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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책 보기의 즐거움

리빙하이(李炳海) 『동아시아 미학』

by 답설재 2010. 8. 20.

    리빙하이(李炳海) 『동아시아 미학』

신정근 옮김, 동아시아, 2010

 

 

 

 



 

  저자 리빙하이(李炳海)는 저와 같은 병술생(丙戌生, 1946)인 사람이지만, 저는 이렇게 살아가고 있으므로 이 책에 대해 저 같은 사람이 뭐라고 하는 게 이상하다고 할 것입니다.

   그는 이 책을 47세 때인 1993년에 출간했고 그 제목은 『주대문예사상개관周代文藝思想槪觀』이었는데, 번역자(신정근)가 이 제목으로 바꾸고 주(周)는 동아시아 미학의 모태이고 자원(資源)이 되는 시기이므로 『동아시아 미학』으로 개칭하는 것이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설명을 했습니다.   번역자의 이야기를 한 가지만 더 하면 그는 역자 서문을 "좋은 사람과 좋은 책, 만나면 늘 즐거운 일이 생긴다."는 말로 시작했습니다.

  역자 서문의 그 시작처럼 정말 좋은 책입니다. 우리는 이런 책을 좋은 책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사실은 지금까지 제가 소개한 책 중의 몇 권이 부끄러워지기까지 했습니다). 차근차근 읽으며 '기가 막히는구나!' 싶은 부분이 여러 곳이었고, '괜히 그렇게 살았구나' 싶은 마음이 들게 하는 부분도 너무나 많았고, 그냥 좋아서 '마음에 절절히 와닿는 부분이구나' 싶은 부분도 여러 곳이었습니다.

 

  그럴 수밖에요. 이 책은 약 600페이지에 걸쳐 문질(文質 : 내용과 형식?)·성정(性情)·예악(禮樂)·중화(中和)·은현(隱顯)·충신(忠信)·형신(形神)·기미(氣味)·강유(剛柔)·동정(動靜)·청탁(淸濁)·허실(虛實) 등 12가지의 짝 개념, 즉 24가지 개념을 다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저자와 번역자에겐 미안한 말이지만, 일일이 다 읽지 않고 인용한 글들만 읽다가 해설을 읽고 싶으면 읽고 말고 싶으면 말 수도 있다는 점이 편하기도 합니다.

 

    공 선선생님이 일러주었다. ”질(본바탕)이 문(꾸밈새)을 압도해버리면 촌스러워지고 문이 질을 압도해버리면 추해 보인다. 꾸밈새와 본바탕이 유기적으로 결합한 다음에야 참으로 모범적인 인물이라고 할 것이다.“

  子曰 : “質勝文則野, 文勝質則史, 文質彬彬然後君子“ -『論語』 <옹야편>

 

    ○  "'아름답다'고 하려면 상하(上下)·내외(內外)·대소(大小)·원근(遠近) 등의 모든 사람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아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아름답다고 말할 수 있다."

  초나라 영왕(靈王)이 장화대(章華臺)를 완성하고 그 웅장한 아름다움에 도취하자 오거(伍擧)가 그렇게 주장했다고 합니다(136쪽).     ○ 정치가 너그러워지면 백성이 게을러진다. 백성이 게을러지면 엄격함으로 타성을 바로잡는다. 정치가 엄격해지면 백성이 고통스러워진다. 백성이 고통스러워하면 너그러움으로 그 상처를 어루만진다. 너그러움으로서 엄격한 정치의 문제를 해결하고 가혹함으로서 너그러운 정치의 문제를 해결하니, 정치는 이로써 조화를 이룬다. …… "다투지도 말고 서두르지도 말고, 굳세지도 말고, 부드럽게도 말고, 세련되게 정치를 풀어가니 온갖 행운이 다 모여드네." 이는 너그러운 정치와 엄격한 정치가 최상으로 조화를 이룬 것이다.

 

  정관칙민만, 만칙규지이맹, 맹칙민잔, 잔칙시지이관, 관이제맹, 맹이제관, 정시이화, …… 불긍불구, 불강불유, 포정우우, 백록시주, 화지지야.

   政寬則民慢, 慢則糾之以猛, 猛則民殘, 殘則施之以寬, 寬以濟猛, 猛以濟寬, 政是以和, …… 不兢不絿, 不剛不柔, 布政優優, 百祿是, 和之至也.                                                                                                                                                                                 (428쪽)

 

  ○ 명예의 시동(尸童)이 되지 마라. 모략의 창고가 되지 마라. 일의 책임자가 되지 마라. 지혜의 주인공이 되지 마라. 무궁한 도를 완전히 터득하고 자취 없는 경지에 노닐며 자연으로부터 받은 것을 온전하게 하지, 스스로 얻은 바가 있었다고 생각하지 마라. 오직 마음을 비우는 수밖에 없을 뿐이다. 성인의 마음 씀씀이는 거울과 같다. 간다고 보내지도 않고 온다고 맞이하지도 않고, 오는 대로 그냥 호응하지 담아두지 않는다.

 

   무위명시, 무위모부, 무위사임, 무위지주, 체진무궁, 이유무짐, 진기소수우천, 이무견득, 역허이이, 성인지용심약경, 부장불영, 응이부장.

   無爲名尸, 無爲謀府, 無爲事任, 無爲知主, 體盡無窮, 而游無朕, 盡其所受于天, 而無見得, 亦虛而已, 聖人之用心若鏡, 不將不迎, 應而不藏.

                                                                                                                   『장자』 <응제왕應帝王>                      (521~2쪽)

 

    미학의 관점에서 말하자면 전자(유가)는 기하학적인 미학으로 질박하고 중후하며 질서가 반듯하다. 후자(도가)는 색채학적인 미학으로 변화무쌍하고 생동감이 있으며 어디에도 얽매이지도 엮이지도 않는다. 전자의 상징은 솥인데, 그것은 둔중하고 구체적이어서 믿고 의지할 수 있다. 후자의 상징은 산림인데, 그것은 안개나 비가 흩뿌리듯 가고 나면 남아 있는 자취가 하나도 없다.

                                                                                 가오얼타이(高爾太), 『論美』(甘肅人民出版社, 1982)         (524~5쪽)

 

  "안개나 비가 흩뿌리듯 가고 나면 남아 있는 자취가 하나도 없다."

 

 

  그것에 대해, 리빙하이는, 바큇살의 빈 곳에서 수레의 기능이 있게 되고, 그릇의 빈 곳으로 인해 그릇의 기능이 있게 되며, 문과 창을 낸 텅 빈 공간에서 방의 기능이 생기듯 있음으로 인해 이로움을 낳게 되고, 없음으로 인해 기능을 하게 한다는 『노자』 11장을 인용하며 설명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삼십폭공일곡, 당기무, 유거지용, 연식이위기, 당기무, 유기지용, 착호유이위실, 당기무, 유실지용, 고유지이위리, 무지이위용.

  三十幅共一穀, 當其無, 有車之用, 挻埴以爲器, 當其無, 有器之用, 鑿戶以爲室, 當其無, 有室之用, 故有之以爲利, 無之以爲用.

                                                                                                                                                                                         (52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