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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아인슈타인은 저 위에서 웃고 있겠지"

by 답설재 2016. 2. 24.

Albert Einstein

 

 

 

『시지프의 신화』는 자꾸 읽고 싶은 에세이입니다. 나 같은 사람도 알아차리기 좋도록 번역한 책이 있을까 싶어서 여러 가지 번역본을 살펴보았습니다.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자살을 할 것까지는 없다'는 알베르 카뮈의 특별한 부탁은 두고라도, 깊은 생각을 하게 되는 곳이 많아서 읽고 싶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이런 부분도 그렇습니다.

 

 

여기 나무들이 있다. 나는 그 꺼칠꺼칠한 촉감이나 물기를 알고 있으며 그 맛을 느낀다. 여기 이 풀잎과 별들의 냄새, 밤, 마음이 느긋해지는 저녁나절들, 내가 이토록 저력과 힘을 실감하는 터인 이 세계의 존재를 어찌 부정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지상의 모든 지식은, 이 세계가 나의 것이라고 확신시켜줄 만한 것이라곤 아무것도 제공하지 못할 것이다. 당신은 나에게 세계를 묘사해 보이고 분류하는 방법을 가르쳐준다. 당신은 이 세계의 법칙들을 열거하고, 나는 알고자 하는 갈망으로 인하여 그 법칙들이 옳다는 것에 동의한다. 당신은 세계의 메커니즘을 분해하고, 나의 희망은 부풀어오른다. 종국에 이르러 당신은 대단하고도 잡다한 이 우주가 원자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 원자 자체는 전자로 환원된다는 것을 나에게 가르쳐준다. 그런 건 모두 다 좋다. 다만 나는 당신이 그 논리를 멈추지 말고 계속하기를 기대할 뿐이다. 그런데 당신은 눈에 보이지도 않는 천체계 이야기를 하면서 그 속에서 전자들이 어떤 핵 주위를 회전한다고 설명한다. 결국 당신은 이 세계를 어떤 이미지로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나는 당신이 시(詩)에 이르고 말았다는 것을 알아차리게 된다. 즉, 내가 알기에는 이미 글러버린 것이다. 이 때문에 분개할 시간이나 있을까? 아니, 미처 그러기도 전에 당신은 벌써 이론을 바꾸어버렸다. 이렇듯 나에게 모든 것을 가르쳐줄 것 같던 과학은 가설로 끝나고, 저 명증성은 비유 속으로 가라앉고 저 불확실성은 예술작품으로 낙착되어버린다. 무엇 때문에 나는 그 많은 노력을 했던가? 차라리 저 산들의 부드러운 곡선과 어수선한 가슴 위에 얹혀 놓이는 저녁의 손길이 세계에 대하여 내가 훨씬 더 많은 것을 가르쳐준다. 나는 출발 지점으로 되돌아온 것이다. 만일 내가 과학을 통하여 제반 현상들을 파악하고 열거할 수 있다 할지라도 그것으로써 세계를 포착할 수 없다는 것을 나는 깨닫는다. 내가 이 세계의 들어가고 나온 기복을 손가락으로 남김없이 다 더듬어본 후라 할지라도 역시 내가 더 알게 된 것은 없을 것이다. 그리하여 당신은 나에게, 확실하긴 하지만 내게 아무 것도 가르쳐주는 바 없는 묘사와, 내게 가르쳐준다고 자처하긴 하지만 전혀 확실하지 않은 가설 중 그 어느 하나를 선택하라고 한다. (……)

 

 

누구라도, 나 같은 사람도, 내가 도대체 누구인지, 세상이 어떤 곳인지, 알고 싶습니다. 과학이 설명하는 것은 확실하긴 하겠지요. 그러나 "모든 것을 가르쳐줄 것 같던 과학은 결국 가설로 끝나고, 그 명증성조차 비유 속으로 가라앉고, 저 불확실성은 예술작품으로 낙착"되어버립니다. 시를 읽는 것과 다르지 않는 상태에 이릅니다. ― "무엇 때문에 나는 그 많은 노력을 했던가?"

 

그렇다면 시(詩)는 어떤 것입니까?

과학자는 자신들도 이 우주의 것들을 겨우 5%밖에 모른다고 고백합니다. 100년 전에, 그러니까 과학에서는 ''옛날'에 속하는 그 시절에 이미 예측한 '중력파'가 이번에 발견되었듯이, 무언가 더 알고 있었던 것이 분명한 아인슈타인은, 저승에서 "내 생각이 어때?" 하고 웃고 있겠지만 우리는 이 우주의 95%를 아직 모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 과학자가 그려본 시의 세계가 있습니다.2

그 과학자는, 시라는 것은 이 요지경 속을 이야기하는 것 같다고 하면서 시와 과학의 유사성에 대해서도 이야기합니다.

