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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시지프의 신화12

마지막 남아야 할 한 단어 다 사라지고 끝까지 살아남을 수 있는 지식은 단 한 문장, 한 문장이 안 된다면 그럼 한 단어, 단어도 길어서는 안 된다면 단 두어 글자로 된 단어, 그것에 대해 알아보고 싶었다. 그것은 무엇일까? 사랑? 믿음? 힘? 돈? 기억 혹은 추억? 고독? 향수? 상상력 혹은 추리력?...... 나로선 도무지 재미가 없지만 유명한 어느 과학자는 그게 '원자 가설'이라고 했단다. # 1 1960년대 초, 아주 비범한 미국의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은 강의에서 이렇게 말했다. "만약 어떤 대격변이 일어나서 우리가 알고 있는 과학 지식이 모두 파손되고 오직 한 문장만이 남아 다음 세대의 피조물에 전해지게 된다면, 가장 적은 글자 수에 가장 많은 정보를 담을 수 있는 말은 무엇일까요? 나는 원자 가설(혹은 원자에 관한 사.. 2024. 4. 10.
알베르 까뮈 《시지프스의 신화》⑤ 알베르 까뮈/민희식 옮김, 《시지프스의 신화》⑤ 육문사 1993 중판 이 책 독후감을 찾는 학생들이 있습니다. 도와주고 싶어도 써줄 수는 없습니다. 이 책을 읽고나서 이야기하자고 할 수도 없을 것입니다. 책을 읽었다면 뭐 하려고 이런 블로그를 찾아오겠습니까? 한두 페이지를 읽다가 그만둘 사람이 적지 않을 책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에게 나는 이 책의 여러 장, 절 중에서 비교적 쉬운 마지막 장(마지막 절)이라도 읽어보면 좋겠다는 이야기는 하고 싶었습니다. 그 장(절)을 옮겨써보았습니다. 진한 부분은 '파란편지'가 그렇게 했습니다. 그래도 복잡하다고, 어렵다고, 무슨 얘기냐고 할 수도 있으니까 끝에 이 장(절)의 요약이라고 생각되는 부분을 발췌해서 붉은 글씨로 나타내어 보았습니다. 제1장 부조리한 추론(推論).. 2022. 4. 14.
죽을 만큼 지겨운가? 1 『시지프의 신화』(알베르 카뮈)에서 죽음(자살)에 이르게 되는 인간이 부조리를 느끼게 되는 시점이 생각났다. 갖고 있는 몇 가지 번역본에서 그 부분을 찾아보았다. 어느 것이 충실한지 보려고 한 것은 아니고, 다만 그 '시점'에 대해 생각해보고 싶었다. # 1 우연히 무대 장치들이 무너지는 수가 있다. 기상·전차·사무실 혹은 공장에서의 네 시간, 식사·전차·네 시간의 일·식사·잠, 그리고 월요일 화요일 수요일 목요일 금요일 그리고 토요일, 똑같은 리듬에 따라, 이 길을 거의 내내 무심코 따라간다. 그러나 어느 날 〈왜〉라는 의문이 솟고, 그리하여 모든 것이 당혹감 서린 지겨움 속에서 시작된다. 〈시작된다〉―이것이 중요하다. 지겨움은 어떤 기계적인 생활의 행위들 끝에 오는 것이지만, 그러나 동시에 그것은.. 2019. 2. 19.
"아인슈타인은 저 위에서 웃고 있겠지" Albert Einstein 『시지프의 신화』는 자꾸 읽고 싶은 에세이입니다. 나 같은 사람도 알아차리기 좋도록 번역한 책이 있을까 싶어서 여러 가지 번역본을 살펴보았습니다.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자살을 할 것까지는 없다'는 알베르 카뮈의 특별한 부탁은 두고라도, 깊은 생각을 하게 되는 곳이 많아서 읽고 싶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이런 부분도 그렇습니다. 여기 나무들이 있다. 나는 그 꺼칠꺼칠한 촉감이나 물기를 알고 있으며 그 맛을 느낀다. 여기 이 풀잎과 별들의 냄새, 밤, 마음이 느긋해지는 저녁나절들, 내가 이토록 저력과 힘을 실감하는 터인 이 세계의 존재를 어찌 부정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지상의 모든 지식은, 이 세계가 나의 것이라고 확신시켜줄 만한 것이라곤 아무것도 제공하지 못할 것이다. 당신.. 2016. 2. 24.
