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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책 보기의 즐거움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안데르센 동화집』

by 답설재 2014. 3. 7.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안데르센 동화집』

이옥용 옮김, 보물창고, 2011

 

 

 

 

  

 

  난생 처음으로 동화책 한 권을 읽었습니다. 마침내 『안데르센 동화집』을 읽은 것입니다. 41년간 아이들을 가르치거나 가르치는 일에 관련되는 일을 하면서 그 정도의(혹은 그렇게 유명한) 책은 당연히 읽은 척하며 지냈습니다. 그걸 눈치챈 아이나 동료는 거의 없을 것입니다.

  그게 다행일는지…… 이젠 누가 물으면 일부러 나서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 무표정하게 있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읽은 표시를 나타내면 '과연!' 하지 않겠습니까?

 

 

 

 

  문장은 그야말로 99.9%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99.9%라는 건 '이해하지 못할 문장이 없었다', '혹 모르고 지나갔을지는 모르지만 일단 눈에 띄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그렇지만 '숨은 뜻' 같은 건 그렇지 않습니다. 가령 「바보 한스」 같으면, 즉 아주 똑똑해서 라틴어 사전을 통째로 줄줄 외우고 그 도시의 3년치 신문도 '따르르' 외우는 큰형, 조합의 법조항을 모조리 익히고 조합장이 알아야 하는 것까지 훤히 알고 있는 작은형을 물리치고 공주와 결혼한 「바보 한스」 이야기를 보면, 한스가 공주님의 질문에 대답도 잘하고, 조합장을 모욕해서 공주님의 마음에 들게 되었는데, 이야기는 이렇게 끝나고 있습니다.

 

  그래서 바보 한스는 임금님이 되었어요. 아내와 왕관도 생기고, 옥좌에도 앉았지요. 이 이야기는 조합장이 만드는 신문에 실린 내용이에요. 그런데 그 조합장은 믿을 수 없는 사람이랍니다.

 

  이런 문장의 의미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 걸 보면, 『안데르센 동화집』을 지금 읽은 것도 너무 빨랐던 것일까요? 한 서너 해 더 있다가 읽으면 그때는 잘 이해할 수 있을 걸 그랬을까요? 아니면, 누구에게, 가령 만 세 살을 갓 넘긴 내 손녀에게 그게 무슨 뜻인지 물어보는 것이 더 나을까요? 그애는 오늘 제 할머니가 지독한 감기가 물러가지 않아서 만날 수가 없다고 했더니 글쎄, 이러더랍니다. "더 쓴 약을 많이 먹고, 할아버지와 오순도순 살면 되잖아요."

  이런 얘기는 어떻습니까?(239, 241~242쪽, 「진짜라니까요」).

 

  "그 얘기 들었어? 누군지 이름은 대지 않을게. 하지만 모양내려고 깃을 고르다 깃털을 뽑은 암탉이 하나 있어! 내가 만일 수탉이라면, 그런 암탉은 경멸할 거야!"

 

  이 대화에서 핵심은 어떤 내용일 것 같습니까? 저는 당연한 듯 어떤 암탉이 요즘 사람들이 양악 수술하듯 깃털 뽑은 것을 비난하는 이야기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이런 건 반전(反轉)이 아니고 착각이라고 해야 하겠지요. 그 대화는 돌고 돌아서 이렇게 발전하게 됩니다.

 

  "암탉 다섯이 자기 몸의 깃털을 몽땅 뽑았어. 수탉을 사랑했지만 이루어질 수 없어 괴로워하는 그 다섯 중 누가 가장 야위었는지를 보여 주기 위해서였지. 깃털을 다 뽑은 다음엔 서로 피가 나도록 콕콕 쪼다가 결국 모두 쓰러져 죽었어. 자기네 집안의 수치고 치욕이요, 주인에게는 큰 손실이지."

 

 

 

 

  참 우스운 것이 있습니다. 어리석은 생각을 하는 것은 서양이나 동양이나 마찬가지일 뿐만 아니라 옛날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라는 사실입니다. 가령 「황제님의 새 옷」(벌거벗은 임금님)을 보면, 신하들이나 백성들이 이렇게 중얼거리고 말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난 바보 아닌데! 하지만 내 눈에 아무 것도 안 보인다는 건 내가 신하의 자격이 없다는 말이잖아. 말도 안 돼. 하지만 사람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해야지!"

  "폐하, 옷감이 이루 말할 수 없이 아름답습니다!"

  "세상에! 황제님의 새 옷은 정말 아름답네! 연미복 자락은 또 어쩜 저렇게 멋질까! 연미복 자락이 기가 막히게 잘 어울리는걸!"

 

  말하자면 동양이나 서양이나 옛날이나 지금이나 정신 못차리는 인간들은 늘 있다는 뜻입니다.

  이번에는 돈의 위력에 관한 부분을 옮겨보겠습니다(149쪽, 「부시통」).

 

  병사는 매일같이 돈을 쓰기만 하고 한 푼도 벌어들이지는 않았기 때문에 결국에는 달랑 2실링밖에 남지 않았어요. 그래서 그동안 묵었던 멋진 방들에서 나와 지붕 바로 밑에 있는 코딱지만 한 방으로 옮겨야 했어요. 장화도 손수 닦고, 짜깁기 바늘로 장화도 직접 꿰매야 했어요. 친구들도 한 명도 찾아오지 않았어요. 계단을 하염없이 걸어 올라가야 했거든요.

 

  안데르센이 이 동화집의 열일곱 편 동화를 통해서 이야기하고자 한 것들을 이런 식으로 늘어놓으려면 아예 이 동화집의 모든 동화를 그대로 옮겨 놓는 것이 더 좋을 테니까 포기하겠습니다.

