 너무 깊어서 내가 우리나라에 적합한 한국판 사랑의 학교를 한번 써볼까싶었습니다. 이 학교 저 학교에서 만날 아이들, 선생님들, 학부모들의 이야기를 모으고, 그런 이야기들을 엮는다면 못할 것도 없을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그 일을 미루고 미루다가 오늘에 이르고 말았습니다. 처음부터 무모했을 것입니다. 제가 한국판 사랑의 학교를 써서 세상에 내놓을 생각이 깊었기 때문에 결국 그동안 이 책이 좋다는 이야기도 별로 하지 않고 지냈습니다. 장차 제가 쓰게 될 사랑의 학교를 읽을 사람들이 굳이 이 책까지 읽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 점에 대해서는 정말로 미안하게 생각합니다.…(후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