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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책 보기의 즐거움

버트런드 러셀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아왔는가』

by 답설재 2014. 7. 20.

 버트런드 러셀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아왔는가

 최혁순 옮김, 문예출판사 2013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아왔는가?   버트런드 러셀은 이렇게 정리했다.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아왔는가

 

 

단순하긴 하지만 압도적으로 강렬한 세 가지 열정이 내 생애를 지배해왔다. 사랑에 대한 갈망과 지식의 탐구, 그리고 인류가 겪는 고통에 대한 참을 수 없는 연민이 바로 그것이다. 이런 열정이 마치 거센 바람처럼 제멋대로 나를 몰고 다니면서 번민의 깊은 바다를 이리저리 헤매게 했고 절망의 극한에까지 이르게 했다.

 

내가 사랑을 추구해온 첫 번째 이유는 그것이 황홀한 열락을 가져다주기 때문이다. 몇 시간에 불과한 이 즐거움을 위해 내 남은 인생 전부를 희생하려 했던 적이 종종 있었을 만큼 사랑의 열락은 대단한 것이다. 내가 사랑을 추구해온 두 번째 이유는 그것이 외로움을 덜어주기 때문이다. 두려움에 떨고 있는 우리의 의식이 세상의 끝자락을 넘어, 바닥이 보이지 않는 차디찬 죽음의 심연을 들여다볼 때 느끼게 되는 그 외로움 말이다. 내가 사랑을 추구해온 마지막 이유는 누군가와 사랑으로 결합될 때, 이 세상의 성자와 시인 들이 상상해온 천국의 예고편을 마치 신비로운 축소판처럼 보았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내가 찾던 것이다. 인간의 삶에 비해서는 과분할 정도로 좋아 보일지도 모르는 이것을 나는 마침내 찾아냈다.

 

이와 동등한 열정으로 나는 지식을 추구해왔다. 인간의 마음을 이해하고 싶었다. 별이 빛나는 이유를 이해하고 싶었다. 그리고 나는 숫자라는 질서가 사물의 끊임없는 변화를 지배하게 해주는 피타고라스적인 힘을 파악하려고 노력해왔다. 나는 이 분야에서 대단하지는 않지만 약간의 성취를 이루었다.

 

사랑과 지식이 내게 허용되는 한, 그것들은 나를 천상으로 인도했다. 그러나 인간에 대한 연민은 언제나 나를 지상으로 되돌아오게 했다. 고통에 찬 사람들의 비명 소리가 내 가슴속에 메아리치고 있다. 굶주리는 아이들, 압제자들에게 고문당하는 희생자들, 자식들에게 혐오스러운 짐이 되어버린 의지할 곳 없는 노인들, 그리고 고독과 빈곤과 고통으로 가득한 전 세계는 인간의 삶이 마땅히 지향해야 할 이상을 비웃고 있다. 나는 이런 사회악의 폐해가 완화되기를 간절히 소망하지만, 그것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래서 나 또한 고통스럽다. 이것이 내 생애였다. 나는 이런 삶이 살 만한 가치가 있었다는 것을 발견했으며, 만약에 기회가 주어진다면 기꺼이 이런 삶을 다시 한 번 살 것이다.

 

 

    Ⅱ

 

 

'내게는 어떤 열정이 있었는가?'   '내게도 있었는가?'  '어디에?'  삶의 초라함, 참담함으로 절망을 느낀다. 쓸쓸하다.

 

황홀한 열락도 열락이지만, "두려움에 떨고 있는 우리의 의식이 세상의 끝자락을 넘어, 바닥이 보이지 않는 차디찬 죽음의 심연을 들여다볼 때 느끼게 되는 그 외로움"을, 사랑이 덜어주더라고 했다.  그뿐 아니다.

 

"이것이 내 생애였다!"는 선언!  그리고 그가 살아온 길에서 발견한 가치를 들어 기회가 주어지면 기꺼이 그 삶을 다시 한 번 살 수 있다는 자신감.  그의 이 선언 앞에서라면 "내가 만약 다시 태어난다면……"이라는 나의 가정은 차라리 없었던 일이면 좋을 것이다. "왜?" "뭘 하려고?" 답할 만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약이 오른다. 내가 다시 찾아오지 못할 세상이라면, 러셀의 저 열정과 자신감은 돈이나 권력, 욕망 같은 것으로는 성취할 수 없을 것이 분명한 사실이 다행스럽다. 그런 것으로도 해결할 수 있다면 억울해할 사람이 좋아할 사람보다 많을 것 같고, 나도 그 중 한 사람이다.

 

 

 

 

재미있었다. 이런 책이 자꾸 눈에 띌 것이라는 예측을 하지 못한 것은 아니지만 그게 부담스럽고 당혹감을 느끼게 한다. 이렇게 해서 언제 마무리될 것인지…… 자주 그것을 의식하게 된다.

 

재미있다고 했지만, 술술 읽히는 부분에서 그랬다.

읽은 곳을 다시 읽게 되고, 따분해서 덮어 두었다가 다시 펴봐도 도무지 무슨 내용인지 알 수가 없는 부분에서는 앞으로 읽어 나갈 수가 없게 된다. 책장을 넘기는 속도가 한없이 느려진다.

 

'내가 이렇게 우둔한가!'   '더 집중해서 읽어야 하는 걸까?'   전에는 주로 그렇게 생각했는데 그 생각은 많이 바뀌었다. 심지어 이런 생각도 한다.   '번역을 잘못한 것 아닐까? 좀 소홀했던 부분도 있고, 심지어 자신도 잘 이해하지 못한 부분에서는 문장이라도 되도록 하자는 생각을 할 수도 있을 것 아닌가.'   '이렇게 세 번 네 번, 그렇게 해서도 의미를 파악하지 못했던 부분을 다시, 또 다시, 읽고 또 읽어도 의미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면 그 시간과 노력과 짜증스러움이 얼마만큼인가…… 평생을 이렇게 보냈다면, 원서를 읽지 못해서 입은 손실(?)이 얼마만큼인가…… 그걸 다 모으면 내 생애의 얼마만큼을 차지한 것일까……'

 

좋은 책을 두고 공연한 소리를 쓰고 있는 것 같다. 이 책은 어떤 책을 번역한 것인지를 찾을 수가 없어서 공연한 투정을 늘어놓게 되었다.

 

 

 

 

 

압도되어 열심히 읽었다. 비록 철학을 공부하지 못한 강한 후회가 이어지고 있었다.

 

 

차례

 

1부 자전적 성찰

-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아왔는가

- 추억의 초상

- 80회 생일에 즈음하여

- 나는 왜 감옥에 갔는가

- 우리는 어떻게 늙어가야 하는가

 

2부 행복

- 무엇이 인간을 불행하게 하는가

- 아직도 행복은 가능한가

- 행복에 이르는 길

- 훌륭한 삶이란 무엇인가

 

3부 종교

-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

- 어느 신학자의 악몽

- 종교는 우리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가

- 나는 왜 불가지론자인가

 

4부 학문

- 나는 왜 철학을 공부하게 되었는가

- 나는 어떻게 글을 쓰는가

- 우리 시대를 위한 철학

- 지식과 지혜

 

5부 정치

- 정치적으로 중요한 욕망들

- 명료한 사유를 위한 변론

- 인류에게 미래가 있는가

 

프롤로그 혹은 에필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