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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스승의 날12

우스운 스승의 날 스승의 날이란 게 지나갔습니다. 누가 그런 날을 정해달라고 했을까요? 1969년에 교사생활을 시작하면서 당장 '뭐 이런 날이 다 있나?' 했지요. 낯간지러워서요. 그렇게까지 생각할 필요는 없는가요? "누가 당신 좋으라고 정했나?" 하면 그것도 그렇고, '꼴에 한때 선생이었다고.' 해도 그러니까 그냥 '난 상관도 없네~' 하고 지나가면 그만일 수도 있으니까요. "스승님!" 하고 엎어질 사람이나 '우리 선생님!' 하고 절절하게 그리워할 사람도 있을 것 같지 않고요. 그렇게 오십여 년…… 퇴임한 지 오래되었는데도 그날만 되면 아침부터 전화가 오거나 문자 메시지가 도착했다는 신호가 울리거나 했습니다. '얘가 지금 어떤 생각을 하며 연락했을까? 아직 죽지 않았구나! 나도 곧 늙을 텐데 이젠 함께 늙어가겠네, 하고.. 2020. 5. 18.
건강하신가요? 교장선생님, 건강하신가요? 5월 되면서 교장선생님 생각을 내내 하다가 '스승의 날에 꼭 전화라도 드려야지' 했었는데 이렇게 늦게 소식을 전합니다. 교장선생님을 닮고 싶어 쳐다보고, 내딛고, 그렇게 살면서도 감사 인사도 제대로 못 드리고 있으니… 제가 참 한심하게 느껴집니다. 요즘 둘째아이 건강이 많이 안 좋아 '내가 하는 이 일들이 무슨 소용이 있나?' 회의감이 밀려오기도 하고 교실 안 변화가 아직도 더디고 더뎌 힘이 빠지기도 합니다만 "흔들리지 말라"는 교장선생님의 가르침에 따라 다시금 마음을 추스르고 있습니다. 저에게 버틸 수 있는 힘을 주신 교장선생님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부디 건강하시길 기원합니다 소용도 없는데 건강하긴 합니다. 염치 없는 일이 되어갑니다. 보내주신 글 읽고 생각이 나서 전.. 2015. 5. 21.
천양희 「단 두 줄」 단 두 줄 천양희 전쟁 중에 군인인 남편을 따라 사막에서 살던 딸이 모래바람과 사십 도가 넘는 뜨거운 사막을 견디지 못해 아버지한테 편지를 썼다 죽을 것 같으니 이혼을 해서라도 집으로 돌아가겠다 이런 곳보다는 차라리 감옥이 낫겠다는 편지였다 딸의 편지를 받아 본 아버지의 답장은 단 두 줄이었다 "두 사나이가 감옥에서 창밖을 바라보았다 한 사람은 흙탕물을 다른 한 사람은 별을 보았다" 아버지의 단 두 줄은 훗날 딸이 작가가 된 계기가 되었다 단 두 줄의 편지를 소재로 「빛나는 성벽」이란 긴 소설을 썼다 작가가 된 뒤 어느 인터뷰에서 딸이 한 말도 단 두 줄이었다 "나는 자신이 만든 감옥의 창을 통해 별을 찾을 수 있었다" ─────────────── 천양희 1942년 부산 출생. 1965년 『현대문학』 등.. 2013. 5. 15.
'선생님'이라는 이름 '선생님'이라는 이름 - 스승의 날에 생각해본 '선생님'- ♬ 식당에서 종업원을 부르는 걸 보면 천차만별이고 때로는 '가관(可觀)'입니다. 사실은 이런 비판을 하면서도 어떻게 부르는 게 좋을지 판단이 되지 않아서 좋은 제안을 하기가 어렵고 거의 불가능하기도 합니다. 오죽하면 스스로의 무지(無知)는 생각도 않고, 우리말의 호칭이 그리 발달되지 못한 건 아닌지 공연한 의심을 하기도 합니다. "어이, 종업원!" 그렇게 부르면 당장 '저 사람이 화가 났나?' 아니면 '저놈이 무슨 재벌이거나 대단한 권력을 가졌나? 왜 저렇게 잘난 척하지?' 하고 백안시하지 않겠습니까? 그렇다고 상냥하게 "종업원?" 하고 부른다 해도 이상한 눈초리로 바라볼 건 뻔합니다. "종업원님!" "보소!" "헤이!" "이봐요!" "여기요!".. 2012. 5. 12.
