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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책 보기의 즐거움

『그건, 사랑이었네』

by 답설재 2010. 12. 3.

 

 

 

한비야 에세이, 『그건, 사랑이었네』(푸른숲, 2009)

 

 

 

  광고가 많이 나온 것 같습니다. 그만큼 많이 팔렸을 것입니다. 서점에선 지금도 좋은 곳에 진열된 걸 보면 요즘도 많이 팔리고 있는 책입니다.

 

  「난 내가 마음에 들어」

  어느 날 서점에 들러 '왜 이 책이 많이 팔리지?' 첫 꼭지만 읽어보자 싶어서 맨 처음의 그 「난 내가 마음에 들어」를 읽어봤고, 그 다음에 가서는 두 번째의 「산에서 풍요로워지는 나」, 또 그 다음에는 「120살까지의 인생 설계」「두 얼굴의 한비야」 …… 서점에 갈 때마다 한 꼭지씩 읽었습니다. 그렇게 서서 한 꼭지씩 읽기에 딱 좋은 책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요즘은 나를 찾아오는 좋은 사람에게, 그 사람이 어느 책을 가리키며 "저 책을 사 주세요" 하지 않으면 이 책을 선물하는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무겁지 않고, 위안 같은 걸 느낄 수 있고, 재미있고, 그런 책이니까, 사주고 비난 받는 일은 없을 것 같았습니다.

 

  가령 이런 부분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나는 '그 사랑의 하느님'과 무진장 가깝다. 아마 하느님도 같은 생각이실 거다. 애초부터 나와 하느님 사이에는 격의가 없었다. 딸과 아버지 사이인데 있으면 오히려 이상한 거 아닌가. 우리는 허물없이 날마다 기도로 만나는데 특히 아침에는 깨자마자, 밤에는 잠들기 직전에 반드시 만난다. 만나면 큰일부터 사소한 일까지 몽땅 털어놓고 의논하며 답을 구한다. 어느 때는 "사랑의 하느님, 그런데, 제가 왜 그렇게 예쁘세요?" 뻐기면서 자랑하고, 어느 때는 "하느님, 그건 제가 잘못했어요. 제가 많이 미우셨죠?" 어리광부리듯 용서를 빌고, 어느 때는 "하느님, 그렇게 쉬운 부탁을 왜 이렇게 안 들어주시는 건가요? 도대체 언제까지 기다리라는 말씀인가요?" 따지고 원망하며 화를 낸다. 도무지 글이 써지지 않는데 원고 마감 시간이 다가오면 컴퓨터를 부여잡고 "하느님, 정말 급해요. 빨리 불러 주세요."라며 막무가내로 어거지를 부리기도 한다(그러면 정말 불러주신다!).

  이런 나를 보고 신앙인으로서의 태도에 진지함이 없다고 하는 사람도 있다. 인정한다. 부녀 사이라도 진지하게 격식을 갖출 수 있겠지만 나는 여태 이렇게 살아왔으니 이제 와서 그럴 수도 없고, 그러고 싶지도 않다. 솔직히 적절하게 성서를 인용해가며 청산유수로 기도하는 사람을 보면 주눅이 든다. 저렇게 유창하고 깍듯하게 예의까지 갖춰서 기도하면 하느님이 저 기도 듣지 내 기도를 들어실까 싶을 때도 많다.

 

                                                                                                 「사랑의 하느님, 나의 하느님」(85쪽)에서

 

 

  일부러 이 부분을 골라서 인용했습니다. 위에서 "무겁지 않고, 위안 같은 걸 느낄 수 있고, 재미있고, 그런 책"이라고 한 걸 한번 보여줄 수 있는 부분.

  덧붙이면 '복잡한 세상에 이렇게 가뿐한 책은 많이 팔려서 가능하면 여러 사람에게 위안을 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복잡하기도 하지만 어렵기도 한 세상……

 

  그렇지만 제가 소개한다고 사고 안 사고 그럴 사람이 있겠습니까? 제가 만들거나 쓴 책조차 팔리지 않아 서점에서 곧 사라지게 하는 주제니까요. 더구나, 정신차려서 말한다면, 저는 광고 쎄게 때리는 책은 절대로 구입하지 않는 '옹졸한' 주제니까 이런 소개를 하면 팔리던 책조차 오히려 팔리지 않게 될 지도 모릅니다.

 

 

 

 

 

                                                                          

 

 

 

  다음은 혼자서라도 기억해두고 싶은 부분입니다(좀 쑥스럽습니다).

 

  생각해보니 지뢰밭과 전쟁터를 돌아다닌 지난날이 새삼 아찔하기만 하다. 액션영화의 주인공도 아니면서 어떻게 이런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매번 무사할 수 있었을까? 그저 운이 좋았다는 걸로만은 설명이 안 된다. 어떻게 나만 만날 운이 좋을 수 있는가 말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유는 딱 한 가지다. 이건 다른 사람들이 나를 위해 해준 기도 덕분이다.

  나는 기도 중에서 가장 강력한 기도가 남을 위한 기도, 즉 중보기도라고 굳게 믿고 있다. 생각해보라. 자기 혼자 자기를 위해 한 기도가 셀지, 수많은 사람이 그 한 사람을 위해 마음을 모아 하는 기도가 더 셀지. 하느님도 이 사람, 저 사람이 어떤 한 사람을 좀 잘 돌봐달라고 기도하면 부탁받은 그 사람을 더욱 유심히 보고 웬만한 일은 들어주지 않겠는가?

 

                                                                                        「우리는 누군가의 기도로 살아간다」(100쪽)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