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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책 보기의 즐거움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지킬 박사와 하이드』

by 답설재 2014. 5. 22.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지킬 박사와 하이드』

펭귄클래식 코리아 2010

 

 

 

 

 

 

 

건장하고 균형 잡힌 체형에 포용력과 따뜻한 애정과 친절함이 풍기는 지킬 박사는, 하이드로 변신하는 순간 무자비한 짓을 서슴치 않는 흉악한 사내가 됩니다.

 

    # 1

한겨울 새벽, 여덟이나 열 살쯤 된 여자아이가 한 사내와 "길모퉁이에서 맞부딪치게 되었고, 거기서 끔찍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 남자가 태연하게 아이의 몸을 발로 짓밟고는 울부짖는 아이를 길바닥에 내버려 둔 채 떠나버린 겁니다. 듣기에는 별일 아닌 것 같지만 실제로 볼 때는 아주 소름 끼치는 장면이었어요. 인간 같지가 않더군요. 마치 크리시나 신상(神像)을 태운 수레에 무자비하게 짓밟히는 모습 같았다니까요…(후략)…"(30~31).

 

    # 2

하이드는 손에 묵직한 지팡이를 들고 만지작거리고 있었는데, 한마디 대꾸도 없이 참기 힘든 조급함을 내비치며 노신사의 말을 듣고 있었다. 그러다 그는 갑자기 불같이 화를 내면서 발을 구르고 지팡이를 휘둘렀으며, (허녀의 표현을 따르자면) 미친 사람처럼 길길이 날뛰었다. 매우 놀란 노신사는 좀 기분이 상한 듯 한 발짝 뒤로 물러섰고, 이에 하이드는 완전히 자제력을 잃고 노신사를 지팡이로 때려 바닥에 쓰러뜨렸다. 그리고 다음 순간 마치 고릴라 같은 분노를 표출하며 그를 발로 짓밞고 마구 내리쳤다. 그 아래에서 뼈 부서지는 소리가 들리더니 신사의 몸이 차도로 털썩 떨어졌다(54).

 

다음은 이러한 범죄를 저지른 그의 생각입니다.

 

그랬기 때문에 내 생각에, 내 불행한 희생자 댄버스 경이 예의를 갖축 하는 말들을 들었을 때 참을 수 없는 초조함이 폭풍을 불러일으키며 내 영혼을 휘저었던 것이다. 신을 두고 맹세하거니와, 정신이 똑바른 사람이라면 어떻게 그러 별것도 아닌 자극에 그렇게 끔찍한 범죄를 저지를 수 있겠는가. 나는 마치 아픈 아이가 장난감을 부수듯 그렇게 비이성적인 정신 상태에서 발작을 한 것이다. 아이와 달리 나는 자발적으로 균형을 유지하는 인간의 모든 본능을 벗어버렸고, 따라서 최악의 인간도 그 균형 감각 덕분에 유혹 속에서 꿋꿋이 버틸 수 있는데 반해, 나는 아주 작은 유혹에도 그대로 굴하고 말았다.

즉시 악마의 기운이 깨어나며 나는 분노했다. 쾌감에 몸을 떨며 저항도 못하는 그에게 폭력을 휘둘렀고 한 대 한 대 칠 때마다 환희를 맛보았다. (119~120)

 

 

1

 

「여덟살짜리 20차례 밟고(칠곡 계모), 갈비뼈 16개 부러뜨려(울산 계모) 숨지게 해도… "살인罪 아니다" 판결」

 

한 일간지 사진 기사 제목입니다. 사진에는 이런 설명이 붙어 있습니다.

"11일 오후 울산 남구 울산지방법원에서 '울산 계모 아동학대 사건' 피의자 박모(40)씨에 대해 징역 15년이 선고되자 방청객들이 울부짖고 있다. 재판부는 박씨에 대해 상해치사죄만 적용했다"2

3면에는 자세한 기사가 실렸고, 그 제목은 「아동 학대를 일반 폭력罪처럼 다룬 '자판기 판결'」이었습니다.

 

 

2

 

칠곡의 사건은, 지난해 8월, 의붓딸(8)을 폭행해서 숨지게 한 사건으로 알려졌습니다.

