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 《노년에 관하여》
천병희 옮김, 숲 2016
2100년쯤 전, 키케로가 노년에 관한 불평을 반박했다.
불평은 다음과 같다.
⊙ 노년에는 큰일을 할 수 없다.
⊙ 노년에는 몸이 쇠약해진다.
⊙ 노년은 거의 모든 쾌락을 앗아간다.
⊙ 노년이 되면 죽을 날이 멀지 않다.
이렇게 반박한다.
⊙ 노년에도 정치 활동과 정신 활동은 물론 농사일을 할 수 있다.
⊙ 체력 저하는 절도 있는 생활로 늦출 수 있으며, 정신 활동을 늘림으로써 체력에서 잃은 것을 보상받을 수 있다.
⊙ 감각적 쾌락에 대한 욕구 감퇴는 오히려 노년의 큰 축복이다. 그래야만 정신이 제대로 계발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쾌락이 모든 행위의 판단 기준이 되어야 한다는 이론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한편 노년에도 정신 활동과 농사일에서 절도 있는 쾌락을 즐길 수 있다.
⊙ 엄밀히 말해 인생의 모든 시기가 죽음에 노출되어 있다. 노인은 젊은이가 바라는 것, 즉 장수를 이미 누렸다는 점에서 젊은이보다 행복하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죽음은 재앙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것이며, 영혼이 불멸한다면 오히려 바람직한 것이다.
정말 그런 것일까?
정치 활동과 정신 활동, 농사일?
신체 쇠약을 늦출 수 있다고? 정신 활동으로 보상받을 수 있다고?
정신 활동과 농사일로 절도 있는 쾌락을 즐길 수 있다고?
영혼이 불멸한다고? 죽음은 바람직한 것이라고?
역시 일부에 해당하는 것 아닌가?
공감할 수 있는 내용도 없지는 않다.
노년이 되어 가장 비참한 것은 다른 사람에게 자신이 성가신 존재가 될 것이라는 느낌이 든다는 거지(카이킬리우스) : 키케로가 적절하지 못한 시구라고 한 것.
인생의 매 단계에는 고유한 특징이 있네. 소년은 허약하고, 청년은 저돌적이고, 장년은 위엄이 있으며, 노년은 원숙한데, 이런 자질들은 제철이 되어야 거두어들일 수 있는 자연의 결실과도 같은 것이라네.(33절)
농경의 즐거움은 노년에 의해 방해받지 않을뿐더러, 내가 보기에는 현인(賢人)의 삶에 가장 잘 어울리는 것 같네. 그러한 즐거움은 대지와 거래를 하는데, 대지는 지불 명령을 거부하는 일 없이 자신이 받은 것을 가끔은 적은 이지를 붙여, 대개는 높은 이자를 붙여 되돌려주기 때문일세.(51)
마르쿠스 발레리우스 코르비누스는 꽤 나이 들어서야 시골에서 농사짓는 일을 시작해 백 살까지 계속 농사를 지었다고 하네.(60)
권위란 높은 관직을 역임한 뒤 노년이 되어서야 생기는 것으로,(61)
말로 자기변호를 해야 할 필요를 느끼는 노년은 불행하다는 결론이 나온다네.(62)
노인들은 고집이 세고, 불안해하고, 화를 잘 내고, 괴팍스럽다고들 하네. 그러고 보면 어떤 노인들은 어색하기까지 하네. (...) 정당하다고는 할 수 없어도 용납할 수 있을 것 같은 변명거리가 있다네. 말하자면 노인들은 자신들이 멸시당하고 무시당하고 조롱당한다고 생각한다는 것일세. 그 밖에 몸이 허약해지면 사소한 공격도 싫은 법이지. 그러나 이 모든 결점은 좋은 성품과 교육에 의해 개선될 수 있네.(65)
죽음을 무시할 수 있으려면 젊어서부터 그런 신념을 품어야만 하네. 그런 신념 없이는 아무도 마음의 평화를 찾을 수 없는 법이지. 우리가 죽는다는 것은 확실하며, 어쩌면 오늘 죽을지도 모르네. 그러니 언제든 다가올 수 있는 죽음을 두려워한대서야 어떻게 마음이 굳건할 수 있겠는가?(74)
지난 시기의 관심사가 사라지듯, 노년의 관심사도 사라지기 마련이네. 그리고 그런 일이 일어나면 사람은 인생에 물리게 되어 죽을 때가 되는 것이라네.(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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