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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젊은 스승에게 큰절 하던 노인

by 답설재 2009. 2. 16.

 

 

 

 

 

상주군교육청에 파견근무를 할 때였습니다. 교사가 된지 6년째에 문교부 지정 연구학교 근무를 하게 되었고 이듬해에 혼자 시범수업을 해서 유명해졌을 때였습니다.

 

유명해진 이유는 여러 가지였습니다. 시범수업 외에도 6학년을 담임하면서 잔디 파와서 심기나 각 교실을 제외한 학교 환경구성을 도맡았고 -옥상 위의 '주체성이 확립된 국민 육성' 같은 간판도 직접 써 붙여야 할 때였습니다-, 학습자료전시회 출품도 하고, 전국현장교육연구대회에서 1등급 푸른기장을 2년째 연속으로 받았고, 연구학교보고서도 썼습니다. 경력이 쌓여야 일을 많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경력이 쌓이면 힘이 빠진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그걸 한꺼번에 다 하면서 소주도 많이 마셨습니다. 몸이 많이 쇠약해졌다면서 선친께서 독사를 잡아왔기 때문에 아내가 용기를 내어 그걸 삶았습니다. 냄새가 독한 그 독사를 먹어서였는지 그해 겨울에는 감기도 들지 않았습니다.

 

파견근무는 9월 16일부터였습니다. 연구공개보고회가 9월 15일이었기 때문입니다. 말하자면 보고회를 마치자마자 이튿날부터 당장 교육청 일을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귀찮은 일을 많이 했습니다. 교육장 출장 수행도 하고, 그분에게 오는 민원편지 답장도 해주고, 교원들 인사기록카드 정리도 하고, 장학자료 편집도 하고, 대부분 타지에서 출퇴근하는 그 장학사들의 일숙직도 대신해주었습니다.

학교에 두고온 아이들이 그리웠습니다.

 

쓸데없는 얘기가 길어졌습니다. 옛날 얘기를 하려니까 이것저것 생각이 많이 납니다.

파견근무 교사는 두 명이었습니다. 다른 한 명은 장학사들보다 나이가 많은 K 교사였습니다. 사람들 말로는, 그는 공부를 잘 가르치지는 못하지만 워낙 발이 넓고 수완이 좋아서 교육청에 근무하는 것이 낫기 때문에 평생 교육청 파견근무를 한다고 했습니다. 술을 마시고 행패부리거나 혹은 무슨 사고를 쳐서 붙잡혀간 교사들을 데려오는 일도 잘한다고 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어느 날 아침 한 장학사가 경찰서에서 온 전화를 바꿔주자 "에이, 사람도 참!" 하더니 곧장 나가서 순식간에 해결하고 돌아오는 걸 직접 봤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하얀 새 두루마기를 차려입고 갓을 쓴 한 노인이 들어서며 'K 선생님'을 찾았습니다. 또 무슨 일인가 싶었습니다.

K 교사가 일어서자 그 노인은 "아이고, 선생님!" 하더니 얼른 꿇어앉았습니다. K 교사가 그러지 말라고 했지만 막무가내였습니다. 오히려 자신은 그렇게 무릎을 꿇은 채로 K 교사에게는 의자에 그냥 앉아 있어야 한다고 우겼고, 다짜고짜 정중하게 큰절을 했습니다.

 

장학사들은 그 모습을 지켜보며 재미있다는 듯 미소를 지었습니다. 대화가 재미있기도 하고 눈시울이 뜨거워질 만큼 감동적이기도 했습니다. 아무것도 모른 채 지내던 자신에게 글자를 가르쳐주고 세상을 알게 해준 은사를 일찍 찾아뵙지 못해 송구스럽다는 내용을 진지하게 설명했습니다.

노인은 6․25 전쟁 직후에 많이 늦은 나이였지만 학교에 입학했다고 했습니다. 그쯤 얘기가 오가고나자 특별히 긴요한 대화도 없고 좀 멋쩍기도 했겠지요. K 교사가 습관대로 담배를 꺼내 물며 노인에게도 권했습니다(K 교사는 늘 향기가 짙은 '타바코'를 피워서 그분 곁에 가면 그 향기에 취할 정도였습니다). 노인은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아이고, 선생님! 선생님 앞에서 담배라니요. 당치도 않으신 분부이십니다."

 

당시 K 교사는 저에게는 대선배였지만, 자신보다 한참 어린 옛 스승 K 교사를 찾아 큰절을 올리던 그 노인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며칠 전, 어느 신문에서 제자들에게 큰절을 하는 사진을 봤습니다. 그 앞에 앉아서 미소를 지으며 절을 받는 아이들도 있고, 서서 바라보는 아이들, 교사가 자신들에게 큰절 하는 모습을 핸드폰에 담는 아이들도 보였습니다. 그 교사의 큰절에 맞절을 하는 아이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기사는 없고, 사진 설명만 보였습니다.「"그동안 수고했다, 얘들아." 12일 서울 중구 만리동 봉래초교에서 열린 100회 졸업식에서 한 6학년 담임교사가 졸업생에게 축하의 큰절을 하고 있다.」

 

저는 이 사진 설명만으로는 그 교사의 생각, 큰절을 한 취지를 읽을 수 없었습니다. 단순히 수고했다고 교사가 아이들에게 큰절을 하지는 않았을 것 같았습니다. 수고하기야 교사가 더 수고했을 것입니다. 그 교사가 무슨 큰 잘못을 저지른 것도 아닐 것입니다.

 

저는, 아무리 생각해도 그 의미를 알아챌 수 없는, 이미 '한물간' 사람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의미를 알 수 없는 일이 어디 한두 가지겠습니까? 그러니까 곧 그만둘 때가 된 것이겠지요. 어쨌든 그 사진을 보니까 문득 옛날 생각이 났을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