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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알베르 카뮈14

알베르 카뮈 · 장 그르니에 《카뮈 ­­­- 그르니에 서한집》 알베르 카뮈·장 그르니에 《카뮈 ­­­- 그르니에 서한집》김화영 옮김, 책세상 2012­      2012년에 구입해 놓았던 책이다. 보관할 책과 버릴 책으로 구분해서 과감하게 버리기로 하니까 더러 섭섭하기도 하고 시원하기도 한데, 버리는 데 재미가 붙으니까 덜 읽었어도 '버릴까?' 싶을 때가 있다. 카뮈와 그르니에가 주고받은 235편의 이 서한집도 이미 '절판'이어서 덩달아 시시한 느낌을 받았을까, 여남은 편 읽고 '그만 읽고 버릴까?' 했는데 큰일 날 뻔했다. 읽어나갈수록 재미가 있어서 거의 단숨에 읽었다. 그르니에와 카뮈는 '돈독한' 관계였다. '돈독한'보다는 '애절한'이 낫겠다. 스승과 제자로 만나서 카뮈가 노벨문학상을 받고 교통사고로 죽을 때까지 그 관계를 이어갔다. 그들의 관계는 점점 더 깊어.. 2024. 11. 20.
지금 세상이 추구하고 희망하는 것 하이네의 어떤 문장을 읽게 되었는데 그 말이 일깨우는 엄청난 예감에 몸서리가 쳐졌습니다. "지금 이 세계가 추구하고 희망하는 것이 내 마음과는 아무 상관 없는 것이 되어버렸다." 그 말을 한 때는 1848년이었습니다!  알베르 카뮈가 장 그르니에에게 보낸 편지에 들어 있는 문장이다(《카뮈-그르니에 서한집》205). '세계'를 '세상'으로 바꿔서 읽어보았다.   "지금 이 세상이 추구하고 희망하는 것이 내 마음과는 아무 상관 없는 것이 되어버렸다." 2024. 11. 19.
"전에 알던 여자애들은..."(카뮈) 동기 모임에 나가지 못하면 누군가가 사연과 함께 사진을 보낸다. 면면을 살펴보며 누가 누군지 확인하고 어슴푸레한 경우에는 사진을 확대해 보기도 하지만 이미 알아보지 못한 경우에는 확대해 봤자 별 수 없다. 고소를 금치 못하는 것은 학교 다닐 때 잘 나가던 애들도 함께 폭삭 늙었다는 것이다. 혈기왕성해서 팔팔 뛰던 녀석들이 하나같이 헙수룩한데, 억지로 미소를 짓거나 의젓하게 보이려고 애쓴 표정이 역력하여 더욱 가련해 보인다. 검은 머리는 분명 염색을 한 거지. 별 수 있나!여자들도 별 수 없는 건 마찬가지여서 지금도 매력을 느끼게 하는 사람은 찾을 수 없다. 고약한 일이다.아, 이럴 수가...... 이렇게 안타까운 일이 있나! 이럴 수가?'사진보기'에서 최종적으로 확인하는 건 결국 내 모습이다.그 사진에 .. 2024. 11. 17.
블로그 "독일, 흑림(Blackforest)에 살으리랏다"에서 한여름의 정원을 보고 아름다운 가곡이 흘러나올 것 같다고 했더니 숲지기님은 '시간과 장소 불문하고 쑥쑥 자라 있는 잡목들과 웃자란 잔디를 겨우겨우 제압했지만 제압한 것처럼 보일 뿐 머잖아 성큼 자라 있을 것'이라고 했다. 숲지기님은 워낙 바빠서 답글을 읽고 또 댓글 쓰는 걸 자제해 왔는데 이번에는 그 생각을 하지 못했다. '나도 그렇다.  온 힘을 다해 제압해 버리고 돌아서며 이내 굴복하고, 다시 제압하고 굴복하며 세월을 보낸다. 그게 참 힘들기도 하고 신선하기도 하다. 다른 일 같으면 벌써 던져버렸을 일인데 단 하나 의무처럼 남은 것 같은 이 일에만은 싫증이 나지 않는다'는 내용이었다.  잡초에 대한 숲지기님 생각에 몇 자 덧붙였지만 사실은.. 2024. 7. 7.
