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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책 보기의 즐거움

사랑의 전시실·고통의 전시실

by 답설재 2023. 9. 13.

'박물관' 하면 '고려시대' '조선시대'... 같은 단어가 떠오르거나 성가신 단어 '13세기' '14세기'... 가 떠오른다.

"14세기면 언제야? 몇 년 전이야?"

 

알랭 드 보통은 우리가 지금까지 보아온 전시실을 무질서하다고 표현하면서 새로운 개념의 미술관을 제시하고 있다(《무신론자를 위한 종교》).

 

보다 유익한 목록 시스템이 있다면, 우리의 영혼의 관심사에 따라서 장르와 시대를 초월하여 미술 작품들을 한데 모을 수 있을 것이다. (......)

이 미술관을 걸어다니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가장 잘 잊어버리는, 그리고 동시에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 중에서도 가장 본질적이고 삶의 질을 향상시켜주는 중요한 것들을 체계적으로 만나는 경험이 될 것이다. (......)

미술의 목적을 존중하는 맥락에서 바라보면 현대 미술관의 외관상의 질서는 본질적으로 심각한 '무'질서와 다름없다. 작품을 제작된 지역이나 시기에 따라 분류하고, 가령 "베네치아 화파"와 "로마 화파", " 또는 "풍경화"와 "초상화" 같은 범주로 묶고, 또는 사진, 조각, 회화와 같은 장르에 따라서 구분하는 학문적 전통은 결국 세속 미술관이 정서적인 측면에서 진정한 일관성을 성취하지 못할 것이다.

 

그가 제안하는 미술관은 다음과 같다.

 

관건은 우리의 미술관을 위한 어젠다를 다시 작성해서, 미술이 일찍이 여러 세기 동안 신학의 필요를 따랐던 것처럼 이제는 심리학의 필요를 따를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큐레이터는 자기가 속한 미술관의 공간을 재창조함으로써, 그 공간을 과거의 창조물을 모아놓은 죽어 있는 도서관 이상의 장소로 만들어야 한다.

 

박물관은? 미술관 말고는 그렇게 할 곳이 없다는 이유부터 생각해 낼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알랭 드 보통이 런던 소재의 테이트 모던 미술관을 새로 구상해본 결과는 다음 그림과 같았다.

 

 

 

 

 

 

전시실 담당자들은 당연히 외면할 것 같다. 엄청나게 모험적이고 귀찮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실제에 들어가면 그만큼 재미있을 것 같기도 하다.

알랭 드 보통은 기업인들을 위한 제안을 덧붙였다.

 

기업은 피라미드의 하단을 따라 상점을 개장한다. 즉 우리가 잠자거나 먹거나 안전하게 존재하거나 움직이는 것을 도와주려고 고안된 서비스와 상품을 약간 향상시킬 수 있을 뿐이고, 자기실현이나 학습이나 사상이나 내적 성장을 향한 우리의 열망은 그냥 내버려두고 있다.

 

각종 전시실들은 훨씬 유명하고 친근한 곳으로 변모할 것이 분명하다. "자기실현이나 학습이나 사상이나 내적 성장"에 도움을 주고 해결해주는 기업, 가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