어머니는 담임교사와 상담할 때는 "아이가 계단에서 넘어졌으며 전혀 때리지 않았다"고 완강히 주장했고, 아동학대예방센터 상담 때에도 "계모라는 이유로 오해받고 있다. 오히려 억울하다"고 했으며, 경찰 조사에서도 폭행 사실을 그 아이의 언니(12세)에게 떠넘겼다고 했습니다.3

 

울산 사건은지난해 10월 24일 "친구들과 소풍을 가고 싶다"는 의붓딸(8)의 가슴·옆구리·머리·배 등 급소를 발로 마구 걷어차고 주먹으로 때려 갈비뼈 16개가 부러지는 등 무자비한 폭력을 휘둘러 결국 생명을 잃게 한 사건으로, 3년간 아이가 학원에서 늦게 귀가하거나 거짓말을 한다는 이유 등으로 때리거나 뜨거운 물을 뿌려 화상을 입힌 혐의도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 어머니의 변호인은 아이를 죽이려고 한 것은 아니므로 살인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를 선고해 달라고 주장했는데, 본인도 “씻을 수 없는 죄를 지었지만 아이를 죽이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모든 게 제 잘못이고 반성한다”고 진술했답니다.4

 

 

3

 

사건을 단순하게 정리해 놓은 걸 읽어보면, 이 세상 사람들은 '나쁜 인간'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로 나누자는 경향이 가능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변호인이나 피의자의 진술을 포함한 기사를 읽어보면, 세상에는 물론 단 한 점도 오명되지 않은 순진무구한 사람도 많겠지만, 나쁜 사람이라 하더라도 얼마나 나쁜 사람인가에 따라 그 정도를 구분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지킬박사와 하이드』는 인간의 이중성을 이야기한 소설입니다. 잘못을 저지르는 사람들도 평소에는, 혹은 다른이들이 보는 앞에서는 여느 사람과 같다는 이야기라고 해도 좋을 것입니다.

 

지킬 박사는 오랜 연구 끝에 인간의 이중적인 요소를 분리할 수 있는 약을 만들었습니다. 그 약을 먹고 무자비한 인간 하이드로 변신했다가 다시 지킬 박사로 돌아오는 생활을 반복하면서 자신은 하이드가 아닌 것처럼, 하이드와 자신은 전혀 다른 별도의 인물인 것처럼 사람들을 철저히 속이는 생활을 했습니다.

 

하이드로 변신했을 때의 그는, 행동과 사고 하나하나가 자기중심적이었고, 다른 사람에게 고통을 주는 데서 짐승 같은 탐욕을 느끼며 쾌감을 마십니다. 심장이 돌로 된 사람처럼 냉혹해집니다(114).

그러다가 그는 걸핏하면 하이드로 변신하고 싶어지게 되었고, 더구나 자신이 원하지도 않았는데 하이드로 변한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4

 

다음은 그의 이중성을 엿볼 수 있는 인용입니다.

 

…… 나는 나란 인간 속에서 철저하고 근본적인 인간의 이중성을 인식하게 되었다. 내 의식 속에는 서로 갈등하고 있는 두 개의 본성이 있으며, 비록 내가 그중 어느 한쪽이라고 말하는 것이 옳다 하더라도, 그것은 근본적으로 내가 양쪽 모두이기 때문이다. …(중략)… 부조리한 존재는 그의 고결한 쌍둥이의 열망과 자책으로부터 해방되어 그만의 길을 가고, 정의로운 존재는 흔들림 없이 확고하게 높은 곳을 향한 그의 길을 가면 될 것이다.(107)

 

나는 내 자신이 더욱 사악해져서, 열 배는 더 사악해져서 내 깊은 곳의 악마에게 노예로 팔렸음을 알아차렸다(109).

 

나이가 들면서 이렇게 일관되지 못한 생활이 점차 짜증스러워졌다. 그랬기에 내 새로운 능력이 나를 유혹할 수 있었던 것이고 나는 결국 그것의 노예가 되어버렸다. 그저 약을 마시기만 하면 저명한 교수의 육신을 단번에 벗어버리고 두꺼운 망토를 걸치듯 에드워드 하이드의 육신을 입을 수 있었다(112).

 

내 의지와 반하여 내 기억 속에서 들끓는 그 끔찍한 장면과 소리를 나는 눈물과 기도로 막아보려 했다. 하지만 기도를 올리는 가운데에서도 그 사악한 죄의 흉측한 얼굴은 내 영혼을 노려보고 있었다(121)

 

 

5

 

『지킬 박사와 하이드』는 제목이 풍기는 느낌에 비해 그리 어렵게 읽히는 소설은 아닙니다. 그런데도 뭔가 복잡하고 심란하게 하여 깊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이야기입니다.

 

정말로, 인간은 이중적입니까?

아니면, 이 세상의 인간들은 이중적인 인간과 그렇지 않은 인간들로 이루어져 있는 것입니까?

