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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책 보기의 즐거움

알랭 드 보통 『여행의 기술』

by 답설재 2010. 9. 3.

알랭 드 보통 『여행의 기술』

정영목 옮김, 이레 2004

 

  

                                                            

 

 

 

나온 지가 꽤 된 책입니다. 내가 교육부에서 교장으로 나온 그 해에 산 책이니까요.

알랭 드 보통(ALAIN DE BOTTON, 1969~ 스위스)이 '왜 여행을 하는가?'에 대한 생각을 쓴 책입니다. 작가는 아직 나이는 많지 않지만 무엇이든 분석적으로 보는 것 같습니다. 그는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라는 작품도 썼습니다. 그 책은 '그래, 정말 그래!' 싶을 데가 한두 곳이 아니었고 '요런 걸 어떻게 기억했다고 표현했을까' 싶어서 귀신 같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나는 그 '보통'이란 이름이 얼른 익숙해지지 않아서 어디에 그의 이름이 보이면 자꾸 딴 생각을 하게 되어 약간의 혼란을 느낀 적이 있습니다.

 

"여행의 기술", 우선 제목을 멋지게 붙였다고 생각합니다. 이미 정해진 여행이라면 '기술적으로' 하고 싶은 게 당연한 것 아니겠습니까. 별 의미를 두지 않아도 좋은 '보통'의 여행이라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이런 책이 있어? 그렇다면 좋아! 앞으로는 좀 기술적인 여행을 하기로 하지.'

 

왜 여행을 하는 걸까요?

사람마다, 경우에 따라, 여행을 한 후에 신문이나 잡지 같은 곳에 '보고서'를 써야 하는 전문적인 여행가 말고는 그 이유가 다 다를 것입니다. 심지어 어쩔 수 없어서 하는 여행도 흔하니까요.

알랭 드 보통은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나누었습니다.

 

출발 : 기대에 대하여, 여행을 위한 장소들에 대하여

동기 : 이국적인 것에 대하여, 호기심에 대하여

풍경 : 시골과 도시에 대하여, 숭고함에 대하여

예술 : 눈을 열어주는 미술에 대하여, 아름다움의 소유에 대하여

귀환 : 습관에 대하여

 

차례를 옮겨 놓으니까 더 그럴 듯해 보입니다.

그러나 '왜 여행을 하는가?'라는 주제를 가지고, 여행을 좀 더 기술적으로 하기 위해 '이 책을 읽는다면 어떤 효과가 나타날 것인가?' 그것도 대단히 중요할 것입니다.

 

행복을 찾는 일이 우리 삶을 지배한다면, 여행은 그 일의 역동성을 그 열의에서부터 역설에 이르기까지 그 어떤 활동보다 풍부하게 드러내준다. 여행은 비록 모호한 방식이기는 하지만, 일과 생존 투쟁의 제약을 받지 않는 삶이 어떤 것인가를 보여준다. 그럼에도 여행에서 철학적 문제들, 즉 실용적인 영역을 넘어서는 사고를 요구하는 쟁점들이 제기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드물다.(18)

 

이걸 읽고 '여행이란 그런 거구나!' 싶거나 '아, 행복이란……' 싶으면 이 책을 읽고 싶어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이걸 보고 판단하기는 좀 난처합니까?

 

우리는 지속적인 만족을 기대하지만, 어떤 장소에 대하여 느끼는, 또는 그 안에서 느끼는 행복은 사실 짧다. 적어도 의식적인 정신에게는 우연한 현상으로 보일 것이다. 즉 우리가 우리를 둘러싼 세계를 수용하게 되는 짧은 시간이다. 이 시간에는 모처럼 과거와 미래에 대한 긍정적인 사고들이 형성되고, 불안이 완화된다. 그러나 이 상태는 10분 이상 지속되는 일이 드물다. 아일랜드 서해안 너머에서 며칠마다 기상 전선들이 뒤엉켜 덩어리를 이루듯이, 의식의 지평선에서도 불가피하게 새로운 패턴의 불안이 형성될 수밖에 없다. 미래의 복잡한 문제가 드러나면서 과거의 승리는 이제 그렇게 대단해 보이지 않는다. 아름다운 광경도 늘 우리 주위에 있는 풍경처럼 스쳐 지나가게 된다.(34~36)

   

우리가 어떤 장소에 가장 온전하게 있을 수 있는 것은 우리가 반드시 그곳에 있어야 한다는 부수적인 도전에 직면하지 않을 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38)

   

인간은 호텔을 건축하고, 만을 준설하는 등 엄청난 프로젝트들을 이루어내면서도, 기본적인 심리적 매듭 몇 개로 그 성과를 물거품으로 만들 수 있다. 울화가 치밀 때면 문명의 이점들이란 것이 얼마나 하찮게 여겨지는지!(42)

   

여행은 생각의 산파다. 움직이는 비행기나 배나 기차보다 내적인 대화를 쉽게 이끌어내는 장소는 찾기 힘들다. 우리 눈앞에 보이는 것과 우리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생각 사이에는 기묘하다고 말할 수 있는 상관관계가 있다. 때때로 큰 생각은 큰 광경을 요구하고, 새로운 생각은 새로운 장소를 요구한다. 다른 경우라면 멈칫거리기 일쑤인 내적인 사유도 흘러가는 풍경의 도움을 얻으면 술술 진행되어나간다.(83)

