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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책 보기의 즐거움

알베르 카뮈 《결혼·여름》

by 답설재 2023. 9. 26.

알베르 카뮈 《결혼·여름》

김화영 옮김, 책세상 2009

 

 

 

 

 

 

'이 좋은 혹은 아름다운 세상을 두고 어떻게 떠나나?'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알베르 카뮈는 에세이 「아리아드네의 돌」을 다음과 같이 시작했다.

 

 

오랑 사람들은, 임종 때 마지막 시선을 그 무엇으로도 바꿀 수 없는 이 대지에 던지며, "창문을 닫아요. 너무 아름다우니."라고 외쳤다는 저 플로베르의 친구를 닮은 것 같아 보인다. 오랑 사람들은 창문을 닫았고 그 속에 갇혔으며, 풍경을 내쫓아버렸다. 한데 르 푸아트뱅은 죽었고, 그 후에도 나날은 끊이지 않고 이어져왔다.

 

 

카뮈가 본 세상은 플로베르의 그 친구, 혹은 죽을 때 너무 아름다운 바깥을 내다보지 않으려고 창문을 닫으라고 하는 오랑 사람들의 세상이었다.

 

 

오랑은 저의 모래사막도 가졌다. 해변 말이다. 성문만 나서면 나타나는 해변은 겨울과 봄에 밖에는 호젓하지 않다. 언덕들이 수선화로 뒤덮이고, 꽃 속의 앙상한  작은 별장들로 가득 차는 것은 이때다. 바다가 저 아래서 약간 으르렁거린다. 그런데도 벌써 해와 산들바람, 하얀 수선, 야생의 푸른 하늘 그 모두가 여름을, 그때 해변을 뒤덮는 금빛 젊음을, 모래 위에서의 긴 시간과 저녁의 갑작스러운 다사로움을 상상케 한다. 해마다 이 바닷가에서는 꽃 피는 아가씨들의 새로운 수확이 있다. 분명 그 꽃들에게는 한 철밖에는 없다. 이듬해에는, 지난여름만 해도 아직은 꽃몽우리처럼 몸매가 단단한 소녀에 불과했던 다른 뜨거운 꽃들이 대신 들어선다. 아침 열한 시면 언덕에서 내려오는, 울긋불긋한 천을 걸친 둥 만 뚱한 이 젊은 육체 모두가 온갖 색깔의 파도처럼 모래 위에 부서진다.

 

 

자연과 인간에 대한 카뮈의 노래는 아름답다. 그 자연과 인간의 아름다움이 바로 세상의 구원이기 때문일 것이다.

 

 

때때로 아랍인 양치기가 흑백 얼룩이 염소 떼를 모래언덕 꼭대기로 몰고 간다. 오랑 지방의 이런 해변에서는 여름 아침이 날마다 세계의 첫 아침 같이 보인다. 황혼은 날마다 이 세상 마지막 황혼인 양, 해질 무렵 온갖 빛깔을 짙게 물들이는 마지막 광선이 장엄한 임종을 알린다. 바다는 군청빛, 길은 엉긴 핏빛, 해변은 노란빛이다. 모두가 초록빛 태양과 함께 사라진다. 한 시간 후에는 언덕에 달빛이 흘러넘친다. 그러면 별들이 비 오듯 하는 광막한 밤이다. 소낙비가 가끔 밤을 가로질러 가고, 번개가 모래언덕을 끼고 달리며 하늘을 창백케 하고 모래 위와 사람의 눈자위 속에 오렌지빛 미광을 뿌린다.

 

 

그런 세상을 어떻게 받아들이나? 어떻게 두고 가나?

 

 

사막의 석가모니를 생각해 보자. 그는 여러 해 동안 그곳에서 하늘로 눈을 들고 꼼짝도 하지 않은 채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신들조차도 그 지혜와 그 돌의 운명을 부러워했었다. 내민 채로 굳어져버린 그의 두 손에 제비들이 둥지를 틀었다. 한데 어느 날 제비들은 먼 고장의 부름을 받고 날아가버렸다. 자기 속의 욕망과 의지와 영광과 고뇌를 다 죽일 수 있었던 그이도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꽃들이 바위에 돋아나게 되었다. 그렇다, 필요할 때에는 돌에 동의를 하자. 우리가 사람 얼굴들에 요구하는 그 비밀과 그 격정을 돌 또한 우리에게 줄 수 있다. 아마도 그런 것이 영속하지는 못할지 모른다. 하지만 영속할 수 있는 게 도대체 어디에 있는가? 얼굴들의 비밀은 사라지고 우리는 욕망의 사슬 속에 던져지고 만다. 설사 돌이 우리를 위해 인간의 마음 이상의 것을 해주지는 못한다손 치더라도 그에 못지않을 만큼은 해줄 수 있다.

'무(無)로 돌아가고져!' 이 절규가 몇천 년 동안 수백만 인간들을 욕망과 고뇌에 항거하여 일어서게 만들었다. 그들의 메아리가 여러 세기와 대양을 넘어 세계에서 가장 해묵은 바다 이곳까지 와서 가라앉는다. 그것은 오랑의 밀집한 낭떠러지들에 부딪쳐 아직도 나직이 반향하고 있다. 이 고장에서는 모든 사람이 저도 모르게 그 메아리의 충고를 따르고 있다. 물론 이건 거의 헛된 짓이나 다름없다. 허무는 절대나 마찬가지로 인간의 손이 미치지 않는 세계다. 그러나 우리는 장미꽃이나 인간의 고뇌가 가져다주는 영원한 표적들을 은총으로서 받아들이고 있으니, 대지가 우리에게 주는 잠에의 드문 유혹도 물리치질랑 말자. 한쪽도 딴 쪽만큼의 진리를 가졌다.

 

 

이 책의 에세이들을 두 번째 읽으면서도 전혀 와 닿지 않아서, 책 읽는 것 빼고는 딱히 '이것'이라고 할 만한 것이 없는 주제에 읽어도 읽어도 체득하지 못하는 걸 한탄했었다.

이번에도 애를 먹이고 모습을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