박재삼 「천지무획(天地無劃)」 '스승의 날'입니다. 오늘은 좀 일찍 마쳤는지, 중학생 몇 명이 신나게 떠들며 아파트 마당을 가로질러 갑니다. 아침에 일어나 블로그를 열어보았더니 다음과 같은 댓글이 가슴을 저리게 했습니다. 커피도 내려 마시고 신문도 보고 했지만 잊히지 않아서 다시 컴퓨터 앞에 앉았습니다. 오늘 교장공모제 지원서류를 인쇄소에 제본 의뢰하고 돌아왔습니다. 이제 시장에 저는 섰습니다. 눈에 보이는 누군가를 이겨 내고 교장이 되어야 합니다. 이걸 어떻게 하죠? 사고 팔고 이기고 지고 이런 것이 싫어서 선생님이 되었었는데요. 쓰디쓴 마음에 선생님 블로그에 들어와 아직도 향기 가득한 꽃 한 송이 보고 돌아갑니다. 초심을 잃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해 봅니다만 아직도 교육의 길은 끝이 없고 아이들은 여전히 사랑스러운데 교육계는 환멸을 .. 2010. 5. 15.
스승의 날 Ⅳ : 선생님의 약봉지 교문에 걸린 현수막들을 보고 낯이 뜨거웠습니다. "스승의 은혜, 감사합니다"(○○학교 운영위원회), "선생님, 사랑해요!"(○○학교 학생 및 학부모 일동 그렇게라도 해야 아이들이 한 번쯤 생각해보게 된다고 하겠지요. 그래도 그렇습니다. 낯이 뜨겁습니다. 퇴임을 한 자신이 다행스럽기도 합니다. 나도 당연히 앉아서 지켜보기만 해서는 안된다는 입장이긴 합니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에서는 올해엔 스승의 날 기념식을 하지 않기로 했고, 그날은 교문을 닫아버리겠다는 학교도 있답니다. 1 이렇게 해서는 안 됩니다. 아예 학교장 재량 휴업일인가 뭔가를 하거나, 한동안 학부모들의 출입을 막거나, 선물이라면 손수건 한 장, 꽃 한 송이도 절대로 안 된다거나, …… 이러면 이건 '교육'도 아니고, 사람 사는 것도 아닙니다. .. 2010. 5. 14.
스승의 날 1 (훈화) 스승의 날입니다. 무슨 위원회인가 하는 곳에서 우리 교사들의 자동차 트렁크 좀 보자고 오는 거나 아닌가 싶기도 했고, 다른 어떤 일이라도 생기면 어떻게 하나, 교장으로서는 그런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는 날입니다. 며칠 전, 호기롭게, 이 골짜기의 학교에서 그런 일이 생기면 나도 그냥 있지 않겠다고 했지만 막상 그렇게 되면 참 곤혹스러울 것입니다. 다행히 아침나절에 어느 교사로부터 메일 한 통을 받은 것 말고는 아무 일도 없었습니다(좀 쑥스러워하며 소개합니다). 교장선생님. 오늘 교장선생님 훈화 말씀을 듣고 저의 6학년 때 담임선생님을 떠올렸습니다. 성남의 모 초등학교 교장으로 정년을 하신 선생님이 구리초등학교 교감으로 재직하실 때 전 그 옆에 있는 부양초등학교에서 근무하는 신출내기 교사였습니다. 이웃학.. 2009. 5. 15.
젊은 스승에게 큰절 하던 노인 상주군교육청에 파견근무를 할 때였습니다. 교사가 된지 6년째에 문교부 지정 연구학교 근무를 하게 되었고 이듬해에 혼자 시범수업을 해서 유명해졌을 때였습니다. 유명해진 이유는 여러 가지였습니다. 시범수업 외에도 6학년을 담임하면서 잔디 파와서 심기나 각 교실을 제외한 학교 환경구성을 도맡았고 -옥상 위의 '주체성이 확립된 국민 육성' 같은 간판도 직접 써 붙여야 할 때였습니다-, 학습자료전시회 출품도 하고, 전국현장교육연구대회에서 1등급 푸른기장을 2년째 연속으로 받았고, 연구학교보고서도 썼습니다. 경력이 쌓여야 일을 많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경력이 쌓이면 힘이 빠진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그걸 한꺼번에 다 하면서 소주도 많이 마셨습니다. 몸이 많이 쇠약해졌다면서 선친께서 독사를 잡아왔기 때문에 .. 2009. 2. 16.