지킬 박사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나의 가장 큰 단점은 쾌락을 탐하는 성향이었다. 쾌락은 많은 사람을 행복하게 하지만, 고고한 자긍심으로 대중들 앞에서 철저하게 근엄한 모습을 보이고 싶다는 오만한 욕망을 가진 내게 쾌락은 양립하기 어려운 것이었다."(105)

 

"나는 내가 스스로 세운 고귀한 가치관에 따라 판단했고 거의 병적인 수치심으로 내 부조리를 감추었다."(105)

 

"…… 그 진실이란, 인간은 진정 하나가 아니라 둘이라는 것이다."(106)

 

로버트 미갤이라는 사람이 쓴 이 소설의 서문과 '지킬 박사의 실험과 하이드로의 변신에 관한 과학적 배경 문헌'이라는 글에는 인간의 이러한 면에 관한 불편한 표현들이 많이 보였습니다.

포스트 다윈주의 사고방식에 따르면 하이드는 정신적 저급함이 육체적 표현으로 나타난 것이라고 볼 수 있다.(13)

 

하이드는 지킬 안에 있지만 다른 사람들 안에도 역시 존재할 것이다.(13)

 

스티븐슨(이 책의 저자)의 친구인 존 에딩턴 시먼즈는 스티븐슨의 이야기가 '물리학과 생물학 분야의 과학'에서 발생하는 '개인의 자유를 가치 없는 것으로 만들고 책임 의식을 약화시키는' 과정에 예술적으로 기여한 셈이라고 불평했다. 그리고 오스카 와일드의 비비안은 '지킬 박사의 변신은 마치 《란셋》에 나오는 글처럼 위험스럽게 읽힌다.'라고 했다.(247)

 

 

6

 

스티븐슨의 소설에서 지킬 안에 있었던 하이드는, 이 세상의 다른 사람들 안에도 존재하는 것입니까? 아니, 하이드 역시 지킬 박사의 인격적 요소를 지니고 있는 것입니까?

 

이 질문은 구체적인 대답을 듣고 싶은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고 대답하는 사람은 '마녀사냥'의 대상이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다른 이야기도 할 수 있습니다. 만약 실제로 그렇다고 하더라도 드러내놓고 "사실은 다 그런 것!"이라고 해버리면, "정신적으로 홀가분해졌다"고 하면서 "아닌 척하지 마! 다 그런 거야!" 할 사람이 많아질 것 아니겠습니까? 그러면 이 세상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입니다.

 

그런 생각을 하면 '괜히 읽었나?' 싶은 소설이지만, 그렇게 따지면 허구한 날 신문과 방송에 등장하는 온갖 잡다한 일들 중에도 그런 일은 얼마나 많습니까?

판사들은 우리에게 일일이 설명해주지는 않지만 참으로 많은 생각을 하고 있을 것 같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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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1850년 에든버러 출생. 에든버러대학에 입학해 등대 엔지니어 교육을 받을 예정이었으나 몸이 약해 법률로 전공을 바꿈. 문학에 뜻을 두고 꾸준히 글을 썼으며 각종 잡지에 투고,여러 지역을 여행하며 문학인들 및 예술인들과도 교우. 1875년 법률가 자격을 획득했으나 변호사 개업은 하지 않음. 1876년 프랑스에서 열 살 연상의 미국 여성 패니 오즈번을 만나 사랑에 빠짐. 1878년 첫 여행기 『내륙의 여행』 출간. 모험추리소설 「자살클럽」을 비롯한 중단편소설 연재. 1879년 볃들고 돈 한 푼 없는 상태로 이민선을 타고 미국행을 결행. 1880년 오즈번과 결혼. 이후 가족과 함께 프랑스, 영국 등지를 요양, 여행하며 『보물섬』「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 같은 최대 인기를 얻은 소설들과 독특한 에세이들, 시집, 여행기 등 발표. 1887년 이후 남태평양 요트 여행을 하며 하와이, 호놀룰루, 사모아 등지에 머물면서『발란트래 경』『섬 밤의 여흥』 등 출간. 1894년 12월 3일, 장편소설 『허미스턴의 둑』을 집필하던 중 뇌출혈로 급작스럽게 사망. 사모아 바일리마 자택 뒷산에 묻힘.....『현대문학』2014년 12월호에서 옮김.
  2. 조선일보, 2014.4.12, A1면.
  3. 문화일보, 2014.4.9, 「'칠곡 계모' 말바꾸기에 모두가 당했다」 등 수많은 관련 기사 참조.
  4. 조선일보, 2014.3.12, 「검찰, 울산 계모에 사형 구형 '다시는 이런 일 생겨선 안돼」 등 수많은 관련 기사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