 

모든 운송 수단 가운데 생각에 가장 큰 도움을 주는 것은 아마 기차일 것이다. 배나 비행기에서 보는 풍경은 단조로워질 가능성이 있지만, 열차에서 보는 풍경은 그럴 가능성이 전혀 없다.(84)

 

몇 시간 동안 기차를 타고 꿈을 꾸다 보면, 나 자신에게로 돌아왔다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즉 우리에게 중요한 감정이나 관념들과 다시 만나게 되었다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우리가 자신의 진정한 자아와 가장 잘 만날 수 있는 곳이 반드시 집은 아니다. 가구들은 자기들이 변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우리도 변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가정적 환경은 우리를 일상생활 속의 나라는 인간, 본질적으로는 내가 아닐 수도 있는 인간에게 계속 묶어두려 한다.(85)

 

우리가 휴게소와 모텔에서 시를 발견한다면, 공항이나 열차에 끌린다면, 그것은 아마도 그 건축학적인 불안전함과 불편에도 불구하고, 그 야한 색깔과 피로한 조명에도 불구하고, 이런 고립된 장소에서는 이미 터가 잡힌 일반적인 세상의 이기적인 편안함이나 습관이나 제약과는 다른 어떤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은연중에 기대하기 때문일 것이다.(87)

 

- 호기심에 대하여

 

그(니체)는 괴테의 문장을 인용했다. “나는 나의 활동에 보탬이 되거나 직접적으로 활력을 부여하지 않고 단순히 나를 가르치기만 하는 모든 것을 싫어한다.”(156) 

 

니체는 또 두 번째 종류의 여행도 제안한다. 이는 우리의 사회와 정체성이 과거에 의해 형성되어왔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 과정에서 연속성과 소속감을 확인하게 되는 여행이다. 이런 여행을 하는 사람은 “덧없고 개별적인 존재를 넘어선 시야를 가지게 되며, 자신의 집, 자신의 종족, 자신의 도시의 정신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는 오래된 건물들을 보며 “자신이 완전히 우연적이고 자의적인 존재가 아니라, 과거로부터의 상속자이자 꽃이자 열매로서 성장해왔으며, 따라서 자신의 존재는 용서받을 수 있고 또 정당화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행복”을 느끼게 된다.(157) 

 

그런 구별이 반드시 거짓은 아니지만, 그 결과는 치명적이었다. 안내 책자가 어떤 유적지를 찬양한다는 것은 그곳을 찾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권위 있는 평가에 부응할 만한 태도를 보이라고 압력을 넣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안내 책자가 입을 다물고 있는 곳에서는 기쁨이나 흥미가 보장되지 않을 것 같았다. …… 그 다음에는 이런 구절이 붙어 있는 느낌이었다. “이 의견에 동의할 수 없는 여행자는 뭔가 잘못된 것이 틀림없다.”(158~159)

 

베를린에 살던 어린 훔볼트는 독일의 다른 지방에 사는 친척들을 찾아갔다가 자문한다. ‘왜 어디에나 똑같은 것이 자라지 않는 것일까?’ ‘왜 베를린 근처의 나무들이 바바리아에는 자라지 않고, 또 그 반대도 마찬가지일까?’ 다른 사람들은 그의 호기심이 커가도록 장려했다. 그는 현미경과 자연에 관한 책들을 선물로 받았다. 식물학을 아는 가정교사로부터 교육도 받았다. 가족들은 그에게 ‘어린 화학자’라는 별명을 지어주었으며, 그의 어머니는 아이가 그린 식물 스케치를 그녀의 서재 벽에 걸어 놓았다.(165)

 

여행의 위험은 우리가 적절하지 않은 시기에, 즉 제대로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사물을 볼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새로운 정보는 꿸 사슬이 없는 목걸이 구슬처럼 쓸모 없고 잃어버리기 쉬운 것이 된다.(171~172) 

여행은 피상적인 지리적 논리에 따라 우리의 호기심을 왜곡한다. 이것은 대학 강좌에서 주제가 아닌 크기에 따라 책을 권하는 것만큼이나 피상적이다.(173)

 

실컷 봤습니다. 여전히 판단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이 가자고 해서 어슬렁어슬렁 따라나서는 여행도 아니고, 시종일관 함께 여행하는 사람의 눈치를 봐가며 행동해야 하는 그런 의무적인 여행도 아니고, 온갖 곳에 얽혀 있고 스며 있는 예술과 예술가의 혼을 섭렵하고, 그런 곳에서 느끼는 호기심, 욕망 같은 심리적 배경, 자연의 숭고함, 아름다움, …… 드디어 우리들 삶의 행복감 같은, 온갖 것을 예리하게 분석하며 여행하는 알랭 드 보통이라는 사람의 눈이라면 제법 까다로울 수밖에 없으니까 한 독자로서 좀 거들어봐야 끝장이 나지는 않을 것이 당연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