의사 출근(擬似出勤) 의사 출근(擬似出勤) 아침나절에 흔히 전철역 엘리베이터 앞에서 내다보는 풍경 Ⅰ 아침마다 집을 나섭니다. 퇴임 후 5년째입니다. 사무실까지 한 시간 반쯤, 남들처럼, 예전처럼, 서둘러 나서고 걷고 합니다. '소풍가듯 하자'고 생각은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못합니다. 누가 기다리는 .. 2014. 10. 16.
오며가며 Ⅱ 2012.10.23. Ⅰ 우연히 무대 장치들이 무너지는 수가 있다. 기상·전차·사무실 혹은 공장에서 네 시간, 식사·전차·네 시간의 일·식사·잠, 그리고 월요일 화요일 수요일 목요일 금요일 그리고 토요일, 똑같은 리듬에 따라, 이 길을 거의 내내 무심코 따라간다. 그러나 어느 날 라는 의문이 솟고, 그리하여 모든 것이 당혹감 서린 지겨움 속에서 시작된다.(알베르 까뮈, 민희식 옮김,『시지프스의 신화』육문사, 1993, 27). 『시지프의 신화』에서 이 부분을 읽으며 '그래, 맞아! 삶은 지겨움의 연속이야' 하고 생각한 것은, 1990년대의 어느 날이었습니다. 이 책은, 참 어쭙잖아서 공개하기조차 곤란한 어떤 이유로 그럭저럭 대여섯 번은 읽었는데, 그렇게 감탄한 그 몇 년 후 어느날에는 '뭐가 그리 지겨워.. 2012. 10. 30.
다시 여름방학 다시 여름방학 장마가 끝나자마자 햇볕이 강렬하고, 방학입니다. 아이들에게 부대끼고, '지원'이라는 고운 이름으로 이루어지는 행정에 시달리며 올해도 다시 반을 지낸 선생님들은 '벌써 여름방학이구나' 하기보다는 '아, 드디어 여름방학이구나!' 하기가 쉽습니다. 어쩌면 그게 당연합.. 2011. 7. 18.
번역(飜譯) 우리는 왜 아프게 되는지, 우리는 왜 죽게 되는지, 누구라도 그런 생각을 할 때가 있을 것입니다. 비명(非命)에 죽는 경우는 자살과 타살의 두 가지 경우로 나눌 수 있을 것입니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경우와 다른 사람이 죽이는 경우. 그런데 그게 애매하기도 합니다. '그는 죽어야겠다고 스스로 판단한 것일까?' '다른 요인은 없었을까? 그가 스스로 목숨을 끊도록 다른 사람이 그 이유를 만들어 주거나 최소한 부추긴 것은 아닐까? 오히려 대부분 그런 경우가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기 시작하면 골치가 아프니까 그만두겠습니다. 자살에 대해서는 알베르 카뮈의 『시지프 신화』에서 '자살을 해버리는 것은 옳지 않다'는 명쾌한 설명을 찾을 수 있는데, 다만 번역에 차이가 있는 부분을 발견할 수 있고, 그게 어느 쪽이 더.. 2011. 6. 22.