알베르 카뮈 《결혼·여름》 알베르 카뮈 《결혼·여름》 김화영 옮김, 책세상 2009 '이 좋은 혹은 아름다운 세상을 두고 어떻게 떠나나?'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알베르 카뮈는 에세이 「아리아드네의 돌」을 다음과 같이 시작했다. 오랑 사람들은, 임종 때 마지막 시선을 그 무엇으로도 바꿀 수 없는 이 대지에 던지며, "창문을 닫아요. 너무 아름다우니."라고 외쳤다는 저 플로베르의 친구를 닮은 것 같아 보인다. 오랑 사람들은 창문을 닫았고 그 속에 갇혔으며, 풍경을 내쫓아버렸다. 한데 르 푸아트뱅은 죽었고, 그 후에도 나날은 끊이지 않고 이어져왔다. 카뮈가 본 세상은 플로베르의 그 친구, 혹은 죽을 때 너무 아름다운 바깥을 내다보지 않으려고 창문을 닫으라고 하는 오랑 사람들의 세상이었다. 오랑은 저의 모래사막도 가졌다. 해변 말.. 2023. 9. 26.
알베르 까뮈 《시지프스의 신화》⑤ 알베르 까뮈/민희식 옮김, 《시지프스의 신화》⑤ 육문사 1993 중판 이 책 독후감을 찾는 학생들이 있습니다. 도와주고 싶어도 써줄 수는 없습니다. 이 책을 읽고나서 이야기하자고 할 수도 없을 것입니다. 책을 읽었다면 뭐 하려고 이런 블로그를 찾아오겠습니까? 한두 페이지를 읽다가 그만둘 사람이 적지 않을 책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에게 나는 이 책의 여러 장, 절 중에서 비교적 쉬운 마지막 장(마지막 절)이라도 읽어보면 좋겠다는 이야기는 하고 싶었습니다. 그 장(절)을 옮겨써보았습니다. 진한 부분은 '파란편지'가 그렇게 했습니다. 그래도 복잡하다고, 어렵다고, 무슨 얘기냐고 할 수도 있으니까 끝에 이 장(절)의 요약이라고 생각되는 부분을 발췌해서 붉은 글씨로 나타내어 보았습니다. 제1장 부조리한 추론(推論).. 2022. 4. 14.
알베르 카뮈(소설) 《이방인》 알베르 카뮈 《이방인》 ILLUST 호세 무뇨스 그림 |김화영 옮김 카뮈의 작품이어도 시큰둥했었는데(그는 "아, 됐어." 하겠지만) 다시 읽으며 흥미진진했다. 그러니까 나는 드디어 초보단계에 들어섰다. 할일이 싫어서 책을 읽었을 것이고, 이 책을 읽으며 그랬을 것이다. '별 희한한…….' 그러면서도 읽은 건 '부조리' '실존주의' 같은, 어렵고 설명해 줄 사람도 없는 그런 용어에 대한 호기심 때문이었다. 그는 첫 심문 때처럼 빙그레 웃으면서 그건 참 지당한 이유라고 말한 다음, "하기야 그건 대수롭지 않은 일입니다" 하고 덧붙였다. 그는 말을 뚝 그치고 나를 바라보더니, 갑자기 자세를 바로 하면서, "내가 알고 싶은 것은 당신입니다" 하고 빠른 어조로 말했다. 나는 그가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잘 알 수.. 2016. 9. 22.
장 그르니에 『카뮈를 추억하며』(Ⅰ) 장 그르니에 『카뮈를 추억하며』 이규현 옮김 , 민음사 2012 Ⅰ 나는 내가 맡은 젊은이들에게 가르칠 책임이 있다는 점보다는 오히려 그들 자신에 대해 가르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그들에게 애착을 갖게 되었다. 나의 책무에서 성공할 수 있는 방법은 이것뿐이라고 믿었다.(20) 카뮈를 가르친 그르니에의 교육관입니다. '의무적'으로 마지못해 하는 교육이 아니라, '책무성'을 넘어 그 교육을 자신의 '권한' '능력' '가능성' 같은 것으로 인식할 수 있었다는 것은 얼마나 멋진 일인지, 이러한 인식을 보다 일찍 가질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한 교육자가 될 수 있는지에 대해 생각합니다. 이렇게 덧붙이고 있습니다. "나의 책무에서 성공할 수 있는 방법은 이것뿐이라고 믿었다."그런 믿음을 가질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 2013. 8. 16.
