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에는 점심을 먹고 이곳에서 교보문고 사거리까지 다녀옵니다.
괜히 걷는 거죠.
병원에서 그렇게 하라고 했습니다.
오가는 사람들 행색을 좀 살펴보는 것은 그런대로 괜찮지만 -물론 그들이 저를 보고 '강남에 갑자기 뭐 저런 인간이 다 왔나' 그러는 경우가 흔하겠지만- ‘이건 참 아무것도 아니다’ 싶어서 아예 교보문고에 들어갔다가 돌아옵니다.
그런데 이것 좀 보십시오.
요즘은 머리가 어떻게 됐는지 깜빡깜빡하기가 일쑤여서 잘 읽지도 않지만 인터넷으로 사면 대부분 10% 할인인데, 그걸 정가대로 주고 한 권씩 사서 들고 돌아옵니다.
그러니까 갈 때는 '책 사러 간다'가 되고, 올 때는 '책 사가지고 온다'가 되는 명분을 마련한 것이기도 합니다.
어제는 에릭 카펠릭스라는 사람이 만든 『그림과 함께 읽는 잃어버린 시절을 찾아서』(까치글방)를 샀습니다.
그 책은 강남교보문고 ‘D 23-2(예술에 관한 책)'에 꽂혀 있습니다.
2만원 넘는 책은 사지 않겠다는 것이 나의 ‘철학’인데 이 책은 33,000원입니다.
『그림과 함께 읽는…』이니까 천연색 작품사진들이 들어 있을 건 당연한 일이고, 그러면 출판사에서는 그걸 일일이 따져서 값을 매겼을 것입니다.
206장의 그림사진이 들어 있고, 그 중 채색그림사진이 196장이나 됩니다.
그게 아이들 만화책처럼 일일이 비닐 포장이 되어 있었습니다.
얼마 전에는 고흐에 관한 책을 5만원인가 주고 샀는데, 그 책은 전시본이 있었습니다.
한참동안 그 책의 전시본을 찾았습니다.
보이지 않았습니다.
할 수 없어 그 중에서 그래도 나이가 좀 들어 보이는 남자직원에게 전시본에 대해 물어봤습니다. 물끄러미 바라보다 대답했습니다.
"이 책요? 저쪽(소설 코너를 가리키며)으로 가보세요."
그 녀석, 아마 이런 생각이었을 것입니다.
'당신이 이 책을 알겠나! 머리가 허옇게 된 처지에 뭐 이런 책을…… 이 책은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 나오는 그림들을 보여주는 책이야. 그러니 저쪽에 가서 그 소설책이나 찾아봐. 그것도 읽기가 쉽지는 않을걸.'
아니었을까요? 그렇다면 그 녀석도 '도대체 이 책을 왜 싸놓았을까? 이것도 만화책인가? 그 참 이상하네!' 하고 뭐가 뭔지 모르는 녀석일 것입니다.
그것도 아닐까요? 명색이 예술 코너를 지키는 점원이니까요. 그렇다면 뭘까요?
그에게 이렇게 말하려다가 그만두었습니다.
"야 이 사람아! 내가 어린 시절에 그 소설을 읽은 적이 있지만 그땐 솔직히 뭐가 뭔지 몰랐네. 그러다가 요즘 『현대문학』에 새로 번역되어 연재되는 걸 읽고 있는데, 그 소설에 소개되는 그림들에도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네. 이미 『프루스트의 화가들』(유예진, 현암사, 2010)도 사봤지. 그 책은 그림 중심이라기보다 화가 중심, 그림의 배경(사연) 중심으로 설명된 책이야. 이 봐! 사람 좀 그렇게 여기지 말게. 에이, 실없는 사람!”
그 책에서 이뿐 여인 그림을 설명한 한 부분입니다.
<설명> 빠리의 뤽상부르 공원 방향으로 가는 버스 속에서 스완은 베르뒤랭 패거리 중 하나인 꼬따르 부인을 우연히 만나는데, 그녀는 온 시가지를 돌며 그날 방문해야 하는 집들로 향하는 중이다. 그녀는 모든 집에 가서 반복하여 지껄일 이야깃거리를 열광한 듯 쏟아놓는데, 그녀의 임시 볼모가 된 스완은 평소처럼 예의를 다하여 그녀의 말을 경청한다.
<원전> “스완 씨, 선생님처럼 요즘 추세에 훤하신 분께, 모든 빠리 사람들이 마샤르가 그린 초상화를 보러 미를리똥 전시장으로 꾸역꾸역 몰려가는 이때에, 그것을 보셨느냐고 새삼스럽게 여쭙지는 않겠어요. 그래, 그 작품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세요? 선생님께서는 그 작품을 찬양하는 쪽이신가요, 혹은 비방하는 쪽이신가요? 어느 살롱에 가든 미샤르의 초상화 이야기뿐이에요. 마샤르의 초상화에 대하여 나름대로의 견해 하나쯤 내놓지 못하면 멋있거나 교양이 있거나 현대적인 사람으로 취급받지 못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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