 

 

138억 년의 역사를 가진 우리 우주는 신비한 것으로 가득 차 있다. 우주는 신비 그 자체이다. 인간이 지금까지 알아낸 우주의 비밀은 아마도 빙산의 일각일 것이다. 그리고 45억 년 전에 탄생한 지구에서 약 7억 년 후 기적같이 탄생한 우리 지구의 생명은 더욱 그렇다. 이 신비를, 인간은 과학적으로 설명하려고 수천 년 동안 애를 써왔다. 수많은 시나 글이 우주의 신비를 찬양했음에도 불구하고, 알면 알수록 미지의 세계는 더 커진다. 생명까지 합해서 이 우주를 구성하고 있는 '것'의 5% 정도만 이제 겨우 이해하게 됐다. 꽃과 나비를 포함한 우리, 지구, 태양, 별, 은하, 은하군… 등이 겨우 이 우주의 5%를 차지한다. 이것들이 원자와 분자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과 또 그들이 몇 가지 소립자로 구성되어 있다는 사실도 알아냈다. 이렇게 우리에게 보이는 대부분의 것들을 잘 설명해주는 것이 소립자 물리학의 '표준이론'이다. 시에도 표준시가 있을까? 다음은 물질은 물질인데 본질이 무엇인지 아직도 아무도 모르는 '암흑 물질'이 약 20%이다. 세계의 크고 작은 지하 깊은 실험실에서 이 본질을 찾으려고 많은 물리학자는 지금도 혈안이 되어 있다. 그리고 나머지 75%는 더 신기하고 요지경 속인 "암흑 에너지"다. 이것 때문에 우리 우주는 미친 듯이 팽창하고 있다. 아무도 이 정체를 모른다. 그러나 아인슈타인은 저 위에서 웃고 있겠지. 그 이론에는 암흑에너지가 버젓이 있으니까. 나는 시집에 있는 어떤 시들이 바로 이 요지경 속을 이야기하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경이롭게도 우리에겐 느낌이 있다. 감정이라고 해야 하나? 그래서 마음에 드는 대로 시를 쓰고 읽는 모양이다. 시는 과학이 아니니까. 그러나 과학에도 시처럼 우리 세계를 뛰어넘는 경우가 있다. 즉 과학에도 시 같은 과학이 있다는 이야기이다. 이 우주 신비의 조화를 설명하는 데에는 네 가지 힘이 필요하다. 그중 중력과 전자기 힘은 시인들도 다 아는 힘들이지만, 나머지 두 가지는 골치가 좀 아픈 것들이다. 시집과는 잘 맞지 않는 힘들, 아무튼 과학자들은 이 네 가지 힘을 하나로 이해하려고 노력해 왔다. 놀랍게도 3차원을 훌쩍 뛰어넘어 10차원에서 이 꿈을 이루어진다. 이것이 유명한 '초끈 이론'이다. 왜 공간은 10차원이어야 하는가? 그것이 바로 우주의 섭리인가? 어머니와 같은 존재인 것인가? 그렇다면 나머지 7차원은 어디에 있는가? 보이지 않게 꼭꼭 숨어있는데, 여기서는 꿈이나 상상 속에 있다고 해두자. 이 책은 시집이니까. 아무도 이 과정을 기술할 수 있는 수학을 모른다. 중력을 이해하기 위해서 뉴턴은 스스로 미적분학을 만들어냈다. 21세기의 뉴턴이나 아인슈타인이 나오기를 바랄 수밖에. 시는 물론 과학도 꿈과 같은 상상의 세계를 수시로 드나든다. 그러니 시나 과학이나 거기서 거기가 아닌가?3

 

 

세상을 설명하고 싶은 것은 시(詩)나 과학에서나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태어나자마자, 그리고 삶의 종착점에 가까워질수록 최소한 이 세상이 어떤 곳인지라도 알았으면 싶어하는 거나 마찬가지인 것 같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과학자들은 밝혀졌다고 단언하는 '중력파'란 것만 해도 그렇습니다. 자기네들끼리는 아인슈타인은 이미 100년 전에 알고 있었던 것이라고들 하고, 지구로부터 13억 광년 정도 떨어진 곳에서 거대한 블랙홀 두 개가 충돌한 초대형 사건이 일어났었다는데, 그걸 누가 봤답니까?

 

그래서 아예 아무도 가볼 마음도 먹을 수 없는, 13억 광년 정도 떨어진 곳이라고들 하는 건 아닙니까?

13억 광년 정도 떨어진 곳이면…… 비행기나 KTX로는 몇 시간 정도 타면 이를 수 있습니까? 승용차로는 얼마 걸립니까?

좀 한가로이 함께 걸어가고 싶은 사람이면 언제쯤 도착할 수 있는 곳입니까?

더러 그 흔적이라도 좀 살펴봤으면 싶을 것 아닌가요?

 

저 과학자도 그랬지만― "시나 과학이나 거기서 거기 아닌가?"라고 했지만― 시인들이나 과학자들이나 한다는 말씀들이 도무지…… '13억 광년'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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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알베르 카뮈 『시지프 신화』김화영 옮김, 책세상, 2010(개정1판19쇄), 37~38쪽.

2. 김정욱 : 미국 존스홉킨스대 물리학 명예교수, 한국 고등과학원 물리학 명예교수, 고등과학원 초대 원장.

3. 김정욱 「'부지깽이'와 '우주'에 관한 단상」(서문), 이재창 시집『부지깽이더러 밥 태웠다고』(한비CO, 2015). 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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