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 조이스 / 제럴드 로즈 그림
『고양이와 악마』
장경렬 옮김, 문학수첩리틀북 2010
외손자가 때로 귀신을 무서워한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오래됐습니다.
언젠가 밤중에 전화가 걸려오더니 "얘한테 귀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얘기 좀 해주세요." 하기도 했으니 웬만큼 성가신 일이 아니겠지요. 멀쩡하게 잠이 들었다가 꼭두새벽에 잠이 깨어서는 제 아빠 엄마까지 깨우는 소동을 벌이니 기가막힐 법도 합니다.
만났을 때 "귀신은 무슨 귀신!"이냐며 철석(鐵石)같이 얘기해주어도 그때뿐입니다. 귀신에 관한 책이나 친구들 얘기의 힘이 그만큼 강력하다는 걸 보여줍니다.
제임스 조이스(1882~1941, 아일랜드)가 손자를 위해 쓴 동화가 있다는 기사를 읽고 이 책을 찾았습니다. 그는 저 유명한 작품 『율리시즈』와 『더블린 사람들』 『젊은 예술가의 초상』을 쓴 작가입니다. 이 동화 『고양이와 악마』는 그가 손자에게 보낸 편지에 담겨 있었다고 합니다.
스토리는 간단합니다. 악마가 시장으로부터 맨 처음 다리를 건너는 친구를 자신에게 주겠다는 승낙을 받고 하룻밤 새에 다리를 놓아주었지만, 시장의 기지로 그만 고양이 한 마리를 받아가고 말았다는 얘기입니다. 아래에 인용한 한 페이지만 봐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악마는 어떻게 생겼느냐 하면 다음 그림과 같습니다. 머리에 난 두 개의 뿔을 보면 우리나라에 수도 없이 많은 '붉은악마'의 뿔은 색깔은 다르지만 정말로 그렇게 생긴 뿔이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문제는 제임스 조이스가 손자 스티브에게 보낸 편지의 추신 부분입니다. 그 부분은 다음과 같습니다.
말하자면, 이 부분이 결론이라고 볼 수 있는데, 보통 때는 악마를 알아보기가 어렵다고 할 수 있지 않느냐는 것이고, 그게 바로 이 세상에는 '악마'가 존재한다는 증거가 될 것입니다. 사실은 저도 더러 악마가 있다는 걸 인정하는 편입니다. 사람들이 화가 나면 왜 그러지 않습니까. "저 악마 같은 놈!" 저도 그런 말을 더러 들었을 것입니다. 문제는 그걸 외손자에게 그대로 털어놓아야 하는가, 그것입니다. 다음으로 그들 악마가 화가 났을 때는 더블린 지역 억양이 들어가 있는 프랑스 말을 한다는 걸로 보면, 우리나라에 있는 악마들도 그렇게 어느 지방 억양이 강한 말을 하고 다닐 가능성이 크다는 점입니다. 제 외손자 녀석이 이 책을 읽으면 그것도 당장 눈치를 챌 것입니다.
지난번에 만났을 때 녀석은 인사를 하자마자 이렇게 물었습니다. "할아버지, 귀신은 있는 거예요, 없는 거예요?" 말하자면 '오늘은 이 문제에 대해 할아버지와 담판으로 결정을 지어야 하겠다'는 투였습니다. 저는 긴장감을 감추고, 그런 것쯤은 평소에도 잘 알고 지낸다는 듯, 설명하고 자시고 할 것도 없다는 듯, 그러나 다음에 그 문제에 대해 다른 답을 해야 할 상황에서 융통성을 발휘해야 할 때가 되면 얼마든지 빠져나갈 구멍을 열어놓으며 '얼른' 대답했습니다. '얼른' 대답했다는 것은, 얼른 입을 열기 시작했다는 뜻이며, 꾸물대면 녀석도 당장 눈치를 챌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 귀신은 말이야. 없다고 해야 옳겠지만, …… 음, 마음이 약하거나 그 마음이 비뚤어진 상태거나, …… 음, 어쨌든 말이야, 비정상적인 사람의 경우에는 귀신을 볼 수도 있지. 귀신은 바로 그런 사람에게 나타나고 싶어하니까. 그러나 그렇지 않은 사람 중에 귀신을 본 사람은 지금까지 단 한 명도 없었지."
이 책은 사실은 페이지도 찍혀 있지 않는 매우 간소하고 산뜻한 그림책입니다. 녀석이 1학년이었을 때 주었으면 딱 맞을 책이어서 어쩌면 시효가 지난 책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귀신 이야기가 들어 있고(귀신이나 악마나 도깨비나 우리가 정확하게 말할 수 없다는 점에서는 그게 그거 아닐까요?), 루아르 강이 흐르는 프랑스 보장시(市)의 시장처럼 지혜를 발휘하면 그 악마나 귀신이나 도깨비 같은 건 얼마든지 속여먹을 수가 있다는 이야기를 해주고 싶어서 9천 원이나 주고 샀습니다. 그리고 지금 그 책을 녀석에게 주어야할지 말아야할지 망설이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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