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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이메일을 막는 회의’와 댓글을 보고 싶은 욕구(수정 원고)

by 답설재 2009. 2. 12.

  한국교원대학교에서 정년퇴임한 함수곤 교수는 제가 교육부 편수국(교육과정, 교과서 업무를 맡아보던 곳)에 들어갔을 때 편수국장이었습니다. 당시 이화여대 교수였던 분이 장관으로 와서 이러저러한 지시를 하자 그 지시가 부당하다며 덜컥 사표를 냈고, 그렇게 좀 쉬다가 일본으로 건너간지 1년 후에 전 국립교육평가원 교수가 되었다가 다시 한국교원대학교 교수로 갔었습니다.

  그는 아주 괴짜입니다. 아는 것도 많고 고집도 있고, 하다못해 노래방에 가면 좌중을 휘어잡는 그런 스타일입니다. 요즘은 인터넷에서 <한밤의 사진편지>란 까페를 운영하면서 자신을 편집인 겸 사장이라고 표현합니다. 친지들과 주말걷기 운동도 전개합니다. 주말걷기는 주로 서울에서 하지만 때로는 국토 U자 걷기, 일본 원정 걷기도 하고 있습니다. 다른 얘기나 에피소드도 많은데 이 블로그의 <가을을 남기고 간 사람>이란 글에서 몇 가지 소개한 적이 있습니다.

  그가 <한밤의 사진편지> 1000호 기념으로 독자들에게 소감문을 내라고 했습니다. 제가 쓴 <가을을 남기고 간 사람>이란 글은 그의 편저『함수곤의 편수교유기』란 책에 실렸으니, 이번에도 그 소감문을 모아 책을 만들지도 모르고, 그러면 제 입장에서 글을 보내지 않으면 나중에 섭섭하다는 말을 듣기 쉬운 사이여서 한 편 보냈습니다. 사실은 이 블로그「내가 본 세상」코너의 2008년 7월 24일 원고를 고친 글입니다. 제 블로그의 글을 그대로 보내면 아주 객관적이어서 그분이 글을 모으는 취지에 맞지도 않고 솔직히 말하면 비위를 상하게 하는 엉뚱한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기 때문에 고친 것입니다. 그렇다고 주제까지 흔들지는 않았습니다. 저는 절대로 그렇게는 할 수 없습니다. 다만 그 내용과 표현을 더 재미있게 하고자 했을 뿐입니다.

  그렇게 해서 글을 보냈더니 다음과 같은 아주 즐거운 반응이 왔습니다. 한번 보시겠습니까?

 

   김만곤 교장선생님

   안녕하셨습니까?

아주 너무나 훌륭한 글을 특이하고도 재미있게 잘 써주어 고맙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해서라도 부족한 나를 돋보이게 하려는 교묘하고 흥미 있게 배려한 흔적이 글 속에 배어있어서 무척 기뻤고 웃음이 나왔습니다. 아내도 같이 보며 내 등을 두드리며 웃었습니다. 김 교장의 글은 성공했습니다. 성공하는 글을 쓰기란 쉬운 일이 아니지요. 깊이 알고 깊이 배려하고 깊이 생각을 해야 하니까요.

좋은 글을 쓰려고 힘을 많이 들이고 정성을 들여 고생한 데 대하여 고맙게 생각합니다. 제 1000호를 맞이하는 내 마음에 꼭 드는 글이었습니다.

혹시 그날 1000호 기념 모임에 참석하려면 사무국장에게 미리 연락하기 바랍니다. 돈도 보내고.

건승을 빕니다.

익살꾸러기 노인으로부터

 

  「'이메일을 막는 회의'와 댓글을 보고 싶은 욕구」란 글을 어떻게 고쳤는지도 한번 보십시오. 왜 함 교수의 부인이 그의 등을 두드리며 웃었는지 아실 수 있을 것입니다.

 

 ‘이메일을 막는 회의’와 댓글을 보고 싶은 욕구


                                                                                                      김  만  곤

                                                                                             (남양주양지초등학교 교장)


저는 출근하면 바로 이메일 박스를 열어본 다음 제가 운영하는 블로그를 확인합니다. 이메일 박스는 궁금해서 얼른 열어보게 되고, 제 블로그는 다소 흥분된 마음으로 열게 됩니다.

