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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책 보기의 즐거움

알베르 까뮈 『시지프스의 신화』 Ⅳ

by 답설재 2010. 11. 30.

여기로 나를 찾아오는 사람들에 대한 미안함은 어쭙잖은 처지에서 당연한 것이지만, 속아서 오시는 사람들에 대한 미안함은 더욱 그렇습니다.

가령 검색창에 "아름다운 육체" "누드"와 같은 단어를 넣어서 오는 사람들입니다. 그 사람들은 까미유 끌로델과 로댕 이야기 때문에 이 블로그를 찾게 되고 낭패감을 맛보며 돌아갈 것이 분명합니다.

 

 

낭패감으로 말하면 다른 예도 많을 것입니다. 예를 들면 어느 학생이 '시지프스가 누구지?' '시지프스의 신화가 뭐지?' 단순한 의문에 대한 답을 얻고 싶어서 검색을 하게 되어 찾아오기가 쉽습니다. 그리고 『시지프의 신화』 Ⅰ Ⅱ Ⅲ을 다 살펴도 분명한 답을 얻지 못하는 헛수고를 하게 될 것입니다.

 

단지 그 학생을 위해서 『시지프의 신화』를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다시 보며 알베르 까뮈는 그 신화를 어쩌면 이렇게 멋지게 소개했는지 또 한번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하계의 왕 플루토가 시지프에게 그만 돌아오라고 해도 소용이 없었다지 않습니까? "성난 표정도 경고도 아무 소용이 없었다"지 않습니까? 신화에 나오는 신들은 인간과 유사한 점도 있었다느니, 삶이란 이처럼 어렵고 고달프고 괴로워도 그래도 죽는 것보다는 나은 거라느니, 우리는 무슨 희망보다는 우선 살아남고 보자는, 혹은 그래도 삶을 이어가야 하지 않겠느냐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거러느니…… 온갖 설명이 다 부질없다는 것을 "성난 표정도 경고도 아무 소용이 없었다"는 그 한 마디가 다 설명해주지 않습니까?

 

 

 

 

알베르 까뮈 『시지프스의 신화』

민희식 옮김, 육문사 1993

 

 

 

 

 

 

신들이 시지프스에게 내린 형벌은 바위 하나를 산꼭대기로 끊임없이 굴려 올리도록 한 것이었는데, 그것은 산꼭대기에서는 돌이 제 무게로 다시 떨어져 내리곤 하기 때문이었다. 신들이 헛되고 희망 없는 노동보다 더 끔찍한 형벌은 없다고 생각한 것엔 뭔가 일리가 있었다.

 

호머의 말을 믿는다면, 시지프스는 인간들 중에서 가장 지혜롭고 가장 신중한 사람이었다. 또 다른 설화에 의하면, 그에겐 항상 강도짓을 할 마음이 있었다. 나는 여기에서 아무런 모순도 보지 못한다. 그가 하계(下界)에서 헛 노동을 하는 신세가 된 이유에 대해서는 의견들이 서로 다르다. 우선, 그는 신들에 대해 어떤 경박한 행동을 했다는 이유로 형벌을 받고 있다. 그가 신들의 비밀을 훔쳤다는 것이다. 이소푸스의 딸 아이게나를 쥬피터 신이 유괴해 갔다. 그 아버지는 딸의 실종에 충격을 받고, 시지프스에게 하소연했다. 그 유괴에 대해 알고 있던 시지프스는, 코린트 성채에 물을 대 준다면 그 일에 대해 알려 주겠다고 이소푸스에게 제안했다. 그는 하늘의 벼락보다 물의 혜택에 더 이끌렸던 것이다. 그는 이 일로 하계에서 벌을 받았다. 호머는 또한 우리에게, 시지프스가 죽음의 신을 쇠사슬로 묶어 두었다는 얘기를 전한다. 플루트(下界의 왕)는 텅텅 비어 있는 고요한 자신의 왕국을 더 이상 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 그는 전쟁의 신을 파견하여 죽음의 신을 그의 정복자의 손에서 해방시키게 하였다.

 

또한 시지프스는 죽음이 가까왔을 때, 경솔하게도 자기 아내의 사랑을 시험해 보고자 했다는 설화가 있다. 그의 아내에게 자신의 시체를 묻지 말고 공공 광장 한가운데 던져 버리라고 명했다. 시지프스는 지옥에서 깨어났다. 그리고 거기서, 그는 아내가 인간의 사랑에 그리도 어긋나게 그대로 따른 것에 화가 나, 그녀를 혼내 주려고 지상으로 되돌아가기 위한 허락을 플루토에게서 얻어 냈다. 그러나, 이 세계의 모습을 다시 보고, 물과 태양, 따뜻한 바위와 바다를 즐기게 되었을 때, 그는 이젠 지옥의 암흑 속으로 되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플루토가 그를 하계로 다시 불렀으나, 성난 표정도 경고도 아무 소용이 없었다. 그는 여러 해를 만(灣)의 굴곡과 반짝이는 바다와 대지의 미소들을 대하며 살았다. 신들의 판결이 불가피했다. 머큐리(신들의 使者)가 와 그 염치 없는 사람의 멱살을 잡고 그를 그의 기쁨들로부터 나꿔채, 바위가 기다리고 있는 지하 세계로 강제로 데려 갔던 것이다.

 

시지프스가 부조리의 주인공이라는 것을 당신은 이미 알아차렸을 것이다. 그의 열정뿐 아니라 고통으로 인해 그는 부조리의 주인공인 것이다. 신들에 대한 그의 경멸, 죽음에 대한 증오, 삶에 대한 열정이 그에게 무(無)를 성취하는 데에 온 존재를 써야 하는 이루 말할 수 없는 그 형벌을 안겨 주었던 것이다. 이것이 이 지상에서의 열정을 위해 치러야만 하는 값이다. …(후략)…

 

 

알베르 까뮈에게 단 한 문장으로 요약해 달라고 조르면 이 문장을 고르지 않았을까 싶었습니다.

이 블로그를 찾아온 그 학생이 "알베르 까뮈가 이 신화를 어떻게 해석했는가?" 묻는다면 "이 부분을 보십시오." 하겠다는 뜻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