프란츠 카프카 『황제의 전갈』 황제의 전갈 : 알베르 까뮈가 말하는 프란츠 카프카의 '상징' 카프카 / 황제의 전갈 황제가──그랬다는 것이다──그대에게, 일 개인에게, 비천한 신하, 황제의 태양 앞에서 가장 머나먼 곳으로 피한 보잘것없는 그림자에게, 바로 그런 그대에게 황제가 임종의 자리에서 한 가지 전갈을 보냈다. 황제는 사자(使者)를 침대 곁에 꿇어앉히고 전갈을 그의 귓속에 속삭여주었는데 그 일이 그에게는 워낙 중요해서 다시금 자기 귀에다 전갈을 되풀이하게끔 했다. 그는 머리를 끄덕여 했던 말의 착오 없음을 확인했다. 그리고 그의 임종을 지키는 모든 사람들 앞에서──장애가 되는 벽들을 허물고 넓고도 높은 만곡형 노천계단 위에 제국(帝國)의 강자들이 서열별로 서 있다──이 모든 사람들 앞에서 황제는 사자를 떠나보냈다. 사자는 즉시 .. 2012. 4. 3.
조제 렌지니 『카뮈의 마지막 날들』 영 옮김, 『카뮈의 마지막 날들』(뮤진트리, 2 카뮈는 잠시 돌이 되어버린 듯 꿈쩍도 하지 않고 입이 붙어버린 것처럼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 이런 침묵은 그를 편안하게 하면서도 한편 불안하게 했다. 밤마다 화석이 되어버리는 사막, 멈춰버린 모래시계의 침묵 속에 굳어버리는 사막의 밤처럼 한기가 느껴졌다. 담배를 한 모금 깊이 빨아들였다. 또다시 저만치 멀어져가는 어머니의 사진을 바라보았다.(32~33) 카뮈가 손뼉을 쳤다. 골이 들어갈 뻔한 상황에서 루르마랭 팀의 공격수 한 명이 멋지게 막아낸 것이다. 카뮈는 새 담배에 불을 붙였다. 언제나처럼 담배 연기를 최대한 길게 그리고 깊게 들이마셨다. 담배 연기는 찢어진 상처를 달래는 동시에 그 고통을 증가시켰다. 담배 연기를 들이마실 때마다 차가운 외피 .. 2011. 9. 21.
이성의 처참한 비극 …… 소크라테스는, 죽음을 선고받는 위협에 직면했을 때, 자기 자신이 갖고 있는 이 단 한 가지 우월성만을 인정한다. 즉, 자기가 알지 못하는 것을 자기가 안다고 주장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 무렵의 여러 세기에 걸쳐 가장 모범적인 삶과 사상이 무지(無知)의 당당한 고백으로 막을 내린 것이다. 그것을 잊어버리면서, 우리는 우리의 사내다움을 잊어버렸다. 우리가 택해 온 것들은, 오히려 위대함을 흉내내는 일, 첫째로 알렉산더, 그 다음에는 우리의 교과서 저자들이 더할나위 없는 어떤 비속함으로 우리에게 찬미하도록 가르치는 로마의 정복자들이다. 우리 역시, 정복하고, 국경들을 옮기고, 하늘과 땅을 지배해 왔다. 우리의 이성은 모든 것을 쫓아 버렸다. 마침내, 우리는 혼자서 한 사막을 지배하는 것으로 끝난다. 자.. 2011. 7. 1.
아름다움의 추방 우리는 아름다움을 추방해 왔지만, 그리스인들은 아름다움을 위해 무기를 들었다. 이것이 첫 번째 차이이나, 여기에는 어떤 내력이 있다. 그리스 사상은 언제나 한계의 개념 뒤에서 은신처를 구했다. 그리스 사상은, 신적인 것이든 이성적인 것이든 그 어떤 것도 극단으로 이끌고 가지 않았다. 그것은, 그리스 사상이 신적인 것도 이성적인 것도 부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스 사상은, 그늘과 빛을 조화시켜 가면서 모든 것을 고려에 넣었다. 반면에 우리 유럽은 완전성을 추구하다가 탈이 난 불균형의 자식이다. 유럽은, 자신이 찬양하지 않는 것은 무엇이나 부정하듯, 아름다움을 부정한다. 그리고 온갖 다양한 방법들을 통해서, 유럽은 단 한 가지만을 찬양하는데, 그것은 미래의 이성(理性)의 지배이다. 유럽은 미쳐서 영원한 .. 2011. 6.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