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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책 보기의 즐거움

가브리엘 루아 『데샹보거리』

by 답설재 2014. 5. 11.

가브리엘 루아 데샹보거리

이세진 옮김, 이상북스, 2009

 

 

 

 

 

 

 

 

 

 

 

 

  『내 생애의 아이들』 『세상 끝의 정원』 『그 겨울의 동화』를 쓴 캐나다 작가 가브리엘 루아가, 자신의 어린 시절을 이야기한 18편의 단편소설입니다.

  재미있습니다.

 

  세상의 온갖 것들을 알아가는 어린시절 이야기는, 그 어린시절이 기억의 저 아득한 곳에 묻혀버린 사람에게는 '그리움'에 관한 이야기이고, 그렇기 때문에라도 이런 이야기를 읽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령 '결혼'이라는 주제나 '허니문' '연애질' 같은 것은 이런 것입니다.

 

 

  "결혼은 하면 안 되는 거예요?"

  그러자 엄마는 어떨 때는 괜찮다고, 심지어 굉장히 좋은 결혼도 있다고 했다.

  "그런데 왜 어떻게든 조지아나 언니가 결혼하는 걸 막아야 해요?"

  "네 큰언니는 결혼하기에 너무 어려."

  "결혼은 늙어서 하는 거예요?"

  "그래도 너무 늙어서 하면 안 돼."

  그러고서 엄마는 말했다.

  "괜히 그런 생각으로 고민하지 마. 아직은 바로잡을 수 있어. 일이 잘 되도록 기도나 하렴."(60~61, 「결혼 방해작전」)

 

 

  "실제로 승객들은 춤을 추었지요. 하지만 타이타닉 호에 탄 커플들이 대부분 갓 결혼한 부부들이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선생님, 그들은 허니문이었다고요!"

  그때 마조리크 삼촌은 내 눈에 떠오른 궁금한 빛을 바로 읽었다. 삼촌은 '허니문'이 무엇인지 가르쳐주었다.

  "결혼한 지 얼마 안 되어서 서로 아주 사랑하는 시절이야. 모든 게 아름답게 보이는……"

  "그럼 나중에는 덜 아름다워 보이나요?"

  사람들은 웃음을 터트렸지만 어색해했고 서로 눈치를 보는 것이 별로 정직해 보이지 않았다. 엥리 아저씨는 화가 나고 침울해 보였다. 마조리크 삼촌만 별로 안색이 바뀌지 않았다. 삼촌은 내게 부부가 서로 떨어져서 못살 것 같은 때가 허니문이라고, 시도 때도 없이 입을 맞추는 때라고 다시 설명해주었다.

  그러자 엄마가 삼촌에게 눈치를 주었다. 삼촌은…(후략)…(96~97, 「타이타닉 호」)

 

 

  그는 나에게 '나의 사랑하는 아이'라든가 '나의 다정한 소녀여' 등으로 운을 떼는 아름다운 편지들을 보냈다. 나도 그에 질세라 '나의 친애하는 이에게' 운운하며 답장을 보냈다. 엄마는 어느 날 내 방에서 내가 글씨 연습을 하던 연습장을 발견했는데, 거기에는 빌헬름을 향한 나의 정념이 시간이나 잔혹한 장벽으로도 꺾을 수 없다고 씌여 있었단다…… 엄마가 내 책상에 펼쳐져 있던 테니슨의 책을 봤더라면 연습장의 글이 그 책에서 베껴 쓴 것임을 금세 알았겠지만 엄마는 제정신을 차리기에는 너무 화가 나 있었다. 나는 빌헬름에게 편지 쓰기를 금지당했고, 행여 그의 편지가 엄마의 삼엄한 경비를 뚫고 내게까지 도달하더라도 절대 읽어서는 안 된다고, 그에 대한 생각조차 하지 말라고 엄마는 말했다. 내게 허락된 일이라고는 내 마음이 내켰을 때 그를 위해 기도를 올리는 것뿐이었다. (242~243, 「빌헬름」)

 

 

 

 

 

 

  그 어머니는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여성이라는 느낌입니다.

 

 

  우리는 다리 난간에 기대어 한참동안 갈매기들을 구경했다. 그러다 갑자기 엄마가 말했다. 엄마도 마음이 내키면 언제고 가고 싶은 데로 갈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이다. 엄마는 아직도 자유롭게 살고 싶다고 했다. 사람의 마음속에서 가장 마지막에야 사라지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자유를 향한 욕망일 거라고 했다. 숱한 불행과 아픔도 자유를 추구하는 엄마의 기질을 마르고 닳게 하지는 못했다고…… (103, 「집 나온 여자들」)

 

 

  그 엄마가 "폭삭 늙기 전에" 멀리 떠나보고 싶어서, 마흔아홉 살이 되었지만 "아직 좋은 세월이 남았다"는 사실을 확인이라도 하듯, 직장에서 진을 다 빼고 거의 모든 의욕을 상실한 채 귀가하는 남편, 집에서 이렇게 지내는 "우리 식구들이 얼마나 복 터진 사람들인지 스스로 알고 있나 모르겠다"는 남편, 머리 위에 번듯한 지붕이 있고, 먹을 게 있고, 가족간에 화목하므로 "자기들이 팔자 좋다는 걸 알기나 하는지 정말 궁금하다"는 남편 몰래 어린 딸(話者) 크리스틴을 데리고 호기롭게 가출을 해버립니다.