알베르 까뮈 『시지프스의 신화』 Ⅳ 여기로 나를 찾아오는 사람들에 대한 미안함은 어쭙잖은 처지에서 당연한 것이지만, 속아서 오시는 사람들에 대한 미안함은 더욱 그렇습니다. 가령 검색창에 "아름다운 육체" "누드"와 같은 단어를 넣어서 오는 사람들입니다. 그 사람들은 까미유 끌로델과 로댕 이야기 때문에 이 블로그를 찾게 되고 낭패감을 맛보며 돌아갈 것이 분명합니다. 낭패감으로 말하면 다른 예도 많을 것입니다. 예를 들면 어느 학생이 '시지프스가 누구지?' '시지프스의 신화가 뭐지?' 단순한 의문에 대한 답을 얻고 싶어서 검색을 하게 되어 찾아오기가 쉽습니다. 그리고 『시지프의 신화』 Ⅰ Ⅱ Ⅲ을 다 살펴도 분명한 답을 얻지 못하는 헛수고를 하게 될 것입니다. 단지 그 학생을 위해서 『시지프의 신화』를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다시 보며 알베르.. 2010. 11. 30.
알베르 까뮈 『시지프스의 신화』Ⅲ 알베르 까뮈 『시지프스의 신화』 Ⅲ 민희식 옮김, 육문사 1993 통계청이 발표한 2008년도 자살 사망자 수는 무려 1만2858명이나 되었습니다. 지난 9월 9일 신문에 의하면 우리나라가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인 나라입니다. 또 20대와 30대 사망자 중에서 자살이 원인인 경우가 1위였습니다. '한국자살예방협회' 회장이라는 분은 「신종플루보다 무서운 자살」이라는 기고문에서 자살로 사망하는 사람이 한해에 1만3000명이라는 얘기는 그 20배 이상인 30만 가량이 매년 자살을 시도한다는 얘기라면서 그 글을 이렇게 끝맺었습니다. "이제 정부뿐만 아니라 국민들도 자살이 남의 문제가 아니라고 인식해야 한다. 자살은 내 가족, 내 이웃에 닥칠 수 있는 우리 모두의 문제이고 그 예방은 생명 존중의 시작이다... 2009. 9. 15.
알베르 까뮈 『시지프스의 신화』Ⅱ 알베르 까뮈 『시지프스의 신화』 민희식 옮김, 육문사 1993 이제 나는 자살의 개념에 대한 이야기를 꺼낼 수 있다. 어떤 해결책이 주어질 수 있을 것인가는 이미 느꼈으리라. 이 시점에서는 문제가 거꾸로 되어 있다. 이전에는, 그것은, 인생이란 꼭 어떤 의미를 갖고 있어야만 살 수 있는 것인가 아닌가 하는 문제였다. 그러나 이제는 그와는 반대로, 인생이 아무런 의미가 없다 하더라도 그럴수록 인생을 더 잘 살 수 있다는 게 분명해진다. 어떤 체험이나 어떤 특수한 운명을 사는 것은, 그것을 남김없이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것이 부조리하다는 것을 알고, 의식에 의해 밝혀지는 그러한 부조리를 어떻게 해서든 자기 앞에 간직하지 않는다면, 아무도 그러한 운명을 사는 게 아닐 것이다. 그가 살아가는 기반이 되는 대립의.. 2009. 8. 18.
알베르 까뮈 『시지프의 신화』Ⅰ 알베르 까뮈 『시지프의 신화』 민희식 옮김, 육문사 1993 ◦ 시지프스는 인간 중에서 가장 지혜롭고 사려 깊은 사람이었다. 어느 날, 모든 신의 왕인 제우스Jeus는 아소포스Asopos 강의 딸인 아에기나Aegina를 유괴해갔다. 아소포스는 자기 딸이 누구에 의해 어디로 끌려갔는지조차 알지 못하고 비탄에 잠겨 있었다. 그때 마침 그 일에 대해 알고 있는 시지프스는 코린트Corinth 성에 물을 대준다면 그 비밀을 알려주겠다고 제안한다. 자신의 계획이 탄로 난 것에 화가 난 전능한 신 제우스는, 모든 신들을 모아 회의를 열어 시지프스를 처벌하기로 했다. 그의 형벌은 큰 바위를 산꼭대기까지 밀어 올리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가 바위를 산꼭대기까지 밀어 올려 가면 바위는 다시 굴러 원점으로 되돌아오는 것이다... 2009. 8.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