그러다가 지난해 여름 조선일보(2008.7.23)에 실린 기사를 보고 ‘나도 쓰레기를 생산하면서 남을 성가시게 하는 한심한 사람은 아닐까?’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느 날, 그렇다는 판단이면 문을 닫아야 할 것입니다. 그 기사를 보여드립니다. 이미 보셨습니까?


조선경제 [모닝커피] '이메일 막는 회의'까지 하는 세상


글로벌 기업들이 이메일·메신저 사용량 폭증에 따른 직원들의 업무 효율 저하 문제로 고심하고 있다. 이메일·메신저 같은 디지털 관련 정보의 과부하(overload) 현상 해결이 최우선 경영 과제로 부각되고 있다.

(중략)

실제 미국의 연구기관 바섹스(Basex)의 조사에 따르면 최근 기업 업무시간의 28%는 이메일·메신저에서 필요한 정보를 골라내는 데 쓰이며, 이로 인한 미국 경제의 연간 손실액만 6500억 달러에 달한다.

국내외 기업들은 다양한 대책 마련에 나서고 있다. 인텔이 최근 도입한 '조용한 시간(quiet time)' 제도가 대표적이다. 이 제도는 직원 300명이 매주 화요일 아침 4시간 동안 이메일·메신저 접속을 않는 실험적인 제도다.

LG전자는 스팸메일을 걸러내는 필터 시스템을 대폭 강화하고, 제목·본문·보내는 사람의 신뢰성 여부에 따라 필터 시스템을 매일 업데이트하고 있다. 또 오버추어코리아나 토피아에듀케이션 등 온라인 업계에서는 메일은 담당자에게만 보내고, 하루 2회만 이메일을 확인하는 '이메일 에티켓 운동'을 전사(全社)적으로 실시 중이다.   백승재 기자 whitesj@chosun.com


제 이메일 박스에는 ‘학리(鶴里)’ 선생님께서 더러 오시고 있습니다. 그분 메일은 ‘봐도 그만 안 봐도 그만’입니다. 예를 들면 ‘Moonlight'이라는 제목으로 아름다운 달 사진들과 함께「월광 소나타」가 흐르고 있습니다. ‘그만 보려면 Esc 키를 누르면 된다’는 친절한 멘트 아래 적힌 사연은 “이곳에 머무는 동안 행복하세요.” 뿐입니다. 늘 그런 식입니다. 문교부 고위직을 지낸 분입니다. 지금은 부인과 함께 어느 실버타운에 계십니다.

‘서운(瑞雲)’이라는 분도 자주 오십니다. 다양한 내용이 스크랩되어 옵니다. 예를 들면, ‘중국 국보전’, ‘150억 원짜리 수석’, ‘2008년 7월 30일 서울시교육감 선거에 반드시 투표합시다’ 같은 것들입니다. 바이올리니스트 장영주가「G선상의 아리아」를 연주하는 모습이 동영상으로 첨부되기도 하지만, 대체로 옛 유행가가 첨부됩니다. 자료를 아주 열성적으로 모아 보내기 때문에 보고는 바로바로 지웁니다. 그냥 두면 제 이메일 창고가 금방 가득차고 말 것입니다. 벌써 은퇴했는데, 아주 원만하고 생활도 단정하며 점점 더 깔끔해지는 분입니다.

이런 분께는 1년에 그저 두어 번만 안부를 올립니다. 그래도 아무 불평을 하시지 않습니다. 아무 불평을 하지 않는 곳으로는 ‘교보문고’, ‘KB카드’, ‘싸이버스카이’, ‘아이나비’ ‘국세청’ ‘교육과학기술부’ 같은 곳도 있습니다. 이런 메일 말고는 대부분 읽어보고 답장을 하거나 어떤 작업, 판단을 해서 알려주어야 합니다. 불평을 할 수가 없습니다. 다 살아가자고 하는 노릇이니까요.