 

 

 

 

  이 책을 읽는 동안, 전철에서는 사람들이 더러 쳐다보기도 했지만 참 행복했습니다. '행복'이란 건 그런 게 아니고, 어렵고 복잡하고 아주 다이나믹한 뜻을 가진 단어로 사용해야 한다면 "그냥 기분이 좋았다"고 해 두겠습니다.

  가령 이런 문장을 읽는데 어떻게 기분이 좋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52쪽, 「꼬마 엄지둥이」)

 

  그곳에는 커다랗고 하얀 대리석 기둥 하나가 세 조각으로 쪼개진 채 땅바닥에 쓰러져 있었어요. 기둥 조각들 사이사이에는 아주 예쁜 하얀 꽃들이 자라고 있었어요. 제비는 엄지둥이와 함께 그리로 날아가 한 넓은 꽃잎 위에 엄지둥이를 내려놓았어요. 엄지둥이는 소스라치게 놀랐어요! 꽃 한가운데에는 한 작은 남자가 앉아 있지 뭐예요. 그런데 그 남자는 새하얗고 마치 유리로 된 것처럼 투명했어요. 그 남자는 머리에 아주 예쁜 황금 관을 쓰고 있었고, 양어깨에는 매우 아름다운 날개를 달고 있었어요. 키는 엄지둥이만 했고요. 그 남자는 바로 꽃의 천사였어요. 모든 꽃 속에는 그런 작은 남자나 작은 여자가 한 명씩 살고 있었어요. 하지만 이 작은 남자는 그들 모두를 다스리는 임금님이었어요.

 

  그렇지만 이 동화들이 꿈결처럼 아늑하고 즐겁고 행복한 이야기들인 것은 아닙니다. 저 표지만 해도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얘기입니다(118~119쪽, 「막내 인어 공주」).

 

  태양이 바다 위를 비출 즈음, 막내 인어 공주는 눈을 떴어요. 막내 인어 공주는 몸이 바짝바짝 타 들어가는 것만 같은 통증을 느꼈어요. 그런데 눈앞에 그 아름다운 젊은 왕자가 서 있었어요. 왕자가 포도알처럼 검은 눈으로 막내 인어 공주를 뚫어지게 바라보자, 막내 인어 공주는 눈을 내리깔았어요. 그러자 자신의 물고기 꼬리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인간 소녀만이 가질 수 있는 눈부시게 아름다운 하얀 두 다리가 보였지요. 하지만 막내 인어 공주는 옷을 하나도 입고 있지 않았어요. 막내 인어 공주는 숱이 많은 자신의 긴 머리칼로 몸을 가렸어요.

 

  막내 인어 공주가 어떻게 해서 그 두 다리를 얻었는지 기억하십니까? 마녀에게서. 그 마녀에게 아름다운 목소리까지 빼앗겨 벙어리가 되면서까지(115쪽, 「막내 인어 공주」).

 

  마녀가 말했어요.

  "때 맞춰서 마침 잘 왔다. 내일 아침에 해가 뜨면 난 너를 도와줄 수가 없어. 꼬박 일 년을 기다려야 하지. 물약을 한 병 만들어 줄게. 해가 뜨기 전에 뭍으로 헤엄쳐 가서 물가에 앉아 물약을 마셔야 해. 그러면 네 꼬리는 갈라지고 오그라들어 사람들이 예쁜 다리라고 부르는 걸로 변할 거야. 너를 보는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네들이 본 사람들 중에서 네가 가장 아름다운 사람이라고 할 거야! 네 발걸음은 나비가 살랑살랑 나는 것처럼 사뿐사뿐할 거야. 그 어떤 무용수도 너처럼 걷지는 못하지. 하지만 네가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너는 날이 시퍼런 칼날 위를 걸어 피가 흐르는 듯한 기분이 들 거야. 그래도 네가 이 모든 걸 참겠다면 도와주지!"

  "참을게요."

 

  이 얘기 읽으면서 요즈음 저 인어 아가씨처럼 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참 많고, 그러니까 그 사람들은 저처럼 어떤 고통을 겪게 되는지, 아니면 돈을 주니까 아무런 고통도 없고 멀쩡하게 지낼 수 있는지, 쓰잘데기 없는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안데르센은 이런 작가였답니다(325~327쪽, 「작품 해설」 중에서).

 

  보잘것없는 것들, 힘없고 가진 것 없고 억눌리고 버림받고 신체적으로 결함이 있는 것들, 이들은 안데르센에게는 낯설지 않은 존재들이었다. 그는 가난한 유년시절을 보냈고, 정서적으로는 불안정한 가정환경에서 성장했으며, 작가의 길을 걷게 된 뒤에도 사람들로부터 이런저런 이유로 비난을 받았다. 그리고 스스로도 열등감에 시달렸기 때문에 그는 그러한 인물들을 누구보다 잘 이해할 수 있었다.

 

  작가가 된 뒤에도 비난을 받았다는 것에 대해서는 이런 사례가 소개됩니다. "어린이들에게 부적당하다는 지적이 독일과 덴마크에서 수차례 있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답니다.

 

  "나의 동화는 어른과 어린이 모두를 위한 것이다. 어린이들은 부차적인 것을 이해하고, 어른들은 전체 맥락을 이해한다."

 

  글쎄요, 나도 어른이라면 나는 군데군데에서 부차적인 것이나 이해하고 어린이들이야말로 전체 맥락을 이해할 수 있는 것 아닌가, 동화란 오히려 그런 것이 아닌가 싶어질 때가 있었습니다.

 

 

 

『주석 달린 안데르센 동화집』…

'언젠가 한번 읽어봤으면… 도대체 어떤 주석이 달렸을까?'

이 책 소개를 볼 때마다 생각합니다.

(『현대문학』 2014년 3월호, 24쪽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