드디어 나를 가르치게 된「그 애」 요즘 몇 달째 이른바 '컨디션'이 엉망입니다. 이러다가 영 가는 건 아닌가, 그런 초라한 느낌일 때도 있습니다. 달이 지나도록 병원에 가봤자 별 수 없어서 한의원에 갔더니 한의원답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떻게 살았는지, 면역력이 고갈되어 병이 나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 어쩔 수 없는 일만 하며 지내고 있습니다. 오늘은 정말로 힘든데도 두 달 전에 약속이 되어 있었기 때문에 부산에 다녀왔습니다. 부산의 초등학교 교장들이 다 모였는데, 여러 분이 다가와 언제 어떤 인연이 있었다는 걸 밝히며 인사를 해주었습니다. 그 중에는 우리나라 교육과정 역사상 처음으로 시·도 지침을 만들 때 저를 만난 분도 있었고, 우리나라 교과서 역사상 처음으로 지역교과서(사회, 4-1)를 만들 때 함께한 분도 있었고 - 말 그대.. 2008. 12. 18.
이 선생님… 성복 학부모님께 드리는 파란편지 83 이 선생님… 올해는 제가 조선일보사의 전국교육자대상 심사를 보았습니다. 38년 교사 생활에 아직 변변한 상 한 번 받아본 적 없지만 그 심사위원 중에는 정원식 전 국무총리, 광주와 경상남도 교육감도 있어 제가 심사위원이 된 것이 영광스럽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예심과 현장조사 등을 거쳐 최종심사에 오른 초·중·고 교사 20명중에서 13명을 선정했습니다. 그런데, 지난 스승의 날에 발표된 명단을 보았더니 한 명이 빠진 12명이었습니다. 그 날은 한국교원대학교에 볼일이 있어서 내내 '그 참 이상하다. 혹 어떤 대상자의 불미스런 일이 밝혀져 그렇게 됐나?' 생각하며 내려갔는데, 오후에 담당 기자가 전화로 D시의 특수학교 U선생님(여, 42세)이 굳이 상을 받지 않겠다고 하여.. 2007. 8. 29.
스승의 날에 받은 선물 - 아름다운 제자의 편지에 대한 답신 - 성복 학부모님께 드리는 파란편지 스승의 날에 받은 선물 - 아름다운 제자의 편지에 대한 답신 - 올해 스승의 날에는 전국적으로 태반의 학교에서 수업을 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불편한 마음으로 가르치느니 차라리 쉬기로 했었지만 안타깝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예년에는 상투적으로 이른바 '촌지' 문제를 다루던 언론도 이번엔 '교문을 닫았다'는 강한 표현까지 쓰면서 못마땅해했습니다. 모른 체 수업을 했다면 또 어느 교사가 봉투를 받았네, 어느 학교 교장은 교문을 지키고 서서 출입하는 사람들을 어떻게 했네, 듣기 거북한 소식들이 전해져 자존심 상했을 것이 뻔하여 '그럼 도대체 어떻게 하면 좋겠는가'고 묻고싶기도 했고, 우리를 공깃돌 다루듯 가볍게 그러지 말고 '좀 가만두면 좋겠다'는 심정이기도 했습니다. 스승의 날.. 2007. 8. 29.
'스승의 날'을 앞두고 성복초등학교 학부모님께 드리는 파란편지 '스승의 날'을 앞두고 주제넘은 소개가 되겠지만 저는 오랫동안 교과서 편수 업무에 심혈을 기울이며 살았습니다. 처음에는 초등학교 교과서를 담당하다가 나중에는 초·중·고등학교 교과서 편찬 전체를 책임지기까지 했습니다. 그 일은 제가 보기에 우리나라 교육행정 중에서 가장 높은 전문성을 필요로 하는 일인데, 아직 그것을 인정해주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은 것 같아 안타까움을 느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누구나 교과서에 관한 여러 가지 추억과 느낌을 가지고 있습니다. 교과서를 통해 다양한 지식을 얻고, 삶의 바른 길을 깨달으며 성장했기 때문입니다. 또, 교과서에는 우리 역사와 문화가 담겨 있고, 민족의 혼과 가치관, 민족성이 서려 있기도 합니다. 저처럼 정부에서 교과.. 2007. 8.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