그러나 그런 메일도 아니고, ‘학리(鶴里)’ 선생이나 ‘서운(瑞雲)’ 선생처럼 불특정 다수에게 ‘보면 좋고 안 봐도 그만’인 자료를 보내면서(‘보면 좋고’는 해석이 필요한 부분입니다. 그 시간에 다른 일을 할 수도 있으니까요) 답장이나 댓글을 요청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솔직히 부담스럽습니다.

저는 이런 분의 생각에 참 안타까운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댓글을 보면 누가 반갑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단 한 명에게라도 댓글을 달아달라고 요구할 수는 없습니다. 이건 말하기가 좀 쑥스럽지만 저의 경우 제 가족들 중에는 제 블로그에 들어오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것 같습니다. 인간적인 매력이 없다는 판명이 났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렇지만 반가운 댓글을 많이 받아본 저로서는 그 댓글이 사실은 ‘돈보다 더 귀한 것’이라는 느낌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돈도 들지 않는 댓글 달기를 왜 하지 않느냐고 대어들다시피 하는 것은 “돈 좀 내라!”는 것보다 더한 요구라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제 후배 교장 중에 미니홈피를 운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가 바로 댓글달기에는 돈도 들지 않고 힘도 들지 않는다고 강변하는 사람입니다. 그의 카페에 들어가서 찾은 다음과 같은 글을 한번 보십시오. 문장이 거칠지만 그의 글이므로 그대로 옮겼습니다.


“이메일을 받아 보시는 분을 상대로 카페에 가입 좀 해달라고 SOS를 치고, 여러 번 안내를 하고, 당부를 해도 꿈적도 하지 않은 분들이 많다. 돈이 드는 것도 아니고, 힘이 드는 것도 아닌데 선천적으로 남을 도와주기를 싫어하고, 인색한 분들임이 있음을 카페를 열어 카페지기를 하면서 절실하게 와 닿는 대목이다. 물론 개인 나름대로의 이유와 사정이 있는 것도 안다.”

“내가 잘 아는 분은 자기가 아쉬우면 남에게 부탁을 잘 하면서 다른 사람이 부탁을 하면 무엇인가 빼앗기는 것과 같은 불안감을 느끼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중략) 반면에 무척 친절하고 적극적인 사람도 많다. 이런 분들은 생활이 밝고 긍정적인 점이 공통점이다. (중략) 사람이란 것이 신비하게 상대방을 잘 파악하고 산다. 실제로 어려운 상황인데도 그 어려움을 감수하고 도움을 주어왔을 때 감동을 하고 신뢰를 하게 된다. 돈도 안 들고 힘도 안 드는데도 도와주지 않는다면 그 누가 그 사람을 신뢰하고 그 사람이 어려울 때 도움을 요청해오면 도와주겠는가….”


돈도 들지 않고 힘도 들지 않는다니요. ‘돈’과 ‘힘’이 들지 않으면 그만입니까. 돈이나 힘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저도 그 중의 하나입니다. 굳이 그분의 카페에 회원등록을 하지 않았거나 댓글을 달지 않는 그런 사람들도, 차라리 “카페 운영에 필요하니 성금 좀 내라”고 하면 “그래, 알았다.”며 당장 돈을 낼 사람들인지도 모릅니다.

그나저나 우리는 이메일, 미니홈피, 블로그 홍수시대(洪水時代)의 하루하루를 보냅니다. 어쩐지 궁금하기도 하니 안 열어볼 수도 없는 것이 그것들 아닙니까.

『한밤의 사진편지』를 운영하는 함수곤 교수님도 이 홍수시대의 가운데에 계십니다. 함 교수님은 홈페이지에 올리는 글을 메일로 받아보기를 원하는 사람들에게는 메일로도 보냅니다. 그러면서 가끔 다음과 같은 내용도 싣습니다.


