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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책 보기의 즐거움

안동림 『이 한 장의 명반名盤』과 그만두게 된 숙제

by 답설재 2014. 7. 16.

그만두게 된 숙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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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림 『이 한 장의 명반名盤(현암사, 1997)

 

 

 

 

 

 

 

 

 

1997년, 정부중앙청사에서 죽자사자 일만 하며 지낼 때, 그러니까 살아간다는 것이 일하는 것뿐일 때 사놓은 책입니다. 몇 군데 붙여 놓은 포스트잇이 그대로 있는 걸 봤습니다. 그대로 붙어서 옛 생각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이런 음반은 언젠가 좀 조용해지면 제대로 들어봐야지.'

'우선 아내에게 그럴 듯한 오디오가 필요하다고 해야겠지? 정색을 하고서 이제 책 대신 오디오라고 말하면 되겠지?'

쑥스럽지만 이곳저곳 그런 생각이 포스트잇의 모습으로 붙어 있습니다.

둘째가 소리도 제대로 나지 않는 구형 오디오를 가져가겠다고 했을 때 선뜻 그렇게 하라고 한 것도 다 그런 수작을 부릴 생각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1,550페이지 정도여서 폼도 나지만, 목차만 봐도 기분이 좋아집니다.

몬테베르디 「성모 마리아의 저녁 기도」로 시작되는 '제1부 이 한 장의 명반'

『갈리-쿠르치 애창곡집』으로 시작되는 '제2부 잊지 못할 명반, 듣고 싶은 명연주'

모짜르트 「휘가로의 결혼」으로 시작되는 '제3부 오페라, 또 하나의 인생 무대'

 

거기에다 부록 '음악사 속의 명곡 명반' '이 책을 쓰며 도움이 된 책들'은 물론, '찾아보기', 그 찾아보기에 질서정연하게 정리되어 있는 '작곡가, 곡목, 연주가'들의 이름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정말이지 세월가는 줄 모릅니다. 30분이 순식간이고, 걸핏하면 한 시간이 지나갑니다. '언젠가 좀 조용해지면'이라고 생각한 것이 굳이 시간의 여유가 아니었다는 걸 깨닫게 됩니다.

 

 

 

 

 

 

그러다가 며칠 전 신문의 인물란에서 이런 기사를 봤습니다. 「'이 한 장의 名盤' 안동림 교수 별세」.

대수롭게 여기지는 않았습니다. 이 책의 저자가 생존해 있었다는 것을 모르긴 했지만, 그게 궁금했을 아무런 까닭이 없었고, 그걸 알고 있을 만큼 음악에 관심을 가진 것도 아니었습니다. '아, 생존 인물이었단 말이지?'

 

그렇게 며칠이 지나가자 희한하게도 '이제 숙제는 그만두는 게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오디오는 뭘……'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습니다. 그걸 갖추어 놓고 똑바로 앉아서 한 곡 한 곡 듣겠다는 생각은 처음부터 무리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새벽에 잠이 깨며 돌연 또 한 가지 생각을 했습니다. 그 숙제에 대해, 그 숙제를 하지 않은 채 이대로 지나가는 것에 대해 갖게 되는 허전함, 섭섭함 같은 것이었습니다.

뭐랄까…… 이런 것입니다. 숙제를 하진 않고, '해야 한다!'고 몇십 년을 벼루기만 했는데, 어느날 갑자기 그 숙제를 낸 담임선생님이 전근을 가시면서 후임 선생님께 그 숙제를 내놓았다는 것조차 알려주지 않은 것 같다고나 할까, 그러므로 아무래도 그냥 지나갈 수는 없겠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정리하자는 생각도 했습니다. 숙제를 낸 이는 저승으로 가고 없어 좀 막막한 점이 없지 않지만, 아주 쉽고 간단한 해결 방안을 찾은 것입니다. 지금은 거의 사라져간, 화투장보다 별로 크지도 않은 트랜지스터 라디오가 그것입니다.

아, 나의 오디오 inkel IR-15. 보잘것없지만 이름은 거창한 inkel IR-15

 

 

 

아주 정교하게 움직이지 않으면 주파수 맞추기도 여간 어려운 게 아닌 소형이고, 게다가 고물이지만, 지금 살고 있는 이곳은 예전의 그 시골과 달라서 제법 청아한 소리를 내어주는 그 라디오로도 FM을 잘 들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 모릅니다.

그 라디오는 손녀가 겨우 한두 단어로 말을 시작할 때 함께 가지고 놀던 장난감이었는데, 어떻게 만들었는지 그 아이가 수없이 떨어뜨렸는데도 여전히 건재하고 있습니다.

 

다행일 수도 있겠다 싶은 점도 있습니다. 그 FM의 여러 가지 프로그램을 알려주는 음악(시그널 뮤직)은, 모두 예전에 그 시골에서 잡음과 함께 듣던 바로 그것이 지금도 그대로 사용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어서, 이 부탁이 이루어질 수 있다면 "내가 많이 아파서 도저히 일어날 수 없게 되었을 때도 그 FM을 들려주기를 바란다"는 말을 누군가에게 꼭 해두고 싶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런 자리에서조차도 얼마쯤 위안을 받을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입니다.

 

저 안동림 선생도 『이 한 장의 명반』 머리말을 이렇게 시작했습니다.

 

어쩌다 레코드 음악 애호가를 만나 인사를 나눈다. 그러면 으레 "무슨 오디오를 갖고 계십니까?"라는 질문이 날아든다. 내가 마란쯔 7이나 매킨토슈 또는 마크 레빈슨 같은 명기(名器)를 못 가졌기 때문이 아니라, 어차피 연주회에서 듣는 생생한 음악이 아닌 레코드 재생의 한정된 음량의 음악을 들을 수밖에 없다면, 결국은 내 몸이 궁극적으로 음악을 듣는 기계를 면할 길이 없다면, 너무 오디오에만 연연할 필요가 어디 있겠는가!

 

 

 

책 머리에 그렇게 쓴 그 '담임선생님'은 이제 보니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웅장한' 분이었습니다. 오늘 이 글을 쓰려고 그 신문기사를 찾아 차근차근 읽어본 것입니다(조선일보, 2014. 7. 11., A23)

 

영문학자, 음악평론가, 소설가 등으로 영역을 넘나들며 활동했던 문화인사 안동림(82) 전 청주대 영문학과 교수가 지난 1일 별세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안씨는 '클래식 음악의 교과서'라고 불리는 베스트셀러 '이 한 장의 명반' 시리즈의 저자로 유명하다.

…(중략)…

1932년 평남 숙천생인 안씨는 한국전쟁 때 단신으로 피란 왔다. 클래식 음반이 제대로 유통되지 않던 시절 미군 PX에서 나온 음반을 사 모으고 음악 잡지를 탐독해갔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를 전공한 영문학자였지만, 고전 번역, 음악 평론, 출판 기획 등 전방위에서 활동해 '우리 시대의 마지막 르네상스인'으로 불리기도 했다. 최근에는 국내 최초로 '장자'를 완역하기도 했다.

…(후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