 

 

  나는 광활한 캐나다를 발견했고, 대략 전 국토의 3분의 1은 지나갔지 싶다. 엄마도 캐나다가 아주 큰 나라라는 데 자부심을 느끼는 것 같았다. 엄마는 사실 상황만 따라줬다면 평생을 사람과 도시 구경으로 보낼 수도 있었을 거라고 나에게 고백했다. 자기는 진짜 유목민으로 살다 갈 수도 있었다고. 하지만 그랬더라면 참으로 불행한 일이었을 거라고 말이다. 엄마가 여행을 통해 얼마나 다시 젊어졌는지는 내 눈에도 보였다. 우리가 무엇을 보든, 거의 모든 것에 대해서 엄마의 눈빛은 섬광처럼 탁탁 튀었다. 작은 전나무, 물, 기찻길 따라 늘어선 바위―그 모든 것을 엄마는 애정을 품고 바라보았다. "세상은 참 매혹적이구나"라면서 말이다. 그래서 엄마에게 젊게 살 기회를 좀더 자주 허락하지 않은 아빠에게 약간의 앙심마저 생겼다. 나이든 여자가 꽃띠 아가씨로 돌아간 듯한 모습은 정말로 보기 좋았다. 내가 만약 남편이라면 아내의 그런 모습이 가장 보고 싶었을 것이다.(119, 「집 나온 여자들」)

 

 

 

 

 

 

  정작 꼭 이야기해 두어야 할 부분은 마지막 이야기입니다. 나머지는, 열여덟 편이 다 재미있다고만 덧붙이면 충분할 것입니다. "다 재미있다"는 것은, 아이의 눈으로 보면, 삼라만상에서 깊고 넓은 의미를 발견할 수 있으므로 이 세상은 재미있는 곳일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마지막 이야기(「밥벌이란」)는, 이 책은 단편집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하나의 이야기라는 것을 강조하고 싶은 것이 아니었을까, 이 이야기에서 어린시절과 그 어린시절의 교육이 사실은 얼마나 '소중하고 아름다운 것'인지, 그것을 충분히 강조하고 싶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싶었습니다.

 

  그렇다면, 한때 교사생활을 한 가브리엘 루아가 작가가 되어서도 그때  교사로서의 그 마음가짐을 잊지 않고 있었던 것, 이 소설을 통해 교육이란 소중한 것이라는 걸 강조해준 것에 대해 교육에 관심을 가진 이라면 누구라도 감사해야 할 일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전략)…

 

꼬마는 거의 얼음장이 되어 시뻘건 볼을 하고 교실에 도착했다. 급격한 온도 변화를 피하기 위해 나는 눈을 퍼서 아이들의 손을 문질러주었다. 뻣뻣해진 외투를 벗는 것도 도와주고 잠시 따뜻한 온풍구 위에서 몸을 녹이라고 했다. 그 다음에야 아이들은 읽기 책과 공책을 챙겨서 내 책상으로 왔다.

그날 아침에 그집 부모가 2마일이나 되는 눈 천지를 뚫고 학교에 가겠다는 아이들을 말리느라 어지간히 열이 뻗쳤었다는 이야기는 나중에 들었다.

그 아이들이 내 말은 잘 들었다.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는 아이들의 눈에는 완벽한 믿음이 있었다. 내가 이 세상은 적들이 들끓는다고, 그러니까 사람들을 미워하고 모든 나라 사람들을 원수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어도 그 애들은 내 말을 믿었을 것이다……

함께 있는 우리는 따뜻했다. 두 아이는 지난 시간에 배운 단어들을 좔좔 읊었다. 우리 바로 옆에서 몰아치는 돌풍은 이해받지 못한 채 질질 울며 문짝에 발길질하는 아이 같았다. 나는 완전히 알지도 못한 채 ―우리가 느끼는 기쁨은 가끔 우리에게 확실히 다가오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린다― 내 생애에서 가장 귀한 행복 하나를 느끼고 있었다. 온 세상이 한 아이 아니었던가? 그때는 하루의 아침이 아니었던가…… (307~308, 「밥벌이란」)

 

 

   

블로그 <삶의 재미>에 실린 글

 

 

 

 

 

 

 

 

캐나다의 헬렌이 보여준 사스카추엔 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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