“사랑은 주고받는 사랑이 아름답습니다. 주기만 하는 사랑, 받기만 하는 사랑처럼 일방적인 사랑은 힘을 빼고 의욕을 잃게 합니다. 근래 독자님들의 답글이 줄어들고 있습니다. 한 달간을 계속 간단한 답글 한 번 보내지 않는 독자님은 ‘한밤의 사진편지’를 스팸메일로 취급하고 있는 줄 알겠습니다. ‘한밤의 사진편지’ 구독료는 답글입니다. 단 한 줄이라도 독자님의 생각이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답글이 바로 구독료입니다. 저도 그런 수입이라도 있어야 의욕이 꺾이지 않지요. 독자님 중에는 놀랍게도 매일 답글을 보내주시는 고마운 70대의 독자님도 계십니다. 그분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아직도 저의 편지를 그저 수동적으로 受信(수신)만 하시는 수신형 독자님도 많이 계십니다. 자신의 생각이나 느낌, 근황 등을 가끔이라도 發信(발신)하는데 너무 인색하신 독자님들의 '침묵'이 여전히 무겁게 흐르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중략) 어떤 독자님은 저를 만났을 때 "답글 보내라고 촉구하지 말라." 또는 "메일 보내기 싫으면 보내지 말라. 내가 당신 블로그에 들어가서 보겠다." 이런 말을 저에게 거침없이 던지는 독자님도 있었습니다. 이런 경우 저는 상처를 받습니다. 그리고 그 독자님의 마음과 교양을 생각해봅니다. 이러한 매너는 비단 저와의 관계에서만이 아니라 모든 대인관계에 있어서 기초, 기본에 해당하는 것이어서 깊이 생각해 볼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를 매우 중시하고 있는 편입니다.”


저는 이런 말씀을 깊이 생각해보는 편입니다. 그렇지만 그러지 말라는 말씀을 드리지는 않았습니다. 몇 번 망설이다가 그분의 생각이 워낙 강해서 들어주지도 않을 것 같았고 그러다가 공연히 미움만 받겠다 싶어 포기했습니다. 사실은 그보다 더 큰 이유가 있습니다. 옛날에 교육부 고위직을 지낸 분으로 아는 것도 저 같은 사람은 ‘게임이 되지 않을 정도’로 참 많고 인격도 높아서 그분의 그 완강한 생각에 비해 장점이 워낙 수두룩하기 때문이며, 따라서 그분의 메일을 받아보는 것이 늘 큰 도움과 즐거움을 주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어느 날은 ‘콩 음식’이라는 제목의 글을 보냈는데, 콩의 좋은 점을 이야기하면서 어느 희한한 나라의 희한한 식당에서 벌거벗은 여성 종업원을 뻔뻔하게 쳐다보는 손님들을 찍은 사진들을 곁들였습니다. 아마 사모님께서 출장 나간 사이에 몰래 얼른 실어버렸거나 사모님께서 빙그레 웃으시며 그 정도는 괜찮다고 널리 양해해주셨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입니다. ‘콩’도 좋지만 ‘까짓 거’보다는 그 훌렁 벗은 종업원이나 뻔뻔한 손님들도 볼 만하지 않겠습니까? 더구나 우리 독자들을 위해 웬만한 건 널리 양해해주시는 사모님은 어떻습니까?

저는 1년에 네댓 번씩은 댓글을 보냅니다. 이것도 다 요령입니다. 말하자면 ‘이때쯤이면 “뭐 이런 놈이 다 있나!” 하실 가능성이 있다’ 싶은 아슬아슬한 때에 얼른 보냅니다. 그 정도가 뭐 그렇게 어려워서 언짢게 생각하고 그러겠습니까. 언짢게 생각하는 분은, 자신을 뭐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하는지 잘 모르지만, 결국 그분도 개성이 강한 분일뿐인데, ‘함 교수는 저렇게 하고 있구나. …….’ 하면서 아무 말도 하지 말고 저 뒤에 그냥 있으면 될 것입니다.

함 교수님께 댓글을 보낼 때는 ‘답장’ 형식으로 하지 않고 그분의 아이디를 새로 클릭해서 보내야 합니다. 왜냐하면 ‘답장’을 클릭하여 보내면 메일 용량이 커진다고 잔소리를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자신의 단점은 감추고, 수탉처럼 그 벼슬을 세우는 데만 열심인 사람과 달리-그분의 모든 것을 그대로 드러내는, 개성이 참 강한 ‘익살꾸러기 노인’입니다. 그 익살 속에 내일은 또 무엇을 담아 보낼지 모릅니다. 그러므로 그분은 이 나라가 미국이나 영국 같은 나라라